편집부 (2017-09-02 22:00:37)

미래를 지향하는 수능개편안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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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혁선)

프랑스로 전학 간 아이가 0점을 맞은 까닭

지난 주말 1학년 학생들과 독서 토론동아리 활동을 했다. 독서 토론의 경우 일단 도서 선정이 생각보다는 어렵다. 고민을 하던 중 Facebook에 소개된 ‘프랑스로 전학 간 아이가 0점을 맞은 까닭’이라는 주제에 이끌려 ‘세계 1%의 철학 수업(후쿠하라 마사히로)’을 앞뒤 가리지 않고 주문했다.

일본인과 프랑스인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는 일본에 살았지만, 사정상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자연스레 딸아이도 프랑스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일본에서 살 때 프랑스어 역시 사용했기에, 말하고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전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역사 시험을 보게 됐다. 문제는 이랬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설명하시오.” 일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험 문제지만,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 아이는 평소 역사라면 줄줄 외울 정도였기에 답을 썼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 미국, 소련, 프랑스 등이 참전한 세계 규모의 전쟁으로 1945년 종전.

하지만 결과는 0점이었다.

아이의 답은 틀린 게 없었다. 교과서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답안지에 작성했을 뿐이다. 결과가 이해되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는 학교를 찾아갔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답을 썼는데 0점이라니요.”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대답했다. “이 답안에는 아이의 생각이 단 한 가지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래서는 아이의 생각을 알 수가 없어요. 교과서 내용에도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지도해주세요.”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묻는 프랑스 교육의 척도로 보자면 아이의 답안은 백지를 낸 것과 다름없었다.

‘진짜 지식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의심한다. 대화하고 의심하고 이해한다. 질문으로 생각을 넓힌다. 다양성과 이노베이션’ 등 대주제로 구성된 책이다.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니기에 편하게 쭉 읽으면서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라는 거창한 것보다는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해 많은 반성과 고민을 해 보았다.

“그래, 수업의 주도권을 교사가 아닌 학생에게 돌려주자.” 학생 중심 수업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은 궁금하지도 않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과거에 학습한 단편 지식 위주 질문들을 퍼붓지 말자. 학생들이 궁금해서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진정한 학생 중심 수업 구조를 설계해 보자. 이러한 다짐들을 해 보았다.

한편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두려웠다. 우리 교육 현실과는 너무 다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금 1학년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다.

우리 교육 현실과 교사의 고민

그렇지 않아도 지난달 GMO의 위험성과 공장식 가축 사육의 위험성, 육식의 종말 등을 주제로 담은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라는 책을 읽고 “이제는 육식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해야 했던 학생들의 이번 발표 내용은 현재 교실 모습과 그들의 고민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들이었다.

“발표를 세세하게 하면 ‘나댄다’라고 생각하는 교실 분위기 때문에 발표하기가 꺼려진다.”
“완벽하지 않으면 발표하기가 꺼려진다. 발표에 의의를 두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일본, 중국, 한국의 OMR 마킹식의 시험은 시고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객관식 시험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이 맞다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것을 비판할 줄 알아야 스스로 피드백이 가능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어진 정답만을 작성해야 하는 우리의 주관식 문제가 과연 올바른 형태인지 궁금하다.”
“정답은 하나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답을 생각하면 발표를 하지 못한다.”
“우리 교실에서는 Serendipity(필연적 우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직적 관계에 의한 권위가 존재하는 교실은 마치 중세 종교가 세상을 지배했던 암흑기와 같은 모습니다. 왜? 인간 중심 그리스·로마 문화가 권위를 강조하다가 보니 중세 암흑기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자리였지만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못했다. 교사는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어야 하지만 그저 들으면서 고개만을 끄덕거려야 하는 현실은 현재 교실 수업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현재 내신 상대평가에서는 평가의 효율성을 위해 한 가지 객관적인 정답만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1점? 아니! 평가 후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서열화하기 위해 객관식 문항의 경우 대부분 소수점 배점까지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내신 등급이 0.1점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터키군을 살해하고 귀를 잘라야만 했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우리 학생들도 제2, 제3의 조르바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치열한 내신 경쟁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교과서 이외의 ‘다름’과 ‘틀림’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객관식 지필 평가를 할 수 있는 교사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솔직히 이전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은 갈수록 내신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교내 내신 평가에 대한 감독과 감시가 이전에 비해 훨씬 강해져서 그 강박관념은 이제 교사들도 이기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는 수능 시험에서도 교과서 이외 정답은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틀에 맞추어진 지식만을 요구하는 현재 학교 교육으로 미래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쉽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2015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선

혹자는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객관적 지식을 요구하는 교육이 무엇이 문제냐고…지금까지는 잘살아왔다.”그러면서 서열화 내신 상대평가를 옹호하고 교사 중심의 천편일률적 수업을 지속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이분들의 주장이 일부는 옳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향점이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는 것이다. 현재도 아니고 “옛날에는 이렇게 해서도 좋았다”는 식이다.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교육은 과거와 현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활동이다.

미래 사회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의 위험성을 가장 쉽게 이야기하는 동영상을 시청했다. 대학 교수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강좌였다. “만약 여러분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든다면 무엇을 만들까요? 보편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일까요? 아니면 특정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제품일까요?”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만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결국 미래를 위한 교육은 보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다양성과 독창성을 가진 ‘틈새교육’을 하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인구 감소 현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해 출생아는 1970년대 100만 명에서 2002년에 49만 명으로 절반 감소하면서 40만대 추락했고 금년에는 36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어 2040년 26만 7천명, 2060년 2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각종 언론 매체들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가장 먼저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지목하고 있다. 객관적인 지식만을 강조하는 현재 교육은 미래 우리 학생들을 대규모의 백수로 양성하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학생들과 독서 토론을 하면서 할 말이 자꾸 막히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학교 내신 평가에서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정답만을 강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을 가질 수는 없다. 반쪽이지만 수업 시간 교수 학습 과정이나 수행 평가를 통해서라도 학생들의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가 된다.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서라도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적인 내용을 기록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아직 반쪽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나머지 반쪽은 2015 교육과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수능 절대평가와 자격 고사화, 내신 절대 평가를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수능시험 개편안은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육은 아직도 ‘공정함’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면서 객관적 지식만을 강요하고 또 암기해서 정답지에 기록하여 제출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와 함께 ‘공정’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당연히 모든 게임의 법칙은 공정해야 한다. 출발선이 서로 다르다면 게임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 상대평가와 내신 상대평가를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공정’이란 단어를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면서 강력한 무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적 측면에서는‘공정’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객관적 사실만을 정답으로 요구하는 획일적 지식 수단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수능 절대평가를 중심으로 한 개편안 논의가 정점에 와 있다. 그런데 논의 자체의 초점이 잘못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 금년부터 수능 체제가 개편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현재 논의가 되고 있는 수능시험 개편안은 내년부터 실시되는 2015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21년 실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수능 개편안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2015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수능 개편안이다. 그런데 교육의 목표인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로 역시 조급하게 결과에만 집착하면서 수능 개편안 논쟁에만 몰두하는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수능 확대와 일부 절대평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2015교육과정과 고교 학점제의 성공적인 실시를 위한 전제조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미래 교육에도 과정은 없고 결과 평가만을 주장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일부 사람들은 단계적 실시를 언급하기도 한다. 국어, 수학, 탐구 과목을 상대평가하다가 절대평가가 안착되면 단계적으로 절대평가 영역을 확대하자고 나름 실용적인 주장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가는 교육과정의 결과물을 담아내는 수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능제도가 변경될 때마다 학교 교육과정이 그때마다 요동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시 수용할 수 없다. 수능도 교육과정도 둘 다 파전이 아니다. 이번에 개정되면 최소 5년은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제 우리 학생들을 위해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개정안이 완성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