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현 (2019-12-25 00:42:07)

“2019년보다 더 어둡다...무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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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를 앞두고 우리는 ‘희망차고 기품 있는 새해’를 꿈꾸어도 좋을까? 과연 낙관의 근거는 있는 것일까? 가까운 미래에 대해 낙관하든 비관하든 그 근거는 현실(정치·경제)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정세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해온 ‘계간 사회진보연대’(pssp.org)가 최근호(2019 겨울호·통권 169호) 특집에서 2020년 정세 전망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그 결론을 ‘장기침체와 정치위기’로 요약했다.

이것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인간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라면 그런 분석 내용과 씨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간 사회진보연대’ 겨울호 특집에서, 먼저 김진현은 ‘자본축적 둔화, 제조업 침체, 금융위기 위험’을 통해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흐름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2019년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계 제조업이 아주 뚜렷한 침체를 보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세계경제를 이끄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같은 중심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데 주목하면서, 2020년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재발이라는 위험요소를 안은 채 점점 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태훈의 ‘한국 경제, 높은 불확실성과 취약한 대응 여력’은 한국 경제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의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삼성전자, SK를 제외한 한국의 하위 재벌들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데 실패하고 수출경쟁력도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와 함께 몰락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원인은 한국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향후 20-30년간 한국의 노동자, 시민들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낮은 경제성장률을 장기간 겪으면서 극심한 경쟁과 갈등 구조 속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특집은 경제 분석에 이어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세를 살핀다.

김성균의 ‘동아시아, 세계의 화약고가 될 것인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갈등 구조의 심각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특히 아시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 논의가 2020년 가장 큰 쟁점일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것이 미중러 간 대결로 치달을 경우 동아시아가 전쟁으로 파괴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일본 평화헌법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동아시아 현상질서를 유지하는 안전핀 역할을 계속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치,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핵무기가 그 자체로 인간을 절멸시키는 무기임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근거로 북한의 핵무기에 반대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주장에도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특히 북한의 핵 보유가 남한의 핵무장,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각국의 호전적인 우익 세력에 힘을 싣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어지는 글은 김진영의 한반도 정세 전망으로서 ‘한반도 비핵화 전망, 평화의 기회는 다시 사라지는가?’다. 이 글은 북한의 경제 상황과 북중 관계을 살핌으로써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를 전망한다. 그는 북한 핵보유가 잠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며, 남한이나 일본에서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그러면서 한국의 평화운동은 한국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일본의 평화헌법과 비핵3원칙을 토대로 동아시아에서 핵무기에 반대하는 국제연대를 실행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촉구 운동에 동참하자고 촉구한다.


2008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 은행의 런던사무소 현판이 201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부채 상환을 위해서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도가 촉발한 2007~2009년 금융위기를 상징하는 것이 미국 리먼 브러더스 은행의 파산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위기는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통해 세계 각국 은행의 위기로 전염되었다. 이후 CDO는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라는 새로운 위험요소가 더 큰 규모로 자라났다. 과연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사진출처: CNBC] - 사회진보연대 겨울호에서 인용

특집은 이어 국내 정치 정세를 전망한다. 한지원의 ‘개혁의 몰락: 21대 총선 전후 정치 전망’과 박준형의 ‘2020년 민주노총은 무엇을 해야 하나’가 그것.

먼저 한지원은 집권당인 민주당이 그 뿌리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이념이나 경제적 대안 면에서 자유주의에 미달했고,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포퓰리즘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문재인 정부에 끌려다니다가 함께 위기에 빠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와의 결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한편 저자는 한국정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곧 인사권과 예산권을 독점한 대통령제를 지금 상태로 두는 것은 대통령 개인 능력에 민족사의 미래를 맡기는 꼴이라며 그 위험성을 강조한다. 한국이 저성장 고령화로 대표되는 일본화를 피할 수 없다면, 한국정치의 중요한 요소는 정책적 합리성과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박준형은 2019년에 이르러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운동의 기대와 어긋나면서 노정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현실 경제의 냉정한 법칙을 주관적 선의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불황이라는 객관적 조건조차 부정하면서. 정부는 여론 움직임만 주목하면서 좌충우돌을 반복했는데, 대중에게 잔뜩 기대만 주고 실패의 책임은 남탓으로 돌리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한편 저자는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비판과 제안도 내놓는다. 최근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2017년 이후 30만 명이 증가해 2019년 4월 기준 101만 명을 넘겼는데, 증가분의 약 38%는 공공부문이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13%를 차지하지만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는 40%를 차지하는 불균형이 나타나게 됐다. 그런데 이런 불균형은 일자리 그 자체에서도 나타난다. 2020년 예산에서도 공공 일자리는 상당히 증가한 반면, 제조업은 지난 9월까지 19개월 연속 일자리 수가 감소했다. 게다가 제조업 부진은 내수로 이어져 서비스 부문 고용 부진으로 파급될 수도 있다.

저자는 노동조합운동이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또 노동조합은 국민경제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을 안정화하며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스스로 찾을 수는 없는 것인가? 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최근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노동조합은 현세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에 안주함으로써 사실상 현세대의 부담을 후세대에 넘기는 방안을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자기 입장으로 내세웠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노동조합운동이 전체 노동자의 관점에서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밖에 겨울호 ‘사회진보연대’에는 임필수의 ‘검찰개혁인가, 수사기관의 과대팽창인가’, 뉴레프트리뷰 편집장 수잔 왓킨스의 ‘어느 페미니즘인가(2)’(김진영 번역), 임필수의 ‘한소수교와 남북기본합의서, NL·PD 논쟁의 격돌’(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역사와 평가(3)) 등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