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4-03-27 15:16:03

대한민국을 개혁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다

[기고] 김형진(전북대 16학번)...전북시민원탁회의 참가기


... 편집부 (2017-01-18 00:40:15)

IMG
※ 필자는 지난 12일 전북시민원탁회의에 참가했다. 전북교육신문의 요청으로 원탁회의 참가기를 기고했다. [편집자]

(사진=김형진)

학교 게시판에 붙은 원탁회의 홍보 종이를 보고, 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런 회의에서 얘기할 만큼 사회에 대해 박식하지 않아서 가지 않기로 했다. 며칠 뒤 친구가 같이 가자고 했고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친구를 따라 원탁회의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회의장을 보자마자 후회했다.

내가 상상했던 크게 둥근 한 탁자에 앉는 형식이 아니라 6명 정도가 조를 만들어 모여 앉아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 당 더 많은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없었다.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초면인 조원들끼리 덜 어색해지기 위해 전문 강사가 와서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인사도 하고 손도 잡고 안마도 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즐거워보였지만 나는 여전히 어색했다. 오히려 서로 이야기할 때가 더 편했다.

이제 그토록 걱정하던 회의 시간이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돌아가며 했다. 소개가 끝나고 촛불 집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돌아가며 말했다. 나는 길을 잃었을 때 태극기 집회 쪽으로 와서 그 무리를 뚫고 지나갔을 때를 얘기했다. 그때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때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날까 씁쓸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두 의제가 너무 비슷한 게 좀 의아했다. 첫 번째 의제는 ‘한국 사회에서 내가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였고 두 번째는 ‘동네, 학교, 직장에서 내가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였다. 5분 생각하고 적을 시간을 주고 발언 시간은 1분이다.

같은 조 아저씨께서 짧게 두 줄을 쓰셨는데 그 중 한 줄이 ‘서열 폐지’였다. 여태껏 서열을 평가 기준으로 경험한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이미 나는 몇 명보다는 위고 몇 명의 밑에 있다고 마음속으로 재는 일이 버릇이었는지 조금 충격을 받았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지도 그리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평가 방식에 상처를 받거나 무뎌진 채로 살아가고 있겠지 싶어 서글퍼졌다.

내가 말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잘 말할 자신이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마구 적었다가 핵심만 추려내서 다시 정리했다. 요즘 시국 때문인지 ‘부정부패 없는 사회로 바꾸고 싶다’는 글이 나왔다. 비리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하는 순간 조원들이 반가워했다. 지금은 모두가 반가워할 세상이겠다. 조에서 하나둘 회의가 끝나고 우리 조도 끝이 났다. 사람들의 생각 하나하나를 화면에 띄워서 판정단이 몇몇 글에 노란색 표시를 했다. 그 노란 생각들 중 사회자가 지목하면 그 생각의 주인이 일어나 보충 설명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덧붙이거나 반론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뇌물을 막기 위해 현금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웃고 박수를 쳤다. 일리 있지만 적합한 해결책 같지는 않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이 농구 골대 뒤에 숨어서 담배 피는 학생이 많다며 한 번만 더 보이면 농구장을 없애버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 되는 것을 건넬 것이고 결국은 체계나 징벌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두 번째 의제를 시작하기 전 회의를 도와주시는 분이 환경운동연합 소속이라 하셔서 궁금한 것을 여쭤봤다. 집회에서 노란 풍선을 하늘 위로 올려 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니까, 의미가 있으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라 대답하셨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풍선이 바닷가로 떨어지면 거북이가 먹이로 착각한다고 하는데, 좋은 의미이니 만큼 더 친환경적으로 연출했으면 좋겠다.

이제 두 번째 의제에 대해 5분 동안 내 생각을 적는다. 동네, 학교, 직장에서 바꾸고 싶은 것... 나이를 넘은 평등이 만연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잘못한 선배,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어른에게 침묵한다. 성인이 되면 같은 어른끼리니까 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할 것 같아서 다른 것을 찾으려 했고 나중에 ‘나이주의 문화 철폐’라는 단어가 올라왔다.

또 생각난 단어가 ‘쓸데없이 근엄한 사회’였다. 가수 배철수 씨가 한 말인데 무언가 확 와 닿았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앉아서 머리만 굴린다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직장은 쓸데없이 근엄하다. 왜 회의하다 던진 신입사원의 농담에 한바탕 웃기가 힘들까. 재미와 가벼움은 다른 것이니까 직장 문화가 재미있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쓸데없이 근엄하지 않은 사회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조원 분들 중 한 분이 너무 멋진 말이라고 하셨다.

한 조원 아저씨의 ‘부탁을 받으면 감동을 주자’는 생각도 멋있었다. 초등생이었을 때는 부탁을 받으면 감동을 주려 했는데 더 자라서부터는 감동은커녕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 지부터 걱정한다. 내 생각에 노란 표시가 되고 엄청 긴장이 되었다. 사회자는 내 의견을 지나쳤다.

‘생태 놀이터를 조성하기’라는 의견이 나왔다. 지금까지 들은 의견 중 가장 놀라운 의견이었다. 나 어릴 적 놀이터와 요즘의 놀이터는 많이 다르다. 의견 내신 분이 우레탄 같은 안 좋은 물질로 만든 놀이터보다는 아무 것도 없고 줄을 많이 달아놓은 놀이터가 더 친환경적이고 아이들의 창의력도 키울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네라고 다 똑같은 그네가 아닌 조금은 다른 그네, 조금은 다른 놀이터를 주장하셨다. 아무리 놀이터가 더 좋고 안전하게 바뀐다 해도 아이들이 학원 가느라 놀이터에 나올 시간이 없기는 하다는 말씀은 슬펐다. 사회자가 발언하고 싶은 분 없냐고 할 때 손을 들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냐고 대단하다고 마구 표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을 종합하여 투표를 진행했다. 휴대폰으로 투표 사이트에 들어가서 투표를 하고 얼마 안 있어 투표 결과가 바로 나왔다. 사람들은 결과를 열심히 찍었다. 나는 찍지 않고 뚫어져라 보면서 ‘나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저것에 관심이 많구나’하고 생각했다. 단체 사진을 찍고 모두 수고했다고 박수를 치며 원탁회의가 끝났다.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진행에 완성도 높은 행사라 생각한다. 다음에도 이러한 원탁회의가 열린다면 꼭 갈 것이다. 다시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