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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사람

[홍순천의 ‘땅 다지기’(41)] 진안 봉곡마을


... 편집부 (2017-11-29 23: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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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홍순천)

눈다운 눈이 내렸다. 소담한 눈을 뒤집어 쓴 장독대가 창밖에서 빛난다.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함박눈은 하루 종일 마당가를 서성였다. 열렬한 기다림 끝에 만난 그리운 사람과 포근한 이불을 덮고 도란거리는 설렘이 가득한 겨울이다.

작은 일로 시작해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 발표한 이론이다.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얘기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브라질 숲속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이 이론은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작년 이맘때쯤, 분노에 가득 찬 국민들이 기대와 자포자기를 끌어안고 촛불을 들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요동치는 촛불은 추위를 무색케 했다. 그때만 해도 일 년 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다만 분노를 표출하고 나라가 바로서기를 외치는 한풀이만으로도 족했다. 촛불의 힘으로 가짜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웠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그동안 겹겹이 감춰왔던 치부가 드러나자, 과거의 치졸한 권력자들은 역공세로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가증스런 그 논리는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나중에 야기될 문제를 어찌 감당하시려고... 불행하게도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나비효과를 무시하거나, 모르는 무지함이 돋보이는 현실이다.

촛불의 분노를 일깨운 한 언론사는 한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심에는 '손석희'가 있다.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그의 냉철한 까발림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효자손이었다. 지금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뾰루지를 긁어대는 뚝심이 존경스럽다. 그는 보수다. 손석희야말로 진짜배기 보수다. 엉터리 논리로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세력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근본주의자다.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권력의 중심인 국민들의 안녕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보수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파리 꼬뮌처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태초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혼돈은 카오스, 우주 자체이고 창조의 기반이다. 카오스는 매우 복잡하고 불규칙하며 불안정하다.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은 뻔하다. 잠언에서는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에게는 재앙이 덮으리라'고 했다. 혼돈스런 세상에 바람직한 창조의 실마리를 제공한 손석희는 의인이다. 신념을 꺾지 않고 올바른 세상을 지키는 그의 행보에는 변함없는 기대감이 따라다닌다.

혼돈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최근 재판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분해서 못살겠다.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고 발버둥치는 파렴치가 분노를 배가시킨다. 의롭지 못한 입으로 민주와 공정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는 일이다. 악인에게 의롭다 말하는 판관은 저주를 받고 국민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적당한 말로 판결하며 대답하는 자는 악인에게 입맞춤하는 것이니 까닭없이 네 이웃을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 것이며, 남을 속이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성서의 가르침이다. 시대가 달라지기는 했어도 사람 사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성서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할 일이다.

나비처럼 나풀거리던 눈발은 멎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기다리는 마음을 놓지 않으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 하나는 알게 되었다. 다가올 동지섣달을 견디게 할 힘은 희망의 불씨뿐이다. 우리 마음속에 작은 불씨 하나 꺼뜨리지 않고 품으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선배의 위로에 가슴 따뜻해지는 겨울이다. 겨울이라 더 따뜻해지는 말이다.


▲까치에게도 밥은 남겨 주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