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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평화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김진영(사회진보연대 반전팀)


... 편집부 (2018-02-26 14: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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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진영)

[한반도를 위협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

새해 벽두부터 예상치 못한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은 “동족의 경사”라며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힌 것이 시작이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끊겼던 판문점 연락 채널이 복원됐다. 이어 남북은 평창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선수단 참가와 동시 입장, 한반도기 사용, 그리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합의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한·미 군사훈련도 하지 않기로 했다. 온 언론이 남한을 방문한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열을 올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계속되고 한반도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직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근 몇 년간 한반도 정세는 올림픽 같은 단발성 이벤트로 해결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첫째, 북한이 또 다시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한다면 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 둘째, 이로 인해 미국이 인내심을 거두고 북한을 선제 공격할 경우 모든 남북 대화는 무위로 돌아간다. 북한의 추가 실험은 이를 더 부추길 수 있다. 현재 객관적인 한반도 정세를 보면, 이 두 가지 시나리오의 가능성 모두 커지고 있다. 게다가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시나리오1 :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실험 가능성

2017년 북한은 여러 굵직한 핵·미사일 실험을 단행했다. 7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호를 시험 발사했다. 9월에는 6차 핵실험, 11월에는 화성-15호 발사 시험이 이어졌다. 화성-15호 발사 직후 김정은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선 화성-14호 발사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동식 발사대는 발사 시기와 위치를 은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핵·미사일 시설이 상대의 핵 공격으로 파괴되더라도 곧바로 다른 곳에서 상대방에게 반격할 수 있는 이른바 ‘2차 타격 능력(second strike)’도 가질 수 있다. 또한 화성-15호는 사거리가 약 1만 3000킬로미터로 추정되는데, 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사정거리에 둘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아직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능력이나 미사일에 실을 수 있을 만큼 핵탄두를 소형화할 수 있는 능력은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역대 핵보유국들의 전례를 보면, 북한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발언은 머지않아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직접 핵무력 완성을 강조하고 핵·미사일의 대량생산과 실전 배치를 언급했다. 그런 만큼 실험을 중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핵 기술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추가 실험은 불가피할 것이다. 설령 올림픽 이후에 남북 혹은 북미 대화가 이어지더라도 추가 실험으로 상황이 다시 악화될 수 있다.

시나리오2 :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멈추지 않는다면 미국은 선제 군사공격을 더욱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다. 미 행정부 고위층들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8월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국 공격 위협을 막기 위한 예방적 전쟁(preventive war)을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 역시 ‘김정은 참수 작전’을 언급하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대북 군사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대응을 네 차례나 목격했다”고 발언했다. 트럼프는 대놓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한반도) 죽는 것이지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니”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북이 핵무기를 완성하게 내버려 두느니 남한의 피해가 있더라도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2017년에 진행된 한미군사훈련들은 단순히 북한에 위협을 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 대북 공격 시나리오를 연습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10월 한미 해군은 미군의 항공모함,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막대한 규모의 전략자산을 동원하여 북한 지도부 ‘참수 작전’ 및 동해와 서해를 오가며 벌이는 방공전, 대잠전, 해양차단 작전, 대함·대공 함포 실제 사격 훈련을 진행했다. 북한의 화성-15호 발사 이후인 12월에 실시된 한미 연합공군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역시 F-22 전투기와 B-1B 폭격기 등 미 항공 전력 230여 대가 한반도에 출동하는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 등을 정밀 타격하는 고강도 연습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실질적인 시나리오가 존재한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작년 엔비씨(NBC) 뉴스는 미 국방부가 남한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기 위해 국제 공역(空域)에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지를 폭격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이 추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기 전에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하거나 미사일 보관 무기고를 타격하는 작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이 작전의 이름은 ‘블러디 노즈(코피)’다. ‘블러디 노즈’ 작전의 존재는 빅터 차 주한 미 대사 내정자가 낙마하는 과정에서 기정사실화되었다. 빅터 차가 미 행정부 내 대북선제공격 옵션에 반대의견을 밝힌 것이 낙마의 주요한 이유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북한을 더욱 압박하는 유엔 대북 제재

트럼프는 실제로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대신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맞서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전제 조건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북 제재를 살펴보자. 지난해 통과된 안보리 결의는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라는 목적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따른 안보리 결의 2371호(2017년 8월)는 북한 총수출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던 광물 수출과 석탄 수출,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통과된 안보리 결의 2375호(2017년 9월)에서는 섬유 제품 수출까지 차단하면서 북한의 주력 수출품목들의 대다수가 차단됐다. 북한의 전체 수출품목 중 약 90퍼센트가 향후 수출길이 막히게 된 셈이다. 그리고 정유 제품 수입이 200만 배럴(약 28만 톤)로 제한되면서 유류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이 신규로 해외 파견하는 모든 형태의 노동자에 대한 고용을 금지했고, 북한과의 모든 합작·협력 사업을 금지하는 한편, 기존 진행 사업도 120일 이내에 폐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북한의 거의 모든 외화 확보 채널에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민생과 관련된 품목(유류)에도 최초로 수입제한 조치가 시행된 것이다.

화성-15호 발사 이후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2017년 12월)는 정유 제품 수입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삭감했고, 대북 수출·수입 금지 항목을 확대하였다. 대북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회원국 항구와 영해에서 금지행위에 대한 연루가 의심되는 북한 선박을 검색·동결·억류하도록 의무화한 ‘해상 차단’ 조치 강화도 화제가 됐다. 해상 차단은 해상을 무력으로 봉쇄해 교역 및 통상을 막는 ‘해상 봉쇄’와는 다르나, 이 역시 많은 역량 투여가 필요하고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제재와 봉쇄의 어려운 생활”을 언급한 것을 보면 고강도 대북 제재가 실제로 북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의 연간 대외수출액은 2010년대 기준 30억 달러에 달하고, 그 중 90퍼센트 정도가 대중국 수출이다. 대북 제재에서 중국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중국 해관총서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12월 중국의 대북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23퍼센트, 대북 수입액은 82퍼센트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북·중 무역 규모는 전년 동월 대비 51퍼센트 감소했다. 2017년 전체 북·중 무역 규모는 2016년에 비해 10퍼센트 이상 줄었다.

이와 같은 고강도 제재는 북한 민중의 삶에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 주민 수입의 70퍼센트 이상이 시장 경제 활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북한은 이미 상당히 ‘개방된’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대북 제재의 영향을 받는다. 전체 수출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석탄·의류 수출 금지조치는 수십만 명의 실업자 발생으로 이어지고, 석유 가격 상승은 식량 생산과 유통을 힘들게 하여 식량난을 일으킬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석유 가격이 폭등하고 식량 배급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더 검증이 필요하나, 주요 수출길이 전부 차단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북한 민중의 삶에 대한 파급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북제재가 북한 정권에 미치는 영향은 불확실하다. 정권의 안정 보장이 핵 개발의 근본적인 이유인 만큼, 대북 제재의 효과가 파괴적이더라도 북한 정권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최소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북한 정권이 버티기로 일관한 선례도 있다.

대화와 군축 협상이라는 다른 선택지를 무시하고 핵을 빌미로 북한 민중의 목숨을 볼모로 삼는 것이 대북 제재의 현실이다. 이는 절대 정당화할 수 없는 인권 탄압이다. 물론 제재에 핵무장과 ‘버티기’로 맞서는 북한 정권의 행동 역시 한반도 평화와는 동떨어진 행동이며, 미국의 선제공격 욕구마저 자극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산을 넘을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대화 신호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그 결과 빠르게 올림픽 참여를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평창 올림픽 이후 대화의 장애물을 넘기 어려워 보인다. 여러 조건이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 노선이 근본적으로 한미 동맹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이야기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를 자임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미국에 계속해서 ‘한 수 접어주는’ 모습을 보여 왔다. 사드 한반도 배치, 고강도 한미군사훈련 등에 동참하였으며, 트럼프의 유엔 총회에서의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연설을 칭찬하기도 하였고 이번 남북대화의 공을 트럼프에게 돌렸다. 평창 올림픽 이후 북한의 직접적인 요구(한미군사훈련 중단 등)나 군사행동이 있을 시 미국이 한미 군사동맹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결국 미국의 요구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독자적으로 UN 대북제재를 우회하여 남북 경제협력을 진행할 통로가 마땅치 않은 것 또한 큰 난점이다.

두 번째는 남한 내의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한반도기 사용,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등에 대한 여론은 반대 반응이 우세하다. 극우 세력은 이를 가지고 문재인을 공격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여겨져 온 20~30대의 반대 여론이 강하다는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어떠한 기준으로 보더라도 1991년 첫 남북단일팀(탁구) 결성 때와는 다른 분위기임이 확실해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와 북한의 거듭되는 핵·미사일 실험의 결과다.

반짝 이벤트가 아닌 항구적 평화를 위해

대화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깨지면,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냉랭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이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이 올림픽 이후에 더 큰 대북 압박과 위협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이 밝힌 대로 4월에 한미군사훈련 재개를 강행하여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실험에 빌미가 된다면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것이다. 이 대화 국면을 군사훈련 중단, 대북 제재 중단으로 이어나가야 한다. 북한 역시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평창동계올림픽은 말 그대로 ‘반짝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