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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시를 읽히자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상훈(마령고등학교 교사)


... 편집부 (2018-07-02 13: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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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상훈)

지난주에 복효근 시인이 학생들과 함께 시 이야기를 나누고 다녀갔다. 복효근 시인 강좌가 있기 전에 학생들에게 복효근 시인의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 낭송시간을 가졌다.

꽃이라면
안개꽃이고 싶다

장미의 한복판에
부서지는 햇빛이기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거드는
안개꽃이고 싶다

나로 하여
네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네 몫의 축복 뒤에서/나는 안개처럼 스러지는
다만 너의 배경이어도 좋다

마침내는 너로 하여/나조차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어쩌다 한 끈으로 묶여
시드는 목숨을 그렇게
너에게 조금은 빚지고 싶다.
(안개꽃)

누구나 읽으면서 쉽게 이해되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감동을 주는 글이다. 안개꽃에서 사랑을 불러내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은 참 멋지다. 또 한편의 시는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토란잎에 궁구는 물방울 같이는)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이 시를 읽으면 토란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알 듯 모를 듯 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편의 시를 읽고 낭송하면서 학생들은 복효근 시인을 기다렸다.
최근 복효근 시인은 청소년 시집 『운동장 편지』(창비교육)를 출간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의 일상을 공감하면서 시집을 묶어냈다. 열여섯 살의 화자가 되어 시인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했다. 두근거림, 설렘을 시로 표현했다. 교실·학교에서 순수한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복효근 시인은 시는 인간의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를 통해 우리는 무디었던 감성을 깨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란 한 단어로 되살아난다.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게임에 빠져 기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감성을 되살리는 방법 중 하나는 시를 접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운동장 편지』에 실린 아이들 감정의 편린(片鱗)들은 순수했던 우리 기성세대의 자화상이다. 『운동장 편지』에는 교직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린 필자에게도 반성과 그동안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했다.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 나이든 선배 교사를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았던 모습들이 이제는 필자가 그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과 소통, 공감이 갈수록 부족하고 일상화된 생활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이래서 수업하기 싫다며 승진하는 교사들의 강변도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꿈의 학교’ ‘선생님은 모르는 것’ ‘우리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정조군’ ‘어떤 대결’ ‘자리 바꾸기’ ‘글쓰기’ ‘현장체험학습’ 등은 필자 자신에게 학생들이 들려주는 학교이야기 같았다. 세상 물정 모르고 교직을 시작했을 때 학생들과 부딪길 수 있었던 것이 열정이라면 그런 겁 없었던 때가 그립다. 전교조 출범과 함께 교직을 시작한 필자에게 ‘참교육’은 심장에 자리 잡은 교육의 화두였다. 이제는 심장을 힘껏 두드려도 박동소리가 없이 너무 여유롭게 순응하는 생활이 필자의 자화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운동장 편지』는 필자에게 속삭인다. 공감 능력을 기르라고,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운동장 편지』는 필자가 읽어야 할 시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잠들었다. 필자는 그날 『운동장 편지』 꿈을 꾸고 싶었다.

주말에 눈이 엄청 내렸습니다. 월요일 아침도 먹지 않고 새벽같이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아무도 지 나 가지 않은 하얀 운동장에 발자국으로 하트를 그렸습니다. 하늘에서 잘 보이도록 운동장에서 가득하게 하트 안에 내 사랑 ‘이진성’도 썼습니다. 저런 정성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나 더 하지 하시는 선생님 잔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내 마음 읽어 주셨을 테니까요.(운동장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