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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개혁개방? 미래는 불투명하다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준혁(사회진보연대 반전팀)


... 편집부 (2018-09-06 10: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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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준혁)

7월쯤의 일이다. 서점에 들렀다 잡지 하나를 집었다. 7월 17일 자 시사인. 마법처럼 표지에 끌렸다. “도이머이 북한의 미래?” 휘황찬란한 호치민 시 야경. 그리고 눈에 띄는 ‘베트남 현지 취재’라는 글귀. 감탄했다.
도이머이는 베트남 말로 ‘쇄신’이라는 뜻이란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 6차 대회에서 채택된 슬로건으로, 사회주의에서 시장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북한이 여기에 주목하고 있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 다리 산책’을 하던 중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언급했다.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베트남 모델을 배우겠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도 베트남 모델로? 대외 관계가 큰 변수다

잡지를 펼치니 베트남 모델이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베트남 현지 취재와 편집진의 분석기사로 가늠해보고 있었다.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한다. 주로 미국과의 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해외투자도 유치할 수 없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 없는 도이머이는 반쪽짜리였다. 베트남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부터다. ‘20년 전’은 미국과 수교한 1995년을 뜻한다.” (시사인, <호찌민 풍경이 바로 평양의 미래?>, 565호.) 심지어 현지 인터뷰를 빌려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사인, <경제 개방과 체제 유지 어떻게 둘 다 잡았나>, 565호.)
남북 평화와 교류를 염원하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담긴 USB를 건넸고, 5월 3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미국은 뉴욕의 빌딩 숲을 보여주며 비핵화만 한다면 안전과 번영을 약속하지 않았나. 그러고 나서 한반도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하더라도 경제 발전 전망이 별로 좋지 않다면, 기껏 시작한 한반도 화해 무드의 동력도 약해질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현 단계로서는 북한이 경제 발전을 할 만한 동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 집권 이후 일종의 지하 경제인 ‘장마당’과 신흥 자본가라 볼 수 있는 ‘돈주’들이 늘어나는 등 시장 경제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 북한 경제의 현실을 짚으면서 하나하나 살펴보자.

북한은 해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나

시사인의 지적대로 해외 투자가 없이 북한 경제가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산업 자체가 상당히 붕괴, 후퇴했기 때문에 내부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2차 산업 중심이던 산업구조가 붕괴했다. 1990년 40퍼센트를 차지했던 공업의 비중이 2000년에는 25퍼센트로 하락했다. (2010년 36퍼센트로 일정 부분 회복하기는 했다.) 이렇게 산업화 수준이 하락한 상황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려면 해외자본 유치에 크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꾸준한 개혁‧개방 조치가 필요하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개혁‧개방 이후 대체로 10년 정도 지나서야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개방 이후 가격 및 무역자유화, 무역제도 및 환율제도의 정비 등 대내외적으로 안정적인 시장경제 여건을 확립하는 것만도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치를 한다고 투자가 바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해야 외국기업들이 안심하고 무역과 투자를 본격화할 수 있다. 북한의 시장경제 여건 확립도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고, 그 동안 개혁‧개방 조치가 꾸준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처럼 비핵화 협상이 삐걱댈 경우 해외투자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노동력은 풍부한가

노동력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도 장애물이다. 노동력이 없다니? 북한의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과 남한의 남아도는 자본이 만나면 통일 대박!..이 아니었나?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만 북한 경제 전체를 보면 노동력이 생각보다 큰 장점이 되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농촌의 남아도는 인력, 즉 농촌 과잉인구가 생각보다 적은 것이 문제다. 1960~70년대 남한이 공업화할 당시, 이들은 큰 역할을 했다.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쏟아졌다는 건 노동자 공급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임금은 저임금으로 유지되었다. 걸음마 수준이었던 남한 제조업이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 시절 산업도시로 떠나 졸음을 참아가며 수출의 역군이 되어야 했던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눈을 돌려 중국을 보더라도 개혁‧개방 이후 ‘농민공’으로 불리는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도시로 쏟아지면서 중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에 큰 보탬이 되었다.


▲북한의 장마당

북한의 경우는 어떠할까. 북한은 이미 많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총인구의 61퍼센트가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통일부 북한 정보포털, 2013.) 개혁‧개방 당시 중국의 18.7퍼센트(위의 논문)나 60년대 남한의 38퍼센트(국토연구원, 2010.)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북한이 이미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조사도 많다. 북한에도 ‘베이비붐’ 세대가 있었다. 대체로 1970년대 초반까지다. 이 당시 여성 1인 당 합계 출산율은 4~5명대를 유지했으나 이후 하락하여 2015년에는 1.97에 머물고 있다. 저소득 국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지표다. 인구 고령화도 진행되어 2004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퍼센트를 넘어서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2030년부터는 인구증가가 멈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개혁개방을 이끌 강력한 리더십이 존재하나

정치적 요인도 북한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다. 미국과의 협상 문제 얘기가 아니다. 공산당의 대내적 통치력 문제다. 물론 광화문 태극기부대의 호들갑처럼 김정은과 북한 노동당이 주민들의 신뢰를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개혁 개방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부호가 붙는다.
중국, 베트남의 성공에는 공산당의 강력한 통치 역량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고지도자 등 지도부의 교체가 원활할 때 더욱 과감하게 정책을 전환할 수 있다. 정책에 대한 당의 지지도 확고해질 수 있다. 양국 모두 대표적인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과 호찌민이 70년대에 사망하면서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했다. 훨씬 유연한 선택과 정책 전환이 가능한 정치체제인 셈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당국은 장마당과 돈주의 경제 활동을 사실상 허용하는 등 시장화 개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부분은 1980~90년대 소련, 동유럽보다는 좋은 조건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중국, 베트남만큼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고 지도자 1인에 대한 개인숭배가 확고한 탓에 과감한 개혁조치가 실패할 경우 체제가 짊어질 부담이 크다. 이를 두려워하여 개혁조치가 소극적으로 되거나,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당 간부의 충성심이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다.

설레발보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보아야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바깥세상의 설레발일 수 있다. 예전보다 많은 것이 알려졌다지만 여전히 북한 사회는 베일에 감춰져있다. 북한 지도층이 체제 온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대대적 개혁개방 없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다소 완화하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서두에 지적한대로 현재의 평화 무드의 원동력이 약해지거나 얻는 것이 제한적일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가능성은 열려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남북 경협, 화해에 너무 큰 기대를 걸 때는 아니라는 거다. 4-5월만 해도 탄탄대로를 달리던 비핵화 협상이 이리 지지부진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나친 설레발보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