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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3 17:19:50

아낌없이 주는 나무(1) : 칡

[동산바치의 花和人仁(10)] 김근오(꽃마실카페)


... 편집부 (2018-12-23 20: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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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근오)

동산바치의 “花和人仁”
[열번째 이야기-아낌없이 주는 나무(1): 칡]

앙상해진 나무들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계절 12월입니다.
꼿꼿한 나무들을 휘감고 자라던 덩굴나무들도 이맘때면 그 몸체가 여실히 드러나지요.
그 덩굴들 중에 가장 왕성하게 자라던 놈은 아마도 칡넝쿨이 아닐까 싶습니다.
칡넝쿨을 좇아 뿌리를 파보면 꽤 굵직한 덩어리를 건져올리기도 합니다.
어린시절 달짝지근한 맛에 간식거리로 즐겼던 바로 그 칡뿌리이지요.
칡은 먹거리뿐 아니라, 옷감이나 공예품 등 그 용도가 다양합니다.
그럼 수천년 이땅에서 민초들과 동고동락해온 칡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칡은 식물분류학상 콩과 칡속에 속하며 학명은 Pueraria thunbergiana BENTH이고, 영어명은 arrowroot 또는 kudzu vine, 한자명은 葛, 일어명은 くず(쿠즈)입니다.
칡의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라고 하는데, 미국 등에는 일본으로부터 칡이 처음 전래되었으며, 그 이름을 보게 되면 전파과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이름인 くず(쿠즈)가 영어명 kudzu가 되었고, arrowroot는 인디언 화살의 독을 풀어주는 식물뿌리라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름으로 보자면 칡의 해독기능도 함께 전파된 셈이네요.



칡나무는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습니다.
먼저 먹거리와 약으로의 쓰임새가 있는데, 뿌리, 잎, 꽃 등이 해당되지요.
다음으로 섬유를 뽑아 옷이나 신을 만들거나,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는데, 주로 줄기부분이 해당되지요.
그리고 칡의 왕성한 생육특성을 활용한 사방조림 용도가 있습니다.

그럼 식물 부위별로 좀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참고자료1)
칡의 땅속 뿌리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어 흉년에 구황식량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칡의 뿌리에서 걸러낸 녹말가루가 갈분인데, 이것을 녹두가루와 섞어 국수 또는 수제비를 만들거나 쌀가루를 섞어 죽을 끓여 먹기도 했지요.
한방에서는 발한, 해열, 진경(鎭痙)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하여 뿌리를 약재로 써 왔습니다. 특히 칡은 술을 덜 취하게 하거나 주독을 풀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애주가들이 종종 찾기도 합니다.
한여름 향기롭게 피는 칡꽃은, 주독을 없애고 하혈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민간에서 사랑받아 왔습니다.

칡의 줄기와 잎은 가축의 사료나 퇴비용으로 괜찮게 쓰입니다.

칡의 줄기에서 뽑아낸 섬유는 ‘청올치’ 또는 ‘칡오락’이라 했는데, 이것을 이용해 짠 옷이 갈옷 또는 갈포(葛布)입니다. 갈포는 한때 선조들의 의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갈옷은 비를 맞아도 피부에 달라붙는 일이 없으며, 땀에 젖은 것을 그냥 두어도 쉽게 썩지 않았기에, 세탁을 할 때도 비누가 필요하지 않았음은 물론 물이 빨리 빠지므로 실용성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갈옷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요, 과거 1970년대에는 청올치 베짜기가 농가의 짭짤한 수입원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참고자료2)

또한 짚신도 칡의 속껍질로 꼰 ‘청올치’로 엮어 갈혜(葛鞋)를 만들었답니다. 신바닥과 신총을 모두 칡으로 삼거나, 신바닥을 짚으로 하고 신총만 속껍질로 만든 짚신도 있었답니다.

손가락처럼 가는 칡의 줄기는 주로 삼태기나 바구니 따위를 엮을 때 필요했으며, 농가에서 쓰는 키의 쳇바퀴를 매거나 도리깨 등을 묶는 등 주로 힘을 받는 곳에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질긴 줄기의 섬유는 닻줄이나 물고기를 잡는 데 쓰이는 주낙줄로도 인기가 좋았다지요.

한편, 칡은 햇빛이 많은 야산에서 생장이 왕성합니다.
추위에 강하고 바닷가의 염기에도 잘 견딜 뿐만 아니라 마른 땅의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지요. 때문에 사방사업용이나 도로 절사면의 토양 유실 방지에 활용합니다.
미국 등지에 칡이 도입된 것도 그러한 목적에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들이 통제범위를 벗어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문제를 일으키듯이, 칡 역시 왕성한 생육 탓에 다른 식물들을 고사시키는 등 생태계를 교란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물론 키큰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 숲이 형성되면 자연스레 칡이 설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고, 예전의 안정된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때때로 칡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는 것은, 안정적 숲이 들어설 여건을 인간들 스스로가 방해하고 있는 데에 그 근본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주갈옷

칡의 여러 가지 쓰임새를 접해보니, 칡이 생활 속의 오랜 벗이었구나 싶네요.
한때 민간의 유용한 생활재로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은 다른 값싼 소재들에 밀려서 인기가 별로 없어졌다는 사실,
사람에게 이롭게 쓰일 때는 대접을 받으나, 조경과 농업에 해롭다고 판단될 때는 푸대접 내지는 박해를 당하기도 한다는 사실,
그래도 여전히 한방과 민간 약재로는 여전히 한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새삼 깨닫습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했는데, 갈생무상(葛生無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어떻게 대접을 하든지 간에 칡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갈 것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이방원의 하여가 노랫말처럼 말이지요.
내년 봄 돋아나는 칡의 새싹처럼, 인간의 희망도 힘차게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참고자료
1. 서울타임스(http://www.seoultimes.net) 송홍선 식물연구소장 ‘풀꽃나무타령’
2. 중앙일보 1971년 옥천지방 기사


※ 제목 설명
위 ‘화화인인(花和人仁)’은 ‘꽃은 어울리고, 사람은 어질다’라는 뜻으로 자가제작한 표현인데, 꽃마실 카페 여는 잔치의 부제이기도 했다.
중문식으로 보자면 ‘꽃이 사람과 더불어 어질다’라는 뜻이 될 텐데, 더 나아가 ‘꽃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사람이 어질 수 있다’는 확대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동산바치 소개
본 코너지기인 동산바치 김근오는 현재 전주에서 ‘꽃마실’이라는 플라워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원예학을 전공했으며, 귀농을 준비한 지 오래되었고, 꾸준히 텃밭농사도 짓고 있다. 틈틈이 산과 들의 식물들을 만나며 관련지식을 쌓아 가는 중이라고.

동산바치 : 원예사 또는 정원사(gardener)를 뜻하는 순우리말.

[편집자] <동산바치의 花和人仁>은 월 1회, 네째 주 화요일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