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과 ‘감자’
[수현이의 문학생각 - 한국현대문학 읽기(3-김동인)]

( 편집부 기자    2019년 06월 05일 07시10분   )
     


(글=문수현, 그림=강현화)

평안남도 평양 태생이며 호는 금동(琴童) 또는 시어딤인 김동인(1900~1951). 우리에게 친근한 작품으로 ‘약한 자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광염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광화사’ 등이 있다.

그를 안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자랑거린 아니지만 그때 나는 거짐 ‘수포자’(나중 생긴 말이다)였고, 공것으로 주어진 수학시간은 소중한 상상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채워준 것이 바로 문학이었고 특히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간 경험을 한 이가 나 하나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얼마 전 이런 추억을 얘기했더니 ‘나도 그랬다’고 하는 이가 있어 반가웠다.

그 시절 나는 참고서를 위주로 파는 학교 앞 책방에서 삼중당문고와 서문문고에서 나온 단편소설집들을 꽤나 사다 읽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소설들이 김동인, 나도향, 현진건 같은 이들의 것이었고, 외국 것으로는 모파상, O.헨리, 체호프 같은 이들의 작품이었다.

그런 소설들은 내게 ‘문학이란,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도향의 ‘뽕’이나 김동인의 ‘감자’ 같은 단편은 ‘나도 소설을 한번 써볼까?’하는 치기마저 솟아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무언가의 실체는 감정을 자극하는 단순성과 ‘도입-전개-위기-절정-대단원’이라고 하는 소설 구성의 도식성 따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김동인을 이곳에 소개하는 것은 그런 개인적인 체험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김동인이 이광수, 염상섭 등과 더불어 한국근대문학의 기초를 놓은 분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특히 독창적인 창작방법론을 표방하고 일관함으로써 우리 문학사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김동인. 그림 강현화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김동인을 소개하고자 할 때는 그의 창작방법론을 빠뜨릴 수 없는데, 그 스스로 가장 김동인다운 작품으로, 즉 ‘인형조종술’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작품으로 꼽은 것이 바로 ‘감자’(1925)다. 줄거리는 이렇다.

▲"작품은 신의 섭(囁)이요"

“싸홈, 姦通, 殺人, 도적, 求乞,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出源地인, 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전까지는 福女의 夫妻는 (士農工商의 第二位에 드는) 農民이었다”(‘감자’ 첫 문장. 국한문혼용체임에 주목하자. 춘원 이외는 모두 이때까지도 이런 문체를 쓰고 있었다). 복녀는 따라서 도덕적 저품(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떤 게으른 건달과 결혼을 한 후는 그 남편과 함께 점점 타락하기 시작한다. 그 타락의 과정을 세 단계로 보여준다. 첫째 단계는 송충이잡이 인부로 복녀가 나가서 감독에 정조를 파는 것, 둘째 단계는 중국인 감자밭에서 감자를 훔치다가 잡혀 매음을 하게 되는 것, 셋째 단계는 중국인 왕서방을 죽이려 하다가 오히려 죽음을 당하는 것.

이렇게, ‘감자’는 처음 상당한 도덕적 상태에 있던 복녀가 환경에 따라 점점 타락하며 밑바닥 인생에 떨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을 그림에 있어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생, 즉 복녀의 인생을 “자유자재로, 인형 놀리는 사람이 인형 놀리듯 자기 손바닥 위에 놓고 놀린”다(‘자기의 창조한 세계’(창조, 1920. 7)). 최근 극장에 걸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비교해보라. 닮아도 많이 닮았다.

김동인의 초기 평론 속 다음의 말이 그의 예술관을 선명히 드러낸다.

“소설가 즉 예술가요. 예술은 인생의 정신이요, 사상이요, 자기를 대상으로 한 참사랑이요. 사회개량, 정신합일을 수행한 자이오. 쉽게 말하자면 예술은 개인 전체요, 참예술가는 인령(人靈)이오.
참문학적 작품은 신의 섭(囁)이요, 성서이오.
인령-소설가-을 붙들어서 ‘인생유괴자(人生誘拐者)’라 하는 것은-즉 ‘소설’을 ‘타락’의 원동력이라 하는 것은 큰(크기도 한정 없이 큰) 오산이오.”
(소설에 대한 조선사람의 사상을, 학지광, 1919. 8.)

여기에는 작가를 신적 존재로 격상시키고 문학을 종교만큼 성스럽게 여기는 태도가 드러난다. 신과 같은 작가가 작중 인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작가 절대 우위의 창작방법론을 문학 활동의 출발 시기부터 뚜렷이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그가 계몽주의에 맞서 사실주의를 주장하고 계급문학에 대항해 예술지상주의를 내세운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1919년 우리나라 최초의 동인지이자 순문예지 ‘창조’를 발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럽다. 1919년 2월 1일 창간호를 낸 이래 1921년 5월 30일 통권9호를 냈는데, 주요한의 ‘불놀이’(1호) 등 본격적인 자유시의 발전과,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1~2호), 전영택의 ‘천치? 천재?’(2호) 등 구어체 문장 개혁과 본격적 순수 문학 운동의 전개 등은 이 잡지의 공적이다(김윤식, 1997).


△'창조' 창간호(1919)

이제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보자. 무엇보다, ‘감자’의 문체는 대단히 간결하다. 김동인과 거의 같은 시대를 산 미국 작가 헤밍웨이(김동인보다 한 살 위)의 문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헤밍웨이의 ‘The Killers’(1927)의 무미건조하고 간결한 문체에 언뜻 대비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감자’는 인간의 본성과 추악한 면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자연주의적 태도를 가진 작품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한국 초기 자연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감자’의 결말은 그런 자연주의적 인생태도와 더불어, 묘사(‘글로 사물을 그린다’는 뜻)를 일체 배제하는 김동인 문체의 특징을 보여준다. 묘사란 어차피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미학관이 작용한 탓이 아닐까?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으로 못갓다. 王서방은 몇번을 복녀의 집에, 복녀의 남편을 차저갓다. 복녀의 남편도 때때로 王서방을 차저갓다. 둘의 새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잇섯다.
사흘이 지낫다.
밤중에 복녀의 시테는 王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겼다.
그러고, 그 시테 압페는 세사람이 둘러 안젓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사람은 王서방, 또 한사람은 엇던 韓方醫. 王서방은, 말업시 돈주머니를 꺼내어 十圓짜리 지폐 석댱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韓方醫의 손에는 十圓짜리 두장이 갓다.
이튿날 복녀는 腦溢血로 죽었다는 韓方醫의 診斷으로 공동묘지로 가저갓다.


이 다섯 문장 속에 사건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누가 이렇게 쓸 것인가! 김동인의 오만함이 보상받기에 충분한 결말이 아닌지!

▲‘감자’를 읽는 다양한 관점

그런데 순문학지 ‘창조’의 두목인 김동인의 이 작품을 프로문학 측에서 칭찬했고 김동인이 이를 비웃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감자’는 민족문학 성향의 잡지인 ‘조선문단’에 1925년 1월 실린 단편인데, 이 해는 프로 문학이 문단에 단단히 자리를 잡아간 해이기도 했다. ‘감자’가 발표되자 프로문학(KAPF) 측에서 이를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하자 김동인은 오히려 비웃고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감자’는 순전히 여인관계를 다룬 것일 뿐, 프로문학과는 구조와 태도에서 다르다는 점에서 김동인이 화를 낸 점이 이해된다. 반대로, ‘감자’가 하층민의 빈궁을 소재로 선택한 점에서 프로문학의 평가도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김동인의 ‘감자’(1925)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최서해의 ‘해돋이’(1926)를 보면 왜 프로문학 쪽에서 ‘감자’를 높게 쳐줬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신경향파 문학은 19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적 낭만주의, 창조파의 자연주의 등 이전의 문학 경향을 부정 혹은 발전시킨 사회주의 경향의 새로운 문학으로, KAPF가 이를 선봉에서 밀고 나갔다. 이 같은 신경향파 문학은 1924년에 출현, ⓵소재를 빈궁한 것에서 취하는 것 ⓶지주와 소작인의 계층적 대립 갈등 ⓷살인과 방화로 결말을 짓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역시 엄연한 차이가 유사성보다 우위에 있다. 작품에서, 복녀가 타락하는 과정의 첫 번째 단계까지는 복녀를 둘러싸고 있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복녀의 체험은 당시 식민지 현실을 반영하는 보편성까지도 확보한다. 그러나 이 다음 단계에서 복녀의 체험은 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제한되며, 따라서 동인 문학의 특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구조로 급변한다. 김동인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이란 ‘인생의 그림자’이며 참인생과는 다른 창조된 인생일 뿐이다(권영민, 1995).


△김동인 단편선 『감자』(1935)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을 두고 ‘복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민족적 운명의 자각을 일깨운다’거나 ‘비탄과 좌절 속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정조를 내던져야했던 서민 여성들의 몸부림을 비극적으로 그렸다’고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향된 해석(민족주의)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이 작품은 물론이요 다른 작품들에까지도 김동인의 철저한 가부장제 의식에서 비롯된 여성멸시사상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국립도서관 인터넷사이트에서 ‘김동인+여성’을 검색어에 넣어보라. 김동인의 여성에 대한 시선, 김동인 단편소설의 여성인물 연구, 1920년대 김동인 현진건 단편에서 여성이미지, 김동인 소설의 성의식 연구 따위 제목을 가진 논문들이 그의 여성관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비판하고 있다.

김윤식 교수도 이렇게 쓰고 있다. “김동인의 작품 모든 곳에 여인은 인격으로 대접되어 있지 않다. ‘나는 매녀가 아니면 흥미가 없다’고 공언할 뿐 아니라, ‘여자에겐 영혼이 없다’라는 말까지 해놓고 있음에랴. 이러한 철저한 가부장제적 사고는 이 집안의 특색이다”(김동인연구, 1987).

1949년에 중풍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김동인은 1951년 6·25전쟁 중에 서울 왕십리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30대 초반인 1930년대 초반부터 이미 신경증으로 심한 불면에 시달렸고, 수면제 과용 속에서 후반에는 아편에까지 손을 댔다.

참고로 김동인의 문학관 형성에 관해서는 김윤식 교수의 ‘김동인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여기서, 김동인은 평양의 토호이자 기독교장로인 김대윤의 둘째 아들(둘째 부인의 첫 아들)로 태어나 ‘집안의 귀공자’로 자랐으나, 아버지나 다름없던 17살 위 이복형의 냉혹함과 맞서야 했으며, 그 길은 또 다른 냉혹성을 창조하는 방식이었다는 것, 인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인형 놀리듯 하는 놀음을 통해 김동인은 맏형에 맞서고 있었던 것이라 분석해놓고 있다. 아울러 ‘인형조종술’에 대한 집착이 김동인을 스케일이 큰 작가로 되지 못하게 만든 장애물이었다는 지적도 한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10년 전인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아버지가 거기에 실린 데 대해 차남 김광명 한양대 명예교수는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쓴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 글들이 그들의 비위를 건드렸나 보다”라고 말했다는 점도 참고삼아 적어두고자 한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문학의 이해(김윤식), 일지사, 1973
김동인 연구(김윤식), 민음사, 1987
김동인(권영민 편저), 벽호, 1995
현대문학사 탐구(김윤식), 문학사상사, 1997
약전으로 읽는 문학사1-해방 전(근대문학 100년 연구총서 편찬위원회), 소명출판, 2008

[글쓴이 문수현은]
전북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
[그린이 강현화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이 연재물은]
격주에 한 번 실리며, 광주드림에 동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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