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밥과自由’를 갈망한 시인 김소월
[수현이의 문학생각 - 한국현대문학 읽기(4-김소월)]

( 편집부 기자    2019년 06월 19일 06시24분   )
     


(글=문수현, 그림=강현화)

▲소월시집 갖고 계시죠?

고등학교 1학년 때다. 나는 학생답게 책가방에 두툼한 영어사전을 꼭 챙겨가지고 다녔는데, 국어사전도 물론 빠트리지 않았다. 더불어 문학 소년답게 한동안 김소월 시집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꺼내보기도 했다.

그런 데는 사실 ‘겉멋’ 이상의 까닭이 있었다. 당시 시작(詩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시 수업의 출발점을 소월 시 읽기에 두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국 근대시가 본격적으로는 1920년대 소월 만해 육사 상화의 시로부터 시작되고 대표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보던 소월 시집은 《지식산업사》에서 나왔고 표지가 회색빛이었으며 출판사 이름이 한자로 인쇄되어 있었다(知識産業社)는 것, 출판연도는 1983~85년 무렵이라는 것 따위 밖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책을 ‘잃어버린’ 지는 무척 오래됐고, 문재(文才)가 없다고 느껴 일찌감치 시작 수업을 멈추면서 소월을 ‘잊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소월시집을 가져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를 누가 비난하지 않겠지만, 나로선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문학의 애독자를 자부하기에 더 그렇다. 이제 김소월의 작품을 다시 곁에 둘 때가 되었다.

물론 이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몇 종류의 소월 시집과 전집류를 가져다 펼쳐두고 있다. 하지만, 수없이 출판된 소월 시집 또는 전집 가운데 정작 어느 것을 선택해 구입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서는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이 글의 독자에게는 소월이 쓴 시들 가운데 이것저것 가려 뽑은 선집(選集)보다는 소월의 모든 작품을 망라하는 전집 또는 시 전집을 장만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소월이 쓴 작품으로 판명된 시는 대충 250여 편이다. 이에 더하여 두 편의 소설과 세 편의 수상, 그리고 한 편의 평론과 기타 서간, 산문, 번역 등이 우리에게 전해진 그의 작품 총량이다. 기존의 소월 시집들은 대개 편집자의 기호와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고, 선별·누락·오염·개작 등의 문제 때문에 소월시라는 ‘숲’을 파악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김소월시집 '진달래꽃'(1925)

《진달래꽃》(1925)에 실린 그의 시 ‘父母’를 보자.

落葉이 우수수 떠러질때,
겨울의 기나긴밤,
어머님하고 둘이안자
옛니야기 드러라.

나는어쩨면 생겨나와
이니야기 듯는가?
묻지도마라라, 來日날에
내가父母되여서 알아보랴?

대중가요로 작곡돼 더 유명한 이 시는 다른 시 ‘개여울’과 더불어 나의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하다. 이 시를 읊조리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소월의 고향 평안북도의 겨울은 참으로 길기도 하고 춥기도 했겠다, 그런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얘기했다는 저 대목은 분명 허구는 아닐 테지,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도 빼놓지 않고 두 번이나 말했구나, 그러나저러나 100년 전 저때도 낙엽은 ‘우수수’하고 떨어졌나 보다 등등.

무엇보다 ‘내가父母되여서 알아보랴?’ 이 대목이 절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 ‘알아보랴?’가 가요에서 ‘알아보리라!’로 둔갑한다. 소월의 것은 시요, 가요 작사자의 것은 유행가라는 차이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아닌가!

▲김소월의 문학사적 지위

김소월의 시는 우리에게 영원한 매력을 주는 무엇이 있다. 그런 만큼 그의 많은 시가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그의 생애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서 간단하게 그의 삶을 정리해보자.

김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이며, 1902년 외가인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몇 달 뒤 본가인 정주군 곽산면 남단동으로 가서 자란다. 남단동은 공주 김씨 120여 집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다. 그가 태어난 1902년에는 나도향, 채만식, 정지용, 박세영도 태어났다. 김동인보다 두 살 아래 사람들로, 나중 한국근대문학사에 이름이 새겨질 이들이다.

소월(素月)이라는 아호(雅號)는 소월 자신이 직접 붙인 것으로, 고향마을 남단동의 뒷산인 남산봉[진달래봉]의 옛이름 ‘소산’(素山)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곧 소월이란 ‘소산에 뜬 달’을 뜻한다.

김소월은 14살적인 1915년에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했고 교사이던 김억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1922년 《개벽》에 ‘금잔디’ ‘진달래꽃’ ‘먼후일’ 등을 발표해 문단의 관심이 집중됐다. 소월은 이 해에만 《개벽》에 41편의 시와 소설 ‘함박눈’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불멸의 대표작 ‘진달래꽃’이 스무 살 무렵에 쓰인 것이 놀랍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시구에는 할말도 많고 고이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심층에 내포돼 있다.

같은 해 소월은 고향의 할아버지를 설득해 4월에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으로 편입하고 이듬해인 1923년 3월 배제고보를 졸업한 뒤 5월에 도쿄로 유학을 떠나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9월의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고 만다. 이 해 12월에 스승 김억이 《개벽》에 연간평 ‘시단의 1년’을 쓰는데 여기서 소월을 ‘민요시인’으로 규정한 것을 계기로 ‘소월=민요시인’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한다.

소월을 이해하는 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가 민요풍의 시를 많이 쓴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렇다고 그를 ‘민요시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더 토론해보아야 할 문제다.


△김소월. 그림 강현화

실제로 1924~25년에 소월의 시는, (그 전까지와는 다르게) 식민지 농촌의 절박한 현실인 이향(離鄕)과 유민(流民)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나무리벌 노래’ ‘옷과 밥과 자유’ ‘남의 나라 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를 계기로, 시의 현실반영 문제를 두고 김억과 의견 충동을 일으키기도 했다(심선옥, 2008).

西道餘韻
- 옷과밥과自由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저새요
네몸에는 털이고 것치잇지

밧테는 밧곡석
논에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숙으러젓네!

楚山지나 狄踰嶺
넘어선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
(동아일보 1925. 1. 1)

이 시는 1925년 12월 출판된 《진달래꽃》보다 1년 정도 일찍 발표됐으나, 검열을 의식해서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연유로 시집에 누락됐다. 이후 그의 사후 김억이 발간한 ‘소월시초(素月詩抄)’(1939)에도 누락된다. 그러다 1966년에 나온 ‘決定版 素月全集’에 의해 겨우 구제되는 곡절을 겪는다.

▲옷과 밥과 자유: 소월의 현실 인식

소월은 이 시에서 본문에 옷과 밥과 자유라는 단어를 일체 얘기하지 않으면서 그 결핍을 선연히 드러낸다. 화자는 우선 공중에 떠다니는 새의 털과 깃을 가리키면서 사람들이 헐벗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어서 잘 익은 곡식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화자나 그의 이웃들에게 사실상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나그네임이 분명한 화자는 짐 싣고 재를 넘는 나귀에게서 바로 자신의 고단한 모습을 발견한다. ‘짐실은 저나귀는 너왜넘늬?’란 마지막 구절은 화자의 고단함과 굴레와 자유 없음의 긴 사연을 간결하게 암시한다. 소월에게 옷과 밥과 자유를 모두 빼앗긴 상황이란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 없는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유종호, 1980).

모파상의 단편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던 김소월은, 이광수가 편집한 《조선문단》에 이백, 두보, 두목, 이하의 한시를 번역해 발표하는데, 그 중 두보의 시를 번역한 ‘봄’은 소월의 당시 현실관과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나라 나라은 부서졌는데
이山川 엿태山川은 남어잇드냐
봄은 왓다하건만
풀과나무에뿐이어

오! 설업다 이를두고 봄이냐
치어라 꼿닙페도 눈물뿐 훗트며
새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
쉬어라 이두군거리는 가슴아
(이하 생략)

- 조선문단 1926.3.

그렇다고 해서 김소월을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들이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우창은 김소월은 낭만적인 슬픔을 그 소박하고 서정적인 시구 속에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시인이라고 칭찬하면서도, 김소월이 생에 대한 깊은 허무주의에 빠졌으며, 그것은 그가 보다 큰 시적 발전을 이루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다고 진단했다(김우창, 1980).

김윤식은 3·1운동의 실패는 식민지 지식인이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며,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세기말 허무주의가 김소월, 주요한, 염상섭, 변영로, 박영희, 박종화, 김억, 황석우, 이상화 등이 당시 현저히 (소설이 아닌) 시로 기울게 한 원인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주요한의 ‘비소리’,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등이 병적 낭만주의요 허무주의의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김윤식, ‘식민지 허무주의와 시의 선택’, 1973).


△김소월의 육필 원고

물론 위의 평론가들이, 김소월이 식민지 현실의 고통과 이로 인한 지식인의 고뇌와 거리가 먼 시인이었던가 라는 물음에 대해 ‘그렇다’ 또는 ‘식민지 현실에 무감각한 개인주의자였다’라고 답하는 건 결코 아니다.

실제로도 소월은 온 생애를 일제강점기에 살아낸 이였고, 검열에 걸려 전문을 삭제 당해 그 내용조차 전해지지 않는 ‘저급생활’ 같은 시들을 쓰기도 했으며, 그의 사후 북한의 평가는 비록 문예노선의 기복에 따라 달라졌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비판적 사실주의자로서 인민성, 애국주의적 빠포스(열정), 인도주의적 미학적 이상 등을 구현한 시인’으로, 또 ‘당대현실의 사회주의적 전망이 부족한 세계관의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정서를 아름다운 형식으로 구현한 이채로운 인민시인’으로 애호하고 있다(송희복, 김소월 연구, 1994).

▲슬픔을 노래한 시인의 비극적 최후

안타까운 것은, 이런 평가와 달리 김소월 자신은 생존해 있을 때 절망과 고독, 불면증 등으로 괴로워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편집해 출판한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1925)이 기대와 달리 문단과 매체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독자들의 반응도 미미했을 때도 소월은 실의에 빠졌고, 이듬해인 1926년에는 처가 근처인 구성군에서 동아일보사 지국을 개설했으나 경영 미숙과 일본 경찰의 압박으로 8개월 만에 그만두며 다시 좌절한다.

이후 소월은 계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중앙 문단으로부터의 소외, 일본 경찰의 감시 등의 이유로 작품 발표를 거의 중단한다. 평양 출신 소설가 김동인은 1932년 ‘적막한 예원’에서 천재 시인 소월이 작품창작과 발표를 중단하고 시골집에서 술에 빠져 지내는 생활을 안타까워한다.

결국 소월은 1934년 12월 23일 밤에 돌연 아편을 먹고 24일 오전에 사망한다. 자살로 추정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친우 나도향이 1926년 8월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과, 철저하게 자폐적인 삶을 영위했던 시인 이장희가 1929년 자살한 것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문학의 이해(김윤식), 일지사, 1973
김소월(신동욱 편), 문학과지성사, 1980
김소월전집(김용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996
김소월 연구(송희복), 태학사, 1994
약전으로 읽는 문학사1, 소명출판, 2008

[글쓴이 문수현은]
전북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
[그린이 강현화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이 연재물은]
격주에 한 번 실리며, 광주드림에 동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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