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 : 신경향파 대표작가
수현이의 문학생각 - 한국현대문학 읽기(6-최서해)

( 편집부 기자    2019년 07월 17일 06시49분   )
     


(글=문수현, 그림=강현화)

지난 5월부터 격주 간격으로 ‘문학생각’이라는 연재를 하고 있다. 독자들이 110년 역사를 가진 우리 근대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번에 소개하는 최서해는 이전까지의 작가와 다르기에 ‘최서해 이전’의 작가들을 간단히 요약해본다.

▲서해와 서해 이전

맨 첫 회에는 횡보 염상섭을 말했다. 그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맨 앞에 내세운 것이다. 그러면서, 횡보의 문학적 성과에 비추어볼 때, 그를 본격적으로 다룬 평전을 구하기 어렵거나 변변치 않고 무엇보다 작품전집이 여태 편찬되지 못한 실정을 개탄했었다.

두 번째 글에서는 ‘무정’의 작가 춘원 이광수를 소개했다. 사실 한국근대문학을 말하면서는 춘원을 맨 앞에 두는 게 상례다. 그런 의미에서 횡보와 춘원은 순서가 바뀌어야 했다. 나이로도 춘원이 1892년생으로 횡보보다 다섯이나 위인 ‘한참선배’다. 더구나 그의 대표작 ‘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이었으며, 작가의 자서전이자 당시 지식인 청년들의 자서전이기도 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갈 길을 잃은 당시 사회가 나아갈 하나의 지평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 번째로 김동인을 이야기했다. 염상섭과 김동인은 서로 창작방법론을 놓고 비평의 날을 세우기도 했던 동시대 인물이다. 횡보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심리주의를 들여왔다면, 동인은 일본소설을 한국무대에 각색해 옮겨 넣었다. 작품성을 떠나 두 사람은 한국근대소설이라는 건물의 주춧돌을 놓은 공적을 가지고 있기에 문학사적으로 비중이 크다.

뒤이어 네 번째와 다섯 번째로 소개한 작가는 김소월과 나도향이다. 김소월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기에 선택했다. 소월은 낭만적인 슬픔을 소박하고 서정적인 시구 속에 아름답게 노래한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삶에 대한 깊은 무기력과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으며, 그 점은 3·1운동의 실패 이후 식민지 지식인들을 크게 사로잡은 정서이기도 했다.

나도향은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작가다. 1925년 무렵에 ‘벙어리삼룡이’ ‘물레방아’ 같은 수작을 발표했다. 그에 대해서는 많은 비평가들이 감상주의요 낭만주의라고 하지만, ‘행랑자식’(1923)이나 ‘자기를 찾기 전’(1924)처럼 현실에 천착한 작품도 있다.

이 무렵까지 우리 문단에서 소설을 쓰는 주목할 만한 작가는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나도향, 현진건이 다였다. 이들은 탐미주의 성향을 보이거나 낭만주의 또는 심리주의 등의 성향을 보인 작가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주의라는 테두리 안으로 묶어볼 수 있는 작가들이다. 나아가 일부 작가들은 반공주의라는 울타리 속에 둘 수도 있겠다.

▲사회의 암흑면을 걸어 나온 사람

최서해의 문단 데뷔는 바로 이 무렵이다. 그가 데뷔작 ‘고국’(1924)에 이어 이듬해 ‘탈출기’,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 등을 발표하자 문단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시선은 일제히 그에게 집중됐다. 1925년 결성된 카프(KAPF)가 그를 맹원으로 받아들였고, 민족주의 문단 역시 그를 높이 평가했다. 당시 문단의 터줏대감이던 김동인은 그의 등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서해 최학송. 그림 강현화

“이전 육당 주관의 <청춘>에서부터 현상에 응모하노라고 문장에 대한 솜씨는 익혀 두었음으로 그의 문장은 미끈하였다. 숱한 방랑으로 많은 인정과 불인정을 본 그의 묘사는 비교적 정확하였다. 그의 작품에 취급된 내용은 아직 조선의 소설계에서는 보지 못하던 사회의 길이었었다. 당시에 우리 문단의 중견소설가로서는 춘원, 상섭, 빙허, 죽은 도향 및 나 5인으로서 환경과 빈부의 차는 다르다 하나 다 고이고이 자라난 서생 출신에 지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 작품에 나타난 배경은 대개가 유식계급이었었다. 그러나 서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회의 암흑면을 걸어 나온 사람이다. 노령과 만주를 가난과 추위에 떨면서 방랑하고 중이 된 때도 있었으며 일시 아편 중독자까지 되어 본 일이 있는 서해는 인생의 갖은 암흑면을 다 본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취급된 사회는 인생의 암흑한 계급이었다.”(‘작가 4인’ 중에서, <매일신보> 1931년 1월 8일)

‘사회의 암흑면을 걸어 나온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그의 학력은 (서생 출신 일본유학파들과 달리) 소학교를 다닌 게 전부다. 18살에 살길을 찾아 간도를 유랑하며 목도꾼, 부두노동자, 머슴, 벌목꾼, 두부장수, 음식점 심부름꾼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굶주림과 병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다. 죽음 직전의 굶주림도 여러 번 겪었다.

간도를 무대로 한 서해 소설의 대부분은 이때의 체험이 밑바탕이 된 것들이다. 실제로 그는 간도 유민이나 빈농의 비참한 궁핍상을 다루면서 대체로 비극적 파국을 맞는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몇을 보자.

‘홍염’(1927)은 서간도 조선 농민 문 서방이 빚으로 중국인 지주에게 딸을 빼앗기자 어느날 밤 지주집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지주를 도끼로 쳐죽이며 그 불길 속에서 환희를 느낀다는 내용이다.

‘박돌의 죽음’(1925)에서 12살 박돌이는 뒷집에서 버린 상한 고등어 대가리를 삶아 먹고 탈이 나 죽을 위기를 맞는다. 박돌 어미는 이웃 의원을 찾아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매정하게 거절당한다. 아들의 시신 앞에서 넋을 놓아버린 박돌 어미는 광란 상태에서 의원을 찾아가 그의 낯을 마구 물어뜯는다.

‘기아와 살육’(1925) 역시 서간도 조선 이민 가족의 이야기다. 경수는 아내, 노모, 어린 자식과 함께 살면서 갖은 노력으로 굶주림을 모면하려 하지만, 아내는 산후풍으로, 노모는 지주의 개에 물려 죽어간다. 절망과 분노에 찬 경수는 식칼로 가족을 죽이고 거리로 뛰쳐나가 닥치는 대로 부수고 중국인 경찰까지 찔러 죽인다. 그리곤 결국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모두 죽여라! 이놈의 세상을 부수자! 복마전 같은 이놈의 세상을 부수자! 모두 죽여라!... 내가 미쳐? 내가 도적놈이야? 이 악마 같은 놈들 다 죽인다!”(‘기아와 살육’ 결말 부분)


△최서해의 두번째 작품집 '홍염'(1931)

최서해는 이처럼 만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적으로 선명하게 그려냄으로써 ‘신경향파 작가’로 각광받았다. ‘신경향파’라는 말은 당시 비평가로 유명했던 박영희가 1924년 <개벽>에서 사용한 용어다. 그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3·1운동 이후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 전개됐는데, 곧 ‘개인적 향락문학에서 조선 현실을 직시하는 사회적 문학’으로의 탈바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서해야말로 이 시기 우리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예리하게 인식한 작가였던 것이다.

▲신경향파 리얼리즘의 한계

물론 서해의 소설이 갖는 한계도 뚜렷하다. △소재는 빈궁한 것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구조 △결말은 살인과 방화라는 ‘신경향파’ 소설의 전형성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비평가들은 최서해의 작품에 대해 “도입은 사회적인데 결말은 비사회적”이라고 지적하곤 했다고 한다.

‘홍염’,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의 결말 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문 서방, 박돌 어미, 경수는 작가인 서해의 페르소나다. 서해는 당시 조선 민중의 핍진한 삶을 충격적으로 고발한 반면, 대립과 갈등의 해결 방식은 개인의 충동적이고 발작적인 행동에 그쳤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주인공을 이상적인 인물형으로 제시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그런 최서해를 이렇게 평가했다.

“최서해는 급속도의 궁핍화 과정을 지나고 있던 당대 현실의 본질적 측면 하나를 강렬한 감각적 직접성의 차원에서 포착해냈다. 그러나 그같은 인물들의 삶이 감각적 직접성에 폐쇄되어 더 확장되지 못한다면, 한 가족이 직면한 죽음에 직결된 빈궁 그 자체를 지시하는 데 멈출 뿐, 당대 현실의 전체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빈궁 문제를 올바르게 반영할 수 없다.”(김윤식·정호웅, 1993)

경향 문학이 사실성 확보에서 갖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서해의 ‘홍염’과 포석 조명희의 ‘낙동강’이 비교되곤 한다. ‘낙동강’은 ‘홍염’과 같은 해인 1927년에 발표됐다. 낙동강에서 낳고 농업학교를 나온 주인공 박성운은 민족주의자였다. 5년간 만주, 노령, 북경, 상해 등지를 다니며 투쟁하는 동안 그의 사상에 큰 변화가 생긴다.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엔 박성운의 애인인 백정 집안 출신의 여교사 로사(로자 룩셈부르크에서 딴 이름)도 등장한다. 서해가 이상적으로 제시한 인물형과 다른 차원의 인물들이다.

서해와 포석의 출발은 비슷했다. 서해는 출세작 ‘탈출기’와 ‘고국’에서 국내에서 살기 어려워 서간도로 이주했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농민 또는 지식인에 대해 묘사한다. 포석도 똑같다. 다른 점은 서해가 거기서 그친 반면, 포석은 주인공 박성운이 고향 근처에 와서 농민운동을 하게 되는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사실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한편 서해의 작품 중에는 자연주의적 신경향파 경향성을 탈피한 것으로 주목받는 작품들도 있다. ‘해돋이’(1926)가 그 중 하나다.

이 작품은 김 소사가 손주 몽주를 데리고 몽매에도 그리던 고향 성진으로 돌아오는 여객선 속에서부터 시작되어 회상 형식으로 엮어진다. 김 소사는 3·1운동 때문에 복역하고 나온 아들을 따라 서간도로 이주한다. 거기서 아들은 독립 운동에 투신하다 체포된다. 아들이 압송되어 조선으로 끌려가자 며느리는 아기를 두고 집을 나가 버린다. 어린 몽주를 안고 김 소사는 그리던 고향 성진(함경북도)으로 배를 타고 돌아와 딸네집에 머무나, 이미 아무도 반겨주는 자 없다. 그 중 역시 감옥에서 나온 만수의 친구 경석만이 이 만수 어머니 김 소사를 이해할 따름이다. 그 경석은 이 고난에서 뜨거운 의미를 읽으려 한다.

이 작품의 끝부분에 만수의 친구인 경석이가 만수 어머니 김 소사의 비참함을 보며 혼자 걷다가 철교 자리에 무심코 이르면서 이렇게 외친다. 작품 제목 ‘해돋이’는 ‘落日은 그 자체가 日出’이라는 역설을 보려주려 한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의 첨단의 시대정신이 아니었을까!

“퍼런 얼음장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는 쿨렁쿨렁하는 것이 몹시 노한 듯하였다. 해는 벌써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간다.
―아아 조선의 해돋이(日出)여!
석양빛을 보는 경석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온 얼음 세계를 녹일 듯이 뜨거웠다.”


△'조선문단' 창간호. 최서해의 데뷔작 '고국'이 여기 실렸다.

[참고문헌]
최서해전집上·下(곽근), 문학과지성사, 1987
최서해 작품·자료집(곽근), 국학자료원, 1997
한국근대문학의 이해(김윤식), 일지사, 1973
소설 특강(김윤식), 한국문학사, 1997
현대문학사 탐구(김윤식), 문학사상사, 1997
한국소설사(김윤식·정호웅), 문학동네, 2000

[글쓴이 문수현은]
전북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
[그린이 강현화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이 연재물은]
광주드림에 동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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