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 ‘낙동강’의 작가이자 현실주의 소설가
수현이의 문학생각 - 한국현대문학 읽기(8-조명희)

( 편집부 기자    2019년 09월 18일 00시21분   )
     


(글=문수현, 그림=강현화)

▲ 조명희와 최서해

<김윤식 교수의 소설 특강(1~7권)>(한국문학사, 1997)은 고등학생을 위한 수능·논술 대비용 교재다. 이 시리즈의 1권은 개화기부터 1920년대까지의 작가들을 추렸는데 안국선,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전영택, 나도향, 최서해, 조명희가 그들이다.

비평가는 자신의 견해를 반영해 이런 체제로 책을 엮었을 것이다. 특히 최서해와 조명희를 나란히 둔 데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지난 회에 소개한 최서해와의 연관성이다.

서해는 신경향파(또는 경향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당대의 비평가 박영희(1924)는 ‘개인적 향락문학에서 조선 현실을 직시하는 사회적 문학’으로의 탈바꿈이라는 의미로 ‘신경향’이라고 썼다. 그런데 과연 신경향파는 ‘사물의 진실을 바로 본다’는 의미에서 당시의 현실을 ‘직시(直視)’했을까?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신경향파 소설의 결말에는 어떤 전형성이 있었다. 살인과 방화라는 결말이 그것이다. 당시 비평가들이 최서해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도입은 사회적인데 결말은 비사회적”이라고 한 건 그런 까닭에서다.

예를 들어 서해의 대표작 ‘홍염’은 서간도 조선 농민 문 서방이 빚으로 중국인 지주에게 딸을 빼앗기자 어느 날 밤 지주의 집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지주를 도끼로 쳐 죽이며 그 불길 속에서 환희를 느낀다는 내용이다.

비평가 김윤식은 서해의 소설에 대해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이 감각적 직접성에 폐쇄되어 더 확장되지 못한다면, 한 가족이 직면한 죽음에 직결된 빈궁 그 자체를 지시하는 데 멈출 뿐, 당대 현실의 전체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빈궁 문제를 올바르게 반영할 수 없다”(김윤식·정호웅, 2000)고 했다. 경향 문학이 사실성 확보에서 갖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하바롭스크 거주 시절(1934년~1937년)의 포석(抱石) 조명희. 포석은 돌멩이를 끌어안는다는 뜻. 조명희의 호다. (그림 강현화)

그런 맥락에서 서해의 ‘홍염’과 조명희의 ‘낙동강’이 비교되곤 한다. ‘낙동강’은 ‘홍염’과 같은 해인 1927년에 발표됐다. 낙동강에서 태어난 주인공 박성운은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5년간 만주, 북경 등지를 다니며 투쟁하는 동안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한다. 박성운의 애인은 백정 집안 출신의 여교사 로사(로자 룩셈부르크에서 딴 이름)다. 서해가 제시한 인물형과 다른 차원의 인물들이다.

이 작품은 그 이전까지 자연발생적 수준에 머물던 신경향파 문학에서 목적의식적인 제2기 문학으로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의 방향을 바꾸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 작품에 대한 비판도 있다. 비평가 김우종은 “이 작품은 딴 프로문학들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결함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주제를 형상화하지 못하고 관념적인 형태를 그대로 노출시켜버린 것은 그 중 무엇보다도 큰 결함이었다. 사실로 제2기의 프로문학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 처음부터 문학으로서는 실패하고 있었던 것이다.”(김우종, 1992)

▲ 낭만에서 현실로

그가 한국문학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한국의 젊은 학자 및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사후 50여년이 흐른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다.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자요 사회주의 소련으로 망명한 작가였던 탓이다. 조명희는 1928년에 일제의 가혹한 검열과 탄압을 피해 소련 연해주로 망명한 작가다.

1924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로 있을 때는 불우한 진보적 청년들을 지원한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도쿄 시절 만난 이기영을 적극 후원, 좌익잡지 ‘조선지광’에 소개해 취직시켜주고 한 집에 기거하기도 했다. 민촌 이기영은 나중에 ‘고향’을 써서 평판을 받고 ‘두만강’으로 북한문단의 대표적 원로로 자리잡은 문인이다.

조명희는 1925년 8월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가 결성됐을 때 적극 참여했는데, 그 자신은 이 시기에 대해 “낭만적 서정시에서 현실주의적 프롤레타리아소설로 이행”이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낙동강’ 이후에 발표한 작품들도 ‘프롤레타리아소설’의 범주에 든다. ‘아들의 마음’은 입원 중인 노동자 주인공이 자기 애인이 중국을 위해 활약한다는 말을 듣고 목발을 짚고 도쿄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한다는 내용이다. ‘춘선이’ 역시 계급해방의 의지를 북돋는 내용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 조명희는 사회주의리얼리즘문학의 개척자로 문학사적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소련 망명 후엔 재소한인들의 문학을 새롭게 건설하는 데 앞장섰다. 망명 직후 발표한 서사시 ‘짓밟힌 고려’는 연해주 고려인들의 애송시가 되기도 했다. 1937년 장편소설 <만주 빨치산> 집필 도중, 일제의 간첩을 도왔다는 조작된 혐의로 (수천 명의 다른 고려인들과 함께) 연행됐고 가족은 강제이주를 당했다. 스탈린 정권 시기다. 이듬해인 1938년 하바롭스크 현지 주르사 감옥에서 재판도 없이 총살당한 사실이 1956년에야 유족들에 의해 밝혀졌다.


△ <낙동강> - 1946년 건설출판사 판

소련으로의 망명 후 조명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조선에서도 오래도록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1946년에 그의 소설집 <낙동강>이 문고본 형태로 서울 건설출판사에서 중간(重刊)됐을 때 중간사를 쓴 시인 임화의 말이 그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포석형이 조국을 떠난지 어언18년, 그가 몽시간에도 그리든 조국에 자유가 차저오려는 날, 아즉도 형은 이역에서 도라오지 않었다. 하로바삐 많은 수확과 건강한 몸으로 도라오기를 바라는 것은 나 한사람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포석형의 귀중한 업적이 형이 도라오기에 앞서 중간됨에 당하여 멧마듸의 말로 형에 대한 그리움의 정과 바램의 마음을 적고, 아울러 그 업적에 대하여 두어 마듸의 말을 적어 중간사에 대신하는 것이다.”(1946년 3월 2일, 임화)

한편, 임화는 이 글에서 이런 말도 한다. “발행당시 일본 황국주의의 압력으로 인하여 ‘복자’(伏字)를 쳤든 것을 소생시키려 하였으나 역시 함부로 손을 대일 바가 아니어서 그대로 인행하고, 형이 도라올 날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 망명, 그리고 작품의 운명

복자(伏字)란 ‘인쇄물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비운 자리에 ‘○’, ‘×’ 따위의 표를 찍은 것’(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여기서는 일제가 검열로 삭제한 부분을 말한다. ‘낙동강’을 비롯한 조명희의 작품들은 반일사상과 사회주의사상을 담은 게 많고, 따라서 복자로 처리된 부분이 수두룩하다. 몇 군데 보이면 이렇다.

그 다음에는 ○○○○○○○○○○○○○○○○○○○○○○○○○○○○○(29자) 대하여 ○○○○○○○○(8자)었다. <낙동강>

이런 식으로 누더기가 되어 원작을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이 부분을 살리면 이렇다.

그 다음에는 소작조합을 맨들어 가지고 지주 더구나 대지주인 동척의 횡포와 착취에 대하여 대항운동을 일으켰었다.

또 다른 예다.

그 봉당은 지금 ××××× ××엿다. 따라서 그 봉당 볏섬×× ―― ××××× 두고 ×××××을 깍거서 폭이 폭이 알알을 각구다십히 하야 맨드러 낸 ×××××=××××××××××××……여 잇다. 엇잔 까닭인가? <춘선이>

그 봉당은 지금 텅텅 빈 바닥 뿐이었다. 따라서 그 봉당 볏섬들은 일년 열두 달 두고 농민의 피땀을 깎아서 포기포기 알알을 가꾸다 싶이 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볏섬은 지금 동척이나 지주집에 있다. 어쩐 까닭인가?

복자 부분 복원은 조명희 사후에 간행된 <포석 조명희 선집>(황동민 편, 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 1959)에서 시도한 것이다.


△ 1959년 <포석 조명희 선집> 간행에 앞서 조명희의 처남이자 역사학자였던 황동민이 조쏘문화협회(대표 이기영)에 원고 청탁을 의뢰한 문서

참고로, 이 글을 쓰면서 복자 부분 복원에 관한 의문이 일어 밝혀둔다. 고 김윤식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소련으로 이주한 작가 자신이 1930년에 이 복자 부분을 복원한 바 있다”(김윤식, 1997)고 했다. 그런데 그 언급을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을 김 교수의 다른 저작에서 찾지 못해 의아해하다가, 포석 연구자인 김성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에게 문의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우리 국문학계에서 이루어진 포석 연구를 종합해보면 포석이 생전에 복자 부분을 채워 넣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일러줬다.

한편, 충북 진천 출생인 포석의 자취를 끈기 있게 추적해온 김명기 동양일보 전 국장은 포석이 소련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짐작할 만한 이야기를 해줬다. 프로문학 출신 작가들마저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전향의 길로 들어설 때, 포석은 일제를 향한 꼿꼿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포석의 고향 등지에서 탐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포석은 일제가 회유의 목적으로 도지사직을 제안하자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 <포석 조명희 선집>은 물론, 이 선집과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북한판 선집 <락동강>은 포석의 원작을 다른 방식으로 훼손하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들 선집은 원작의 일부를 삭제하고 있는데, 그 의도는 정치적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선집이 삭제한 부분을 몇 군데만 보이면 이렇다.

(서울 빈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묘사하는 곳에서)
그들에게는 아모것도 업다. 사랑도 업고 밥도 업고 ××도 업다. 또는 노력도 반성도 용기도 반발력도 업다. 그러타고 또는 침통한 인내와 자의식도 업다. 굿센 미듬도 업다. 잇다는 것이라고는 허위, 기만, 폭압, 기아…… 이밧게는 아모것도 업다.……어린 기독(基督)을 안고 잇는 ‘마리아’의 얼골(그림)에는 이보다 더 농후한 표정을 볼 수 잇다.……조선사람에게는 이 여호성과 생쥐성이 만타. 그중에도 서울사람, <땅속으로>

올해 2019년은 그의 출생 125주년이 되는 해다. 독자들이 ‘낙동강’과 그의 작품집 읽기를 더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 희생자기념비 -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 시립 공동묘지에 있는 희생자 기념석이다. 기억사원 앞에 위치한 기념석에 스탈린에 희생당한 고려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이 가운데 조명희 이름도 있다.

[참고문헌]
조명희선집(황동민 편), 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 1959
조명희(김성수), 약전으로 읽는 문학사1, 소명출판, 2008
한국현대소설사(최신증보판, 김우종), 성문각, 1992
현대문학사 탐구(김윤식), 문학사상사, 1997
한국소설사(김윤식·정호웅), 문학동네, 2000

[글쓴이 문수현은]
전북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교육신문 기자.
[그린이 강현화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지금은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이 연재물은]
광주드림에 동시 게재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 : 서해: “생활이라는 것의 준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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