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반일 민족주의를 경계한다”
<사회진보연대>가을호...마르크스주의 시각서 현실 심층분석

( 문수현 기자    2019년 09월 19일 16시25분   )
     


요동치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반일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국내 좌파 사회운동 진영의 주장이 주목을 끈다.

사회운동단체인 사회진보연대가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정세와 현실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계간 <사회진보연대>는 최신호(2019년 가을호-9월 2일 발행, 338쪽)에서 “반일 민족주의를 경계한다”를 특집으로 내세웠다.

특집은 세 명의 저자가 쓴 네 편의 글을 담았다. 먼저 임필수의 ‘한일갈등의 배경, 전망, 쟁점, 대응방향’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표한 의도를 과장해서 해석해서는 곤란하며, 이러한 과장은 문재인 정부의 반일 드라이브를 추인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한일기본조약이나 청구권협정이 ‘친일파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노선의 귀결’이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저자는 또한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실천적으로 번복했던 역사가 있고,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법을 제정해 사실상 보상을 재실시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양국 정부가 책임있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유미의 ‘대법원판결의 쟁점과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현실’과 보론 ‘한일청구권협정에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까지’는 일종의 ‘팩트 체크’다. 이 글은 대법원 판결 당시 나왔던 다수의견, 별개의견, 소수의견을 자세히 해설하고, 판결 후에 제기된 찬반논의도 함께 소개한다. 이어지는 보론에서는 한일청구권 협정 이후 실제로 실시된 보상정책을 역사적으로 검토한다. 그러면서 “대법판결의 의미와 역사적 현실을 살핀 것은 청구권협정과 체계가 정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노와 염원만으로 현실적 조건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나아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일본 아베 정부의 편을 드는 것이라는 논리는, 국내적 해결책이나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모든 노력에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특집의 마지막 글인 한지원의 ‘한국 경제사와 한일 갈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일본에 의한 국가주권 침해가 불법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에 앞서 봉건제에서 다른 사회구성체로 이행하지 못한 조선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1965년 한일협정 전후의 한국 자본주의의 모습을 살피면서, 한일협정은 친일이냐 반일이냐의 맥락이 아니라 결국 미국의 세계시장과 아시아 냉전 전략의 맥락에서 남한 정부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의 딜레마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진보진영 일각에서 65년 체제를 아예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배나 65년 협정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못 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법원판결의 쟁점…’의 저자인 이유미의 “1965년 한일기본협약과 청구권협정은 한국이 공산주의에 맞서 미국의 지원 아래 일본과 자본주의 동맹을 맺은 것을 뜻한다. …따라서 1965년 협정 비판은 한미일 자본주의 체계와 군사동맹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과 상통한다.

특집의 저자들은 현재의 반일감정 조장은 한일 민중연대의 흐름을 창출하는 데에도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또한 친일파·애국자 이분법이 극단화되면 폭력이나 테러리즘적 분위기마저 조성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이번 사태가 극단화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 특히 한일 경제 관계의 단절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지지자들도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주관적인 희망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국은 보리스 존슨 같은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을 탈퇴했지만 몇 년째 탈퇴협약도 만들지 못했고, 많은 경제학자는 영국의 불황을 예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일 갈등을 이런 식으로 키우는 것은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경제침체에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큰 위협이 될 뿐이라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앞서 사회진보연대는 웹에서 발행하는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2018년 대법원 판결과 2019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발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에 대한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 입장은 사회운동 내에서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 특집은 그러한 논쟁을 고려해 입장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편 이번 <사회진보연대> 최신호는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미역갈등을 자세히 살피고 있는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미래’(김진현)를 첫 번째 글로 삼았다. 저자는 미중 무역갈등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헤게모니를 두고 싸우는 충돌, 즉 G1을 향한 경주. 또 하나는 누구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공백, 즉 G0 상태. 마지막은 양국이 협력하는 G2의 세계. 저자는 (그 귀결이 어떻든) 미중 간 충돌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경제위기와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결론으로 내놓는다.

이번 호의 또 다른 글들은 노동자운동의 고용과 임금 문제를 다룬 것들이다. 주류 노동자운동의 노선을 비판하는 민감한 내용이어서 주목을 끈다.

김동근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평가’는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이 기존 정규직의 임금수준, 임금체계 쟁취를 목표로 투쟁하는 노선은 일견 타당해보이지만, 한국사회 전반의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격차를 고려할 때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4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한국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800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저자가 모든 비정규직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 전환’이 실현 가능한가,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연공급이 한국의 일반적인 임금체계가 될 수 있는가 질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태훈은 ‘연대임금, 혁신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라는 글을 통해 불황기라는 객관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연대임금·연대고용이라는 투쟁의제를 놓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한지원은 ‘연대고용·연대임금 정책의 현 시기 조건과 쟁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산업, 공공과 민간, 남성과 여성 간 임금격차를 분석하고, 자영업 부문의 소득도 다룬다. 저자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불완전 취업자와 실업자에게 상대적으로 생산성과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촉구한다.

<사회진보연대> 최신호는 이밖에도 ‘소설과 함께 보는 한국 노동자운동 역사’라는 연재 기획의 첫 번째 글로 조유리의 ‘해방 공간의 『폭풍』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실었다. 이 글은 『폭풍: 해방공간의 노동운동소설선집』(신덕룡 편), 시인사, 1990.을 깊이 있게 읽은 것이다.

이밖에 임필수의 ‘노태우 정부 전반기, NL·PD 논쟁의 태동’은 사회운동사 기획인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역사와 평가’의 두 번째 글이다. 또한 번역 소개하는 수잔 왓킨스(뉴레프트리뷰 편집장)의 ‘어느 페미니즘인가’는 제목 그대로 여러 페미니즘 중에서 우리는 어느 페미니즘을 추구하는가 질문하게 하는 글이다. 특히 제도권 정치·경제에서 두드러지는 자유주의 페미니즘(반차별 접근법과 성주류화 전략), 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스트 페미니즘(교차성 이론), 법률 영역에서 공격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성별 이분법과 엄벌주의)이 분석의 대상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 그리고 몸통으로 난다고 한다. 계간 <사회진보연대> 가을호는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사회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특별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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