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쟁점화 차단하려 인민주의 정치”
[책] 인민주의 비판(공감, 2005)...“장기불황 따른 대중불만 호도”

( 문수현 기자    2019년 10월 01일 16시07분   )
     


초중고 사회교과서는 민주 정치란 ‘정치인이 의회와 정당 등 헌법기구를 매개로 국민의 의사를 이성적으로 대변하면서 정파 간의 타협과 합의를 도출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치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 정치인은 십분 그런 상황을 활용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져다가 공신력을 덧씌워 퍼뜨리는 데 주저하지 않고, 심지어 그것이 ‘가짜뉴스’라고 판명된 뒤에도 사과하지 않고 침묵한다. ‘가짜뉴스’의 주요 소비자를 자처하는 꼴이다. ‘가짜뉴스’가 국민의 험한 감정을 건드려 반대파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면 그깟 여론 조작이야 못할 바 무언가!

사실 이런 정치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정치에 대한 설명을 비웃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현실 정치는 ‘정치’라기보다는 차라리 ‘반정치’ 또는 ‘정치의 실종’이다.

이 같은 ‘반정치’와 ‘정치의 실종’에 대해 일찍이 우려한 국내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의 분석과 주장은 2005년 8월 출간된 <인민주의 비판>(정인경·박정미 외, 공감)에 집약돼 있다. 다음은 이 책의 서문 일부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비판은 현대 정치의 조건으로서 민족국가를 해체한다. 자본의 초민족화가 가속되면서 개별 민족국가는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상실한다. 의회가 더 이상 계급적 타협을 위한 안정적 합의를 담보하지 못하는 반면,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초민족화된 기술관료의 영향력이 강화된다. 그 결과 정치와 대중의 분리는 심화되고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정치와 여론 조작이 그 공백을 채움으로써 정치위기가 일반화된다. 20세기 후반에 다시 출현하는 인민주의는 이 같은 정치위기를 표현하는 동시에 그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서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인민주의는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에 따른 대중적 불만에 기초하여 태동한다. 기존 정치에 대한 거부와 공격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반정치의 정치’로서 인민주의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가와 정치제도를 ‘적’으로 규정하는 ‘원한의 정치’를 통해 대중을 동원한다. 인민주의는 기존 정치·경제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지만, 대중의 능동성과 자율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수동적 종속을 심화한다. 이런 점에서 인민주의는 해방과 변혁의 정치를 표방하는 사회운동과 크게 대립된다.”

연구자들은 이 책에서 “인민주의에 관한 연구와 비판은 문민화 이후 남한의 정치적 상황을 인식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의 인민주의 정치는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재야세력을 중심으로 태동해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 전반기인 2005년에 발간됐으므로, 독자는 저자들이 파악한 당시의 상황을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기인 현재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흡사함(나아가 진화)에 놀랄지도 모른다. 저자들의 논의를 아래에 요약해본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정세를 틈타 인민주의적 수사를 앞세워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의회정치를 마비시킴으로써 정책개혁에 성공한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외환위기를 자본의 위기가 아닌 민족 전체의 위기로 호도하고 ‘국난극복’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과 ‘고통분담’을 강제하는 인민주의적 수사를 남발하면서 대중적 저항을 사전에 봉쇄한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과의 협상조건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자본의 부채를 민중에게 전가할 뿐만 아니라 국부가 유출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강화한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에는 시민단체 차원에서 기존 정치제도와 정치가에 대한 인민주의적 공세가 전개된다. 이들은 재벌, 정치가, 조·중·동에 대한 대중적 원한을 조작·동원함으로써 여당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보완한다. 특히 16대 총선 당시 ‘낙선운동’은 무능·부패한 의회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국가정책의 결정권을 기술관료에게 이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노무현 정부에선 어땠을까. 집권 후 노무현 정부는 지구당을 폐지하고 원내정당화를 지향하는 정치개혁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정당과 대중의 제도적 연계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한 이미지 형성으로 대체된다. 또한 청와대 비서진과 대통령 직속의 자문위원회가 대통령 개인의 인맥을 중심으로 구성됨에 따라 집권 여당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변화된다. 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에 대한 야당의 비판을 방어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실제 정책결정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정당정치를 우회하는[생략해버리는] 인민주의적 정치 스타일은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에 더욱 강조된다. 민주당 분당과 우리당 창당으로 지지기반이 더욱 취약해진 정부는 주로 미디어와 가두집회를 통해 대중에게 ‘시민혁명’을 계속할 것을 직접 호소한다.

그렇지만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진보적 경제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대신 과거사를 쟁점으로 삼아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원한의 정치로 일관한다.

그런가 하면 정부에 대한 비판은 한나라당이나 조·중·동과 결합된 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로 매도당한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이러한 인민주의 정치는 경제정책이 쟁점화되는 것을 차단하고 장기불황에 따른 대중적 불만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인민주의 정치를 통해) 적과 우리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도가 확산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해방과 변혁을 위한) 정치의 발전은 제약된다. 이러한 점에서 인민주의의 득세는 대중의 수동화의 지표가 될 수 있다.”라고 결론짓는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인민주의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며,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에서는 사회운동과 쟁점을 형성하는 20세기 후반의 정치가적 ‘인민주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 책의 저자들 가운데 국내 연구자들은 과천연구실 연구원들이다. 과천연구실은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한 중장기적이며 초정파적인 이론 연구를 위해 1994년 6월에 결성됐다.

최근 과천연구실은 한국을 비롯한 인민주의의 전 세계적 부활에 대한 분석서를 잇달아 내놨다. 이에 대한 서평으로 「역사의 사기극, 연출자는 문재인 정부?: 윤소영,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 서평 ①문재인정부 정책 비판」(김태훈, 오늘보다, 2018.12.)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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