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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느리게 더 느리게

장샤오헝·츠샤오촨(최인애 역), 다연, 2014


... 김소정 (2019-12-20 13:51:08)

‘완벽한 인생을 내려놓는 순간, 완벽한 행복이 다가온다’

과학의 발달이 편리함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 편리함이 우리에게 행복함을 더해주지 못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각하는 것이 3D프린트를 통해 바로 만들어지는 세상, 각종 기기 조작이 음성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세상,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특별한 일들이 모두 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지만 인간의 자리에 기계가 들어선 요즘에 나는 공허함과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가끔은 조심스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필름이 현상될 때까지 두근거림으로 기다리던 그 시간이, 우편함을 뒤지며 군대 간 친구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렸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모든 것이 느렸지만 느리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되어 그 ’느림의 행복‘이 ‘답답함’과 ‘무능함’이 된 세상에서 이 책과 만났다.

‘불완전한 인생을 받아들이는 순간, 완벽한 행복이 열린다!’, ‘완벽한 인생을 내려놓는 순간, 완벽한 행복이 다가온다!’ ‘느리게 더느리게’ 1권과 2권의 책 표지에 적힌 글귀가 뒤돌아보지 않고 쉼 없이 달렸던 내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하버드대학의 행복학 강의와 베이징대학의 인생철학 강의에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행복에 다가서는 해법에 관해 따뜻하고 편안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대화를 건넨다.



이 책은 내게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넘어 그 불완전을 인정할 때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은 무거운 짐이 아닌 신이 주신 축복이며 즐겁고 감사한 것으로 여기라고 한다.

주어진 삶은 다들 비슷하다. 비슷한 지점에서 한숨을 쉬고 비슷한 지점에서 눈물을 쏟고 또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나 저자는 같은 인생길을 걷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면 그 길 또한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한다.

가진 것에 감사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의 종착지에 도달하게 된다. 빨리 뛴다고 빨리 도달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곳까지 가기 위한 내 발걸음의 여정에 격려를 보낸다.

본문에 나오는 여러 예화들을 정리해보면, 부와 명성 그리고 지식의 최고봉에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정상에서 공허함을 느끼지 않고 행복에 만취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한결같이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말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소한 일도 흘려보내지 않았고 실수와 실패에 좌절하기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교훈을 찾으려 애썼으며 앞만 보고 가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의 여유를 가지려 했다.

오래전 3시간 넘게 시달려야 겨우 도착했던 진해 해군사관학교, 그곳에서 민간인으로 사관생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야 했던 때가 있었다. 심리적 부담에서 온, 몸과 마음의 힘듦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힘듦을 견디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 벚꽃이 만개해 흩뿌려지던 어느 봄날, 세월의 무게에 눌려버린 어깨가 무거워 터벅터벅 연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그날, 짭조름한 바다내음을 안은 봄바람이 살며시 내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고 갔다. 따뜻하고 포근한 부대낌이 뭐라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그 위로에 힘듦을 모두 털어버렸다.

고통도 뜻밖에 불현듯 찾아오지만,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손톱 밑에 파고든 작은 가시가 온몸을 아프게 하듯 사소한 행복이 온 인생을 핑크빛으로 물들여버린다. 두 권의 책이 행복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은, 행복은 파랑새가 물어다 주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갈 때 신발 안에 작은 돌멩이를 넣어 가끔씩 쉬며 주변을 돌아보라’고 한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삶에 인디언처럼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을 주고 싶다면 커피잔을 들듯 이 한 권의 책을 들어보길 바란다. 쓸쓸한 겨울바람이 가득 찼던 마음에 포근한 봄바람이 자리 잡을 것이다.

(김소정=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