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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이 공동체와 공존하려면”

전주대 <탈유교사회의 문화현상과 ‘공동체’> 주제 『공존의 인간학』 3집 발간


... 문수현 (2020-03-13 12:47:11)

“옹정 옹연 옹진골 옹당촌이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곳에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고약해서 풍년을 좋아하지 않고, 매사에 고집을 부렸다. 인색하기만 해서, 팔십노모가 냉방에 병들어 있어도 돌보지 않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옹고집전’ 항목 중)

『옹고집전』은 眞옹과 假옹의 대결을 그린 진가쟁주(眞假爭主) 화소를 중심으로 眞옹을 사회적 규범에 맞게 교정시키고 공동체로 복귀시키는 서사적 흐름을 지니고 있는 고전소설이다.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신호림 교수는 『공존의 인간학』 3집에 논문 <『옹고집전』에서 재현된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도덕경제와 공존의 의미>를 발표했다. 신 교수는, 옹고집전의 서사는 옹고집이 공동체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정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는 공존의 이면에 잠재적 폭력이 위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신 교수가 말하는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도덕경제는 농민이 이윤의 극대화보다 위험의 극소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호혜성의 규범’과 ‘생계에 대한 권리’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를 존속시키게 한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경제력의 재분배라는 사회적 기조에 따르지 않은 구성원에 대해서는 공동체의 가차 없는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옹고집전』은 이런 도덕경제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옹고집을 향한 사회적 살해는 희생제의의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옹고집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적 양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교정의 서사와 연결시킴으로써 옹고집을 향했던 공동체의 만장일치적 폭력을 겉으로 드러낸다. 옹고집은 누구나 공동체의 규범에서 벗어난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공동체 밖으로 축출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최근 학술지 『공존의 인간학』 제3집을 발간했다. 인문한국플러스(HK+)연구단이 연 2회 발간하는 인문학 학술지로 지난해 창간호와 제2집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발간됐다.

제3집에는 <탈유교사회의 문화현상과 ‘공동체’>라는 주제의 기획논문 3편과 일반논문 4편, 총7편의 논문이 게재됐다. 신호림 교수의 논문은 세 편의 기획논문 중 하나다.

또 다른 기획논문으로 상하이대학 문화연구학과 왕샤오밍(王晓明) 교수의 <‘소인배’의 시대 ‐오늘날 중국인의 정신과 문화 상황>과 중국 연변대학교 사회학과 허명철 교수의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조선족 공동체의 역사 귀속>이 포함됐다.

왕샤오밍 교수는 지난해 10월 전주대 초청으로 같은 주제의 강연을 한 바 있다. 왕샤오밍 교수는 최근 30년 동안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현대 중국의 문화상황이 급격히 변화했다며, 현재 중국은 ‘정치 안정의 유지’를 제일 목표로 하는 국가 시스템과 ‘중국 특색’의 시장경제 시스템, 그리고 ‘도시화된 홈 라이프’를 추구하는 생활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시스템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실리지상주의의 중국 사회이며, 이는 중국인으로 하여금 경쟁을 찬양하며 협동할 줄 모르고, 물질을 중시하며 정신을 경시하고,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타인을 염두에 두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보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고 갔다. 전통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말하자면 중국인을 지속적이고 보편적으로 ‘소인배’가 되도록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허명철 교수의 논문은 중국으로 이주해 간 한민족을 다룬다. 중국으로 이주한 한민족은 다른 나라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 문화와 상이한 민족문화를 지난 150년간 창출했으며,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조선족 특유의 역사를 서사했다. 특히 중국의 합법적인 공민으로 성장한 이들은 국가관, 민족관, 역사관 등을 포함한 이른바 민족정체성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보여 주었다.

허 교수는 이렇게 강조한다. “따라서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을 어떻게 규명하고 조선족이 창출한 역사의 귀속을 어떻게 판단하느냐 등의 이슈들은 학계에서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론적 문제이며 동시에 현실적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디아스포라 연구방법론에서 전통적 의미의 개념적 정의와 이로부터 파생된 민족주의 시각에서의 본체론적인 연구 경향을 뛰어넘어, 오늘날 글로벌 인구이동의 시대적 배경에서 이산과 그 디아스포라 집단의 정체성 재규명이 절실히 요청된다.”

일반논문에는 전북대 사학과 하우봉 명예교수의 <18세기 초엽 일본 소라이문파(徂徠門派)와 조선 통신사의 교류-다자이 다이(太宰春台)의 『한관창화고(韓館倡和稿)』를 중심으로>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아라키 가즈노리(荒木和憲) 교수와 전주대 장순순 교수의 <조일 강화 교섭 과정과 정탐사(偵探使)>, 일본 고쿠시칸(國士館)대 유은경 강사의 <나카라이 도스이의 『계림정화 춘향전』을 통해서 본 조선 인식>이, 마지막으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성수 교수의 <1910년대 한의학의 전회(轉回) -전통(傳統)에서 회통(匯通)으로의 변환>이 실렸다.

한편,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연구단은 2018년 사업에 선정돼 인문학 관점의 ‘미래 공동체 대안’ 연구와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