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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초: 음빙실자유서

「조선망국사략」 쓴 청말민초 계몽사상가...푸른역사, 2020


... 문수현 (2020-04-06 11:51:56)

“나는 중일전쟁 직전의 조선과 중일전쟁 직후의 조선을 비교해볼 때 더욱이 중일전쟁 직후의 조선과 러일전쟁 직후의 조선과 비교해볼 때 눈물을 금하지 못하겠다. 이제 조선이 없어졌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일본 번속(藩屬) 일부분의 역사로 남아있을 뿐이다. 삼천년의 고국(古國)이 멸망하는데 그와 친속(親屬)의 관계를 가진 이로서 어찌 이 일을 기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로써 비애를 생각하면 그 비애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유위(캉유웨이)의 제자이며 청말 중화민국 초의 사상가인 양계초(량치차오, 1873-1929)가 조선의 망국을 애통해하며 「조선망국사략(朝鮮亡國史略)」(1904)이라는 논설에서 한 말이다.

양계초는 그 뒤에도 조선의 상황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망국의 원인을 분석하고 경과를 기록했는데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거동을 보고 그것을 상세히 기록하여 우리(중국)의 귀감으로 삼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양계초가 내린 결론은 조선은 스스로 망했다는 것이었다. 황제(고종)의 실정이 정치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양반층은 망국에 대한 진지한 인식 없이 자신들의 부귀와 안락만 추구했으며, 민은 나라가 망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노예근성의) 삶을 계속 영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일합방 이후에 발표한 「일본병탄조선기」(1910.9.14.)에서 자신의 분석을 심화시키고 있다. 청일전쟁에 이은 러일전쟁(1904) 이후 일본이 한국내정개혁안을 고종에게 제출함으로써 재정권, 군사권, 외교권 모두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으며, 조선은 일본인의 조선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양계초는 특히 재정과 화폐제도를 아우르는 내정개혁안에 대해 국가행정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재정권, 군사권, 외교권 세 가지인데 이를 모두 잃으면 국가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고 논평했다(전동현, 「청말 양계초의 대한제국기 한국 인식: 망국-자강 개념을 중심으로, 『중국사연구』 제34집, 2005」).

그로부터 약 2주갑이 흐른 한국의 현실을 연상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특히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직후에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가 한국의 은행들에 직접 연락해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시사(경고)한 사건은 문제적이다. 과연 우리에게 경제주권이 있느냐는 의문이 새삼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은행과 기업이 한국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패싱’한 것이라는 지적을 불러왔다. 경제주권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군사주권은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윤소영, 『한국사회성격논쟁 세미나(Ⅱ)』, 공감, 2020).

이번에 푸른역사에서 출판한 『음빙실자유서』는 양계초가 변법운동에 실패한 뒤 망명지 일본에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음빙실’은 양계초의 여러 필명 중 하나).

당시 부패한 본국 정부를 공격하고 구사상의 파괴와 아울러 신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진화론과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자강사상을 펼쳤다. 글 쓴 시기는 대략 189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다. 그가 『월남망국사』(1905. 주시경 선생이 1907년 국역했고 1909년 금서가 됐다.)와 「조선망국사략」(1904) 등 일련의 망국사 관련 저술을 발표하기 직전의 글들이다.

한림대 한림과학원에 의해 번역됐으며, 2017년 초판이 나오고 2020년 개정판이 간행됐다. 경세(經世)와 관련된 시의성 짙은 글 77편이 수록됐다. 문명 구상에서 일상의 단상까지, 중국의 고전과 불경에서 몽테스키외·홉스·스피노자·루소·다윈·스펜서 등 서양 사상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참고로, 조선의 망국과 관련된 양계초의 글 10여 편은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최형욱 옮김, 글항아리, 2014)를 참조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는 양계초가 1899년에 쓴 「한국근상」(韓國近狀)은 빠져 있다.


△ 출판사 제공 책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