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년07월04일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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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편 젊은단편...여성창작자 비중 높고, 노동현실 작품 많아

[전주국제영화제] 3. 한국단편경쟁 부문...유튜버, 세계 멸망, 출산률 저하 등 소재도 다양


  (  문수현   2020년 05월 29일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총 38개국 180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이들은 크게 다음의 12개 섹션[부문]으로 나뉜다.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마스터즈, 월드시네마-극영화, 월드시네마-다큐멘터리, 코리안시네마, 시네마천국, 영화보다 낯선, 퀘이 형제: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 KBS 콜렉숀: 익숙한 미디어의 낯선 도전.

이들 섹션들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영화들이 준비돼 있는지 살펴본다. 주최 측의 영화 소개를 참조하되, 전북교육신문이 주목하는 작품들을 좀더 강조했다.

3. 한국단편경쟁

한국단편경쟁 부문에는 단편영화 25편이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2020년 출품작들의 경향은 여성, 사회적 약자와 사회 안전망, 미디어의 변화로 요약된다.

올해 출품자들 가운데에는 여성 창작자 비중이 상당히 높았고, 여성의 시선이 표현된 작품이 다수를 차지했다.

남순아 감독의 <추석 연휴 쉽니다>는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의 각기 다른 삶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며, 오현도 감독의 <주희에게>는 삶에 찌든 젊은이들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는 영화다. 정연주 감독의 <집나방>은 ‘경력 단절 여성’이란 말조차 품어 주지 않는 전업주부의 유예된 꿈을 나방에 빗댔다.


▲ <유통기한> 스틸

일하는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도 눈에 띈다. 유준민 감독의 <유통기한>은 동네 마트에서 일하는 지숙이 유통 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폐기하지 않고 어린 남매에게 준 일로 마트에 민원이 들어오고, 친한 동료가 해고 위기에 놓이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조민재·이나연 감독의 <실>은 40여년 역사를 가진 창신동 봉제골목의 여성 노동의 역사를 소재로 했다. 실제로 창신동에서 봉제 일을 하는 아마추어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 노동의 역사를 과거에 박제하는 ‘단절’이 아닌 지금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지속’으로 기록해낸다. 유머가 살아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조민재 감독은 장편 데뷔작 <작은 빛>(2018)으로 서울독립영화제2018 독불장군상, 2019년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을 수상했다. ‘이름 없는 몸’의 노동에 관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고자 한다. 이나연 감독은 주로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올해는 성폭력 생존자에 대한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유수진 감독의 <드라이빙 스쿨>은 영화감독이 꿈인 최선이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작업에 연출부로 들어가기 위해 있지도 않은 1종 면허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그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뚜렷하다. 특히 장애를 일상적이고 동반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려는 노력, 장애와 인종, 성적지향, 가족 형태 등의 이야기를 ‘도덕적 태도’로 접근하려는 연출작이 많았다.

전예진 감독의 은 장애에 대한 전형적인 재현을 피하면서 비장애인 중심 세계의 편협함에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 작품이며, 김율희 감독의 <우리가 꽃들이라면>은 세상이 당연할 뿐인 고등학생 상현이 앞을 보지 못하는 친구 정우와 사려 깊은 만남을 가져가는 이야기다. 김예원 감독의 <우연히 나쁘게>는 성적지향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조경원 감독의 <둥지>는 따돌림 당하는 중학교 2학년 한둥지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은 깔보이고 싶지 않은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감각적으로 따라간다. 둥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둥지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다. 서늘한 이야기와 달리 화사하고 감각적인 영상의 언밸런스가 인상적이다.


▲ <데마찌> 스틸

김성환 감독의 <데마찌>는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는 쉰아홉의 정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데마찌’는 일거리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일본식 은어. 정태는 새벽부터 내리는 비를 보고 그날 일을 공칠 것 같아 술을 마신다. 오전 9시가 안 돼 비는 그치고, 현장에선 공사 일정을 맞춰야 다음 일거리를 받을 수 있다며 서둘러 나오라고 전화가 온다. 이미 소주 여러 병을 비운 정태. 흙이 잔뜩 묻은 신발과 공구 가방을 들고 비틀대는 그에겐 택시도, 대중교통 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속상한 정태는 자꾸만 술을 더 마시고,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한다. 만취한 채 욕설을 내뱉는 초로의 남자는 손쉽게 기피 대상으로 여겨진다. 정태의 힘겨운 출근길엔 정보에서 소외된 노인 세대, 육체 노동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함께한다. 대구에서 주로 활동해 온 연극배우 이송희의 연기가 시선을 빨아들인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소재로 한 영화가 늘었다는 것도 올해 한국단편경쟁 부문 출품작의 특징이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사용자의 감성 혹은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이 눈에 띄는데, 그중 서가현 감독의 <아가리 파이터>는 유튜버의 삶에 집중한 작품이다.

최근 한국 상업영화계의 서사 트렌드가 SF로 향하는 것과 함께 단편 출품작에서 SF 장르의 수가 늘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중 김아영 감독의 실험영화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은 난민, 이민자에 관한 동시대적 고민을 SF라는 미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밖에도 다수의 출품작이 출산율 저하, 우성 인자에 대한 집착, 세계 멸망의 공포 등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다뤄, 이 시대 젊은 창작자들의 세계 인식을 가늠케 한다.


▲ <아가리파이터>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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