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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20:21:36

1950년, 전주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 유해발굴은 진행중

2차 유해발굴, 황방산 일부와 산정동 소리개재 지역 용역진행중


... 임창현 (2020-07-02 03: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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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월1일, 김승수 전주시장과 희생자 유족 등 30여 명이 보도연맹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하고 있다)

1950년 6~7월 인민군이 전주에 진입하기 직전 군과 경찰은 전주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수형자와 보도연맹원 1400여 명을 효자동 황방산 및 산정동 소리개재 등에서 집단으로 학살해 매장한 사건이 있었다. 전주를 점령했던 인민군도 우익인사 1000여명을 전주형무소에 수감했고 이중에 500여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군에 의해 학살된 우익 희생자들은 1955년에 전주시 효자공원 묘지에 이장, 안치됐지만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된 보도연맹원들은 유해발굴작업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보도연맹은 1949년 6월 5일 좌익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자들로 구성되었던 관변 반공단체 조직이다.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국민의 사상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려는 이승만 정권의 대국민 사상통제 목적으로 결성됐다.

보도연맹의 활동은 ‘대한민국 정부 절대 지지’, ‘북한 정권 절대 반대’, ‘인류의 자유와 민족성을 무시하는 공산주의사상 배격 · 분쇄‘, ‘남로당, 조선 로동당 파괴정책 폭로 · 분쇄’, ‘민족진영 각 정당 · 사회단체와 협력해 총력을 결집한다’는 주요 강령 내용 등을 내세워 철저히 반공주의 강령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이들이 '과거 좌익활동 전력으로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에 전쟁이 터지자 각 지역에서 집단적으로 학살이 자행되었다.


(사진=대전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이도영 박사(1947-2012)가 국내에 소개한 사진이다)

보도연맹 구성에는 연맹원 가입숫자를 늘리기 위해 좌익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이 평범한 농부들에게 고무신을 나눠주거나 비료주는 조건으로 가입 도장을 받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전북지방경찰국 사찰과에 근무한 경찰관 전씨(당 30세)는 “각 경찰서에서 다루기 힘든 거물급들은 도경 유치장에 검속되어 있었고 전주경찰서에 구금되었던 예비검속자들도 대부분 도경으로 이송되었다. 도경 유치장은 12개 방이 있고 한 방마다 20~30명 정도 있었기 때문에 꽉 차면 350명까지 있었다. 도경 유치장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 중에는 여자들도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보도연맹원들은 구금기간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고, 여름철이라 덥고, 먹는 것이 부족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유치장 안에서 자연사한 사람이 많았다”라고 했다.

그는 살해경위에 대해서 “초기에는 일선 경찰서에서 검속한 보도연맹원들 중 우두머리급들을 도경에서 인수했는데 후퇴가 임박해서는 이송시킬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일선에서 처리하였다. 처음에는 갑종들을 먼저 죽이고 후퇴할 무렵에는 다 죽였다. 도경 유치장에 있던 보도연맹원들 살해장소는 여러 곳인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지휘관(사찰3김** 계장 )이 선정하였으며 주로는 야산이 많았던 완주군 동상면을 이용하였고 이외에도 정읍 내장산골목에서도 일부 죽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했다.

전쟁 발발 당시 전주형무소 형무관으로 근무했던 이씨는 “전주지역 보도연맹원들은 전주시 화산동 소재 강당재, 전주시 효자동 일대, 완주군 상관면 일대, 완주군 동상면 일대, 전주시 덕진동 소재 건지산, 산정동 소리개재 등 주로 야산 골짜기에서 사살되었다.”라고 했다.

전주시는 7월1일 세종시 추모의 집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과 전주 보도연맹 민간인 희생자 유족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차 조사발굴에서 찾은 유해 안치식을 가졌다.

2019년 유해매장 유력 추정지인 황방산 일대와 소리개재 일대를 시굴·발굴하여, 황방산 일대에서 두개골과 치아, 다리뼈 일부 등 유해 237점과 M1소총과 권총의 탄피, 벨트 등 유품 129점을 발굴하고, 감식 및 보존처리를 통해 최소 34개체임을 확인했다.

시는 2차 유해발굴 용역을 진행 중이며, 시굴작업이 실시되지 않은 황방산 일부 지역과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소리개재 지역에 대해 추가 발굴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