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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자가 보는 아버지노릇-“투구 벗는 헥토르 돼야”

[인터뷰] 신간 『아버지의 부모역할과 아동발달』 저자, 이영환 전북대 아동학 교수


... 문수현 (2014-07-30 13: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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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전북대학교 아동학과 교수가 신간 『아버지의 부모역할과 아동발달』을 출간했다.

아버지역할은 그동안 생계유지자로서의 도구적 역할로만 규정돼 왔다. 그러나 20세기 기혼여성의 취업이 증가하면서 아버지는 자녀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 양육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렇게 변화한 아버지의 역할,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좋은 아버지에 대한 정의, 충분히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는 남성들에게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이 책에서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1부에서 진화론적 관점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아버지를 살피고, 2부에서는 엄격한 훈육자였던 전통사회 아버지에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자녀 양육에 참여해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아버지라는 갈등과 마주하고 있는 부성(父性)을 얘기한다. 이어 3부에서는 아버지-자녀 관계에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슈들을 통해 아버지들이 아동발달을 쉽게 이해하면서 양육적 아버지가 되는 데 중요한 팁을 제공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새로운 아버지를 위한 제언도 아끼지 않는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자녀 양육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펼쳤는지 살피면서 아버지가 자녀 출산과 양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족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영환 교수는 아동기, 특히 영아기 발달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변화된 사회에서 부모, 특히 아버지가 양육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적이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8일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이 교수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저서에 ‘헥토르, 투구를 벗다’라는 부제목을 다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요?

=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따왔어요. 신화에 따르면 헥토르는 당대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와 싸우다 죽었어요. 죽을 줄 알면서 싸웠죠. 헥토르가 전투 중에 들어와서 투구도 벗지 않고 피범벅이 된 상태로 아이를 안아주려고 하자 아이가 놀라서 울어요. 헥토르가 싸운 이유는 조국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게 곧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아이를 놀라게 하는 거죠. 헥토르가 투구를 벗자 그제야 아이가 아버지를 알아봐요. 그때 안아주고 들어 올리면서 기도를 하는 거죠.

과거에 아버지들은 권위를 가지고 아이를 교육하고 훈육하는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권위라는 투구를 벗는 헥토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투구를 내버려선 안 되죠. 필요하면 쓰고 나가야 하니까. 아버지의 역할이 다양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 부제를 이렇게 한 겁니다. 책 51쪽에 관련된 내용이 나와요.

◯ 이 책에서 사용하는 ‘아버지되기’ 또는 ‘아버지노릇’ 같은 개념들은 생소합니다.

= 역할 개념에는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기대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반면, 노릇에는 바람직하다는 의미가 다분히 들어있어요. 역할보다 큰 개념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전통사회에서 아버지는 바깥일의 대표자이고, 바깥일이 아버지역할이죠. 그런데 그건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지 가장 바람직한 건 아니에요. 반대로 ‘아버지노릇 잘 해라’ 할 때 노릇에는 바람직한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아버지노릇이 경제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여성의 가사노동이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어요. 남성들이 밖에서 일하는 동안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고 가사노동을 한 것이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으면서 남편이 번 재산이나 은퇴 후의 연금도 부부가 반으로 나누게 됐죠.

이때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바꿔도, 곧 남성들의 가사노동 역시 인정해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역할, 아버지노릇이 단순히 필요할 때 도와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육아휴직할 때 돈을 줘야 된다는 개념이 성숙해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역할 개념을 포함하면서도 가사노동의 가치와 바람직함을 담아낼 수 있는 용어를 열심히 생각하다가 노릇이라는 개념을 2005년 이후에 제안하게 됐어요.

◯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아버지가 된다는 건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아버지 된다는 것과는 다르겠죠?

= 그렇죠. 지금은 어쨌든 여성도 경제활동을 해야 되잖아요. 옛날엔 아이가 옆에서 따라다녔겠지만 지금은 일과 집이 분리가 돼 있잖아요. 그래서 생물학적인 아버지,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아버지도 포함하면서 아버지노릇도 같이 되지 않으면 안 돼요.

지금 우리 사회는 부모가 아이 양육을 같이 안 하고 제3자에게 맡기는 상황이잖아요. 어린이집이 그런 개념이죠. 아버지도 일 나가고 어머니도 일 나가니까요. 하지만 이건 하나의 보조수단일 뿐이에요. 자녀양육의 궁극적인 책임은 부모이기 때문이죠. 아버지가 참여함으로써 그 역할이 나뉘지 않으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사는 기반을 닦기는 어렵다고 봐요. 물론 보육지원이란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굉장히 필요해요. 하지만 건강하게 아동이 발달하는 걸 침해하면서까지 보육을 우선시할 수는 없어요. 그런 점에서 어머니가 나가는 그 시간을 아버지가 돌아와서 메꿔줘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쪽으로 정책이 펴지려면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가 논의를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영환 전북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 아버지노릇이 강조되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일까요?

= 굉장히 중요한 원인이 되죠. 산업사회 이전에는 아버지역할은 총체적이었어요. 일터와 집이 분리되지 않았고 가족이 함께 살면서 아이의 교육도 담당했어요. 하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아버지들이 일하러 밖으로 나갔고 어머니는 남아서 가사와 육아를 맡게 됐어요. 역할이 분명히 나뉘게 된 거죠. 이때 ‘역할’은 굉장히 적합한 용어에요. 사회적으로 그렇게 기대가 됐고 경제가 그렇게 형성이 됐기 때문에요. 아버지는 생계유지자이면서 도구적 역할을, 어머니는 양육자이면서 표현적인 역할을 맡은 거죠. 그런데 전쟁이 발발해 남자들이 군대에 가면서 여성들이 아이들을 맡고 돈도 벌어야 됐어요. 사회적으로도 이게 맞았죠. 군수물자 대야 되니까 공장 가동시켜야 되고, 그래서 여성들도 일터로 나간 거죠. 그런데 그 뒤에 다시 안 돌아갔잖아요.

◯ 이런 흐름이 불가역적이라면 결국 정책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겠군요.

= 지금 우리나라에 직장을 가진 여성들이 한 50% 돼요. 그리고 학생들도 취업이 우선이에요, 결혼이 절대 우선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한테 ‘아이 키우는 동안 집에 가서 충실히 있어라.’ 이게 안 되잖아요. 경력단절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니까요. 그래서 가족정책이 필요한 거죠. (지금 잘못된 정책방향처럼) 어린이집에서 정말로 12시간 이상 봐주든지, 국가가 어머니 아버지들한테 육아휴직을 주든지 해야 되는 거죠. 그러려면 국가가 나서서 아버지들이 어린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열심히 정책을 펼쳐줘야 되고, 아버지들 스스로도 달라져야 되고 직장문화도 달라져야 돼요. 이러한 점들을 책 후반부에서 많이 다뤘어요.

우리나라는 굉장히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어요. 안 바꾸려고 하는 거죠. 돈이 너무 많이 들고요. 이런 얘길 하면, 직장생활에서 일찍 퇴근하는 게 경쟁에서 굉장히 뒤떨어지는 거라 그래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때요. 결혼 안 하려고 하고 아이 안 낳으려고 하잖아요. 결국은 이게 악순환이고요. 경제적인 생산성만을 볼 것이냐, 속도는 굉장히 늦지만 함께 살아갈 합의점을 도출할 것이냐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되죠.

스웨덴의 경우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을 많이 해요. 우리나라 젊은 아버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하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아이 키우는 걸 보람되게 여기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욕구를 정책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어요.

◯ 비록 젊은 세대가 달라지긴 했어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몹시 가부장적입니다.

= 쉽지는 않아요. 제가 결혼할 당시에 ‘아이 셋 낳으면 미개인이고 넷 낳으면 야만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시대에 태어난 제 아이가 결혼도 안 한다고 할 만큼 사회적인 변화는 굉장히 빠르거든요. 오히려 사회 흐름에 정책이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가부장이어서 안되는 게 아니라고 봐요.

이 책에서 외국 사례로 대표적으로 스웨덴을 다루는데, 남자가 퇴근하면 집에서 따뜻한 스프와 빵이 올라오는 게 굉장히 이상적인 그런 나라였어요. 그런데 여성의 노동을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평등한 가족정책을 1순위에 뒀어요. 그래서 아버지들이 참여를 안 하면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권리가 없어지게 만들었어요. 그걸 쿼터제, 아버지 할당제라고 해요.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육아휴직 두 달을 써야 돼요. 법으로 그렇게 규정을 해주면서 육아휴직에 대해서 월급의 80%를 보전해줘요. 책 속에 자세한 내용 담겨있어요. 우리나라 육아휴직비가 현재 50~100만원이에요. 그 돈 받고 육아휴직 할 남자들이 없어요. 하지만 월급의 80%를 주겠다면 육아휴직 안 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예산들이 지금 어린이집으로 다 들어가는 거예요. 스웨덴에는 영아 어린이집이 별로 없어요. 그 시기에는 엄마 아버지들을 집으로 돌려주는 정책이에요. 스웨덴은 아버지 월급이 높기 때문에 만약 아버지할당제가 없으면 양육 역할은 나뉘게 돼요. 아버지할당제를 함으로써 아버지가 두 달 쉴 것을 여섯 달 쉬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 양육참여가 제일 높은 나라가 됐어요. 그러면서 여성취업률도 80%로 높으면서 출산율도 높은 나라가 됐고요. 이런 나라들을 우리가 모델링해야겠죠. 그런 나라들이 보면 다 정책들이 아버지에 주목을 했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가부장적인 관념이나 제도에 자꾸 얽매어 있으면 저출산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어요. 아버지들도 굉장히 열망하고 능력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책을 그쪽으로 몰아주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 서구와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씀이군요.

= 그럼요. 과연 발달적으로 아동이 어린시기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어린이집에서 12시간씩 떨어져 사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요? 아동학자들은 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해요. 아동학의 성과가 우리나라 보육정책과 육아지원정책에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있어요. 육아지원정책이 상당히 졸속적이에요. 무상교육만 해도 지난번 총선하면서 갑자기 퍼진 거고, 이런 식으로 예산이 급속하게 전개가 되니까 정말 아동을 위한 정책들이 차근차근하게 잘 안 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들에게 노조 만들자고 해요.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권리를 달라, 그런 기반을 마련해달라, 국가한테 이런 요구를 부모들이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요.

◯ 그 기반은 결국 경제적인 문제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런 요소가 크죠. 내가 아이들을 키우러 가면, 내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없어지니까 그걸 국가가 보전을 해줘야 되는 거죠. 그게 육아휴직수당이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이 한 달 안에 다 크는 게 아니라 1년 2년 걸리니까 그 기간 동안 열심히 키워야 하잖아요. 그리고 이 아이들을 잘 키워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이 돼서 아이들이 커서 경제활동 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들이 세금을 내서 노후에 나를 부양을 해줄 거니까, 자녀양육문제는 결코 경제하고 별도로 놓을 수가 없는 거죠.

◯ 한편에선 우리나라 재정수준이라든지 노동력부족을 근거로 육아휴직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 육아휴직 수당을 얼마 올리면 적절한가 하는 논쟁이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버지육아휴직보다는 양육수당을 줘서 여성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우게 하는 정책을 쓰기도 해요. 월급이 적은 여성들은 굳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보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 키우는 쪽을 선택하겠죠. 그래서 그 밸런스를 찾는 작업을 보건사회연구원이나 여성정책연구소 같은 데서 계속 하고 있어요.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아예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는 쪽으로 선택해나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건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위험해져요. 적정한 수준에서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나야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자녀 육아문제는 개인이 책임질 차원은 넘어섰어요 현대사회에서는. 이건 정부와 국가의 책임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러한 책임을 결국은 부모들한테 지원을 하는 방향 중에서 효율적인 방법들을 찾아내야 하는 거죠.

저는 경제학자이기보다 아동학자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 게 가장 바람직한가를 계속 이야기합니다. 어린시기부터 집단양육보다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클 때 나중에 경제적으로도 오히려 더 효율적이에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서, 경제적으로 잡히지 않는 무수한 문제가 발생해요. 이걸 치료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가요. 가장 경제적인 건 제가 볼 때 가정에서 잘 크는 것, 특히 어린시기에 잘 크는 것이에요, 이 시기는 너무나 중요해요. 그래서 외국에선 18개월 이전에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크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장기적인 걸 안 보는 거죠.

얼마 전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 해커만 교수가 방한한 적이 있어요. 7세 이전 유아기 때 투자한 비용이 나중에 투자한 것보다 7배나 높다고 말해요. 고등학교 때 투자하는 것보다 중학교, 중학교 때 투자하는 것보다 초등학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유아기라는 거죠. 우리나라가 유아기 때 투자를 않는 건 유아들이 투표권이 없어서예요.

◯ 청소년들도 투표권이 없죠.

= 그렇죠. 하지만 투표권이 없어도 이야기는 하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이야기를 하려면 부모를 통해야 해요. 그런데 정작 부모들은 이 중요한 것보다는 일단 현실에 더 급급하잖아요. 그리고 어린이집은 표가 돼요. 원장들 어린이집 교사들은. 그러니까 그쪽으로는 투자가 되는 거예요. 정말로 아이들이 건강하게 크려면 어떤 환경에서 커야 되는가에 대해서도 이미 연구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어요. 반영이 안 될 뿐이죠. 어린시기에 어떻게 커야 바람직한가는 아버지역할 어머니역할 자체를 떠나서 정말로 부모들이 관심 가져야 되는 문제에요.

◯ 그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양육 또는 돌봄[care]이 과연 아버지의 본성에 맞느냐는 보수적인 의문도 꽤 있습니다.

=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전에는 ‘맞다 안 맞다’를 얘기했었어요. 진화론적인 논거들도 많이 등장했고요.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맞고 안 맞고가 아니라, 그냥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여성들이 아이 키우겠다고 집에 돌아가지 않거든요. ‘그래, 나 중도에서 포기할게.’ 이게 아니거든요. 아이들 키우면서 ‘그래, 너는 딸이니까 가정적으로 열심히 아이들 돌보면서 커야 돼’라고 교육하지도 않고요. 30대 젊은이들이 남자든 여자든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커요. 그게 1순위에요. 그래서 결혼을 미루는 거잖아요.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변화에요.


(사진제공=이영환 교수)

◯ 책 속에 인상적인 사진들이 보입니다.

= 약 10년 전 찍은 사진들입니다. 스웨덴에서 아버지 양육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 속 남성은 역도선수에요. 남성다움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고 그 하이라이트는 육아라는 걸 보여주죠. 이런 것들이 국가가 전통적인 사회적 관념을 바꾸는 데 굉장히 기여하겠죠.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을 받아서 월요일 화요일 대낮에 아이들 키우고 공원에 놀러와 있어요. 쉽게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죠. 이 화장실 사진을 보세요. 여긴 패어런츠룸이 따로 있어요. 아이들 기저귀 갈아주는 곳이죠. 우리나라는 기저귀 가는 곳이 여자화장실 안쪽에 들어가 있어요. 이런 어린아이들을 아버지들이 데리고 나가기가 어려운 문화에요. 그런데 스웨덴은 장애인 화장실처럼 패어런츠룸을 밖으로 빼줘서 아빠들도 애를 데리고 다니다가 여기 들어가서 기저귀 갈아주는 거예요. 이게 이미 2000년도 경부터 공공기관들에 들어가 있어요.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제가 전주에서 정말 여러 번 얘기했고 서울 학회에서도 얘기했고 시간 날 때마다 발표를 하거든요. 그래도 개선이 안돼요. 굉장히 늦어요.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 이런 어린애들 데리고 다니다가 엄마한테 넘겨줘야 되잖아요, 화장실 갈 때는. 그런데 이런 돌봄에도 엄마역할 아빠역할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상황이 되면 해야 되는 거잖아요. 더구나 이게 힘이 드는 일이잖아요. 그것도 노동이고 일이란 말이에요. 여성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가서 하는 거예요. 개선해야죠. 그런데 아이들은 요구를 안 하잖아요. 그럼 그 요구를 누가 해야 되느냐, 아버지들이 해야 된다고 저는 보는 거죠. 아버지들이 ‘우리도 아이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어야 된다.’ 그러면서 ‘이런 걸 해주는 사람한테 표 던지자.’ 그럼 바로 만들어질 거예요 아마.

◯ 아버지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책들이 있나요?

= 그런 책이 거의 없죠. 논문으로는 몇 편이 있어요. 미국의 아버지 연구는 훨씬 다양하고 구체적이에요. 예를 들어 게이아버지 연구나 이혼아버지 연구를 들 수 있어요. 게이부부가 입양한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는가, 이혼한 아버지가 계속 관계를 맺거나 끊는 경우 또는 양육비를 주거나 안 주는 경우 아동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이죠.

제가 이 책에 넣은 건 그런 것의 아주 일부분이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범위의 아버지 연구들도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연구는 나올 수가 없겠죠. 편견, 연구대상 잡기의 어려움, 연구발표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한계가 있으니까요. 우리나라가 일탈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미국에서는 굉장히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합니다.

◯ 아버지도 남성입니다. 교수님의 연구를 남성연구의 한 분야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까요?

= 저는 남성이라고 안 보고 그냥 부모라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아동을 구성하는, 아동발달에서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게 부모와 가족이라 본다면, 어머니 연구는 너무 많이 돼있는 반면 아버지연구는 굉장히 덜 되어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아버지는 경제적인 책임으로 끝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동발달에 정말 엄마하고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지 엄마하고는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 엄마만 아이를 열심히 잘 키우면 아이들이 건강할 수 있는지 하는 것들은 아동학자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주제죠. 하다보니까 이쪽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또,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도 우리 생각보다 많이 있어요.

◯ 여성의 전화 상담통계를 보면 압도적 다수가 가정폭력 건입니다. 가정이 별로 평화롭지 않다는 얘기죠. 평화롭지 않은 부부관계에서 양육분담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가정이 항상 평화롭다고 하는 건 이상이죠. 가정은 생활이니까요. ‘우리는 싸움이 없어요!’ 저는 이건 거짓말이라고 봐요. 항상 갈등은 있고 정말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죠. 과거엔 역할분담이라도 돼 있었는데 지금은 역할도 이제 함께 한다고 하고 집안일도 같이 하자고 하죠. 하지만 과거를 계속 주장하면 갈등은 해결이 안 되겠죠. 그리고 변한다는 것, 변해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인식을 하고 있어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가 중요한 거죠.

우리가 현재 시기에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가도 잘 들어야 합니다. 육아휴직하면 아빠들이 아이들하고 놀고 돌봐주는 게 정말로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굉장히 많이 알아요. 그러면서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못한다는 얘길 너무 많이 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양육을 참여하고자 하는 데 장애요소들이 굉장히 많죠. 그전엔 직장분위기, 제도적·정책적인 것들을 많이 연구했어요. 그런데 최근의 쟁점은 아버지 양육참여를 방해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어머니 자신이더라는 거예요. ‘이건 내 영역이다’, ‘당신은 못 하니까’라면서 자꾸 밀어내는 거죠 이걸 문지기역할(Maternal Gate Keeping)이라고 해요. 결국 어머니 스스로도 아버지들을 양육에 인도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성들은 양육의 경험이 많잖아요. 어려서 소꿉놀이도 하고 크면서 애 돌봐온 경험도 있고, 아무래도 뱃속에 넣고 낳고 보니까 갓난아기 때 엄마들이 더 돌볼 기회가 많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니까 더 익숙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왜 그렇게 해?’ 이러면 점점 아버지가 양육에 참여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도와주니까 내가 참 좋아!’ 하고 유도해야 한다는 거죠. 아버지교육도 필요하지만 어머니교육에서 아버지양육참여를 끌어들이는 방법도 관심을 가져야 되는 주제 중 하나에요. 그런 내용들도 제가 이 책에 간단히 언급을 했어요.

◯ 그렇다면 가족 안에서 일과 관련해 부부의 평등이란 뭘까요?

= 가족형태와 부부관계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자녀양육이 어떤 가족 관계에서는 아주 평등하게 나뉠 수도 있고, 어떤 가족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에서 뒤바뀔 수도 있어요. 그런 다양성을 우리가 수용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항상 2분의 1로 나누는 게 평등은 아니에요.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 우리 부부의 직업유형, 우리 아이의 연령 등 다양한 상황에서 서로 입장을 고려하면서 가장 적절한 모형을 찾는 게 평등이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21세기 아버지노릇은 그런 데서 찾아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여성들이 경제활동으로 나가기 시작한 데 비해서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역할을 나누는 정도가 아직 굉장히 더디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기본통계가 아주 부족해서 책에는 외국통계를 인용했는데, 이건 아버지들의 양육참여 추세에요. 1965년과 2011년에 각각 하루에 직장에서 보낸 시간을 비교했어요.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하는 일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거죠. 그걸 보면서, 그 다음에 여성의 직장참여시간을 분석을 하면 과거에 비해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자녀양육에 쓰 시간이 굉장히 늘어난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엄마가 나간 것만큼 들어오지는 않았어요.

그럼 결국은 아이들한테서는 이게 굉장히 마이너스라는 거죠. 그러니까 과거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부모하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형편없이 줄어든 거죠. 그것의 가장 최소한도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라, 이런 이야기들을 좀 해야 되는 거죠. 부모하고 같이 지내는 어린시절의 시간이 너무 줄어들었어요. 아침에 엄마 아빠 출근하면서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죠. 퇴근하면서 보죠. 그럼 아이 먹이고 재워버려요.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건 심각한 문제에요.

◯ 아동발달과 여성의 자아실현은 갈등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페미니즘 일각에서는 아동학을 부르주아운동이라 부르기도 해요. 가족을 지켜야 할 곳으로 본다고 지적하기도 하죠.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겠지만 확실한 건, 저는 아동한테 초점을 둔다는 점이에요. 건강한 아동발달이라는 관점을 강조해요. 아이들이 정말 필요한 건 가장 좋은 양육이에요. 어린 시절 발달단계를 보면 1대 다수가 아니라 1대 소수 양육이어야 되고, 첫 1년 2년은 굉장히 부모관계가 충실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인생을 100년으로 잡으면 가장 중요한 게 형성되는 시기에 부모가 스케줄을 조율해가고 국가가 그런 정책을 펴주면 아이들하고 관계를 굉장히 잘 맺을 수 있고 그렇게 밑바탕이 튼튼하게 아이들이 크면 세 살 먹고 네 살 먹고 초등학교 건강하게 커나갈 수 있다는 거죠. 저 뿐만 아니라 아동학자는 그걸 강조해요.

결국은 포커스를 여성의 자아실현에 두느냐, 좀 더 건강한 아동발달을 위한 부모의 역할에 두느냐에 따라서 강조점은 조금 달라져요. 경제학자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보겠죠. 그래서 정책입안자는 그 모든 과정을 다 들으면서 정책을 펴야겠죠. 그런데 문제는 아동의 입장이 가장 반영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언론이라든지 이런 데서 훨씬 더 약자 편을 들어서 아동의 충실한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이 펼쳐지도록 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아버지가 부모역할을 충실히 하게 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내용을 여기다 담으려고 노력을 많이 한 거예요.


(이영환 전북대학교 아동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