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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배후에 ‘규제완화’와 ‘민영화’

새책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국내외 사례 11건 치밀한 분석


... 문수현 (2014-09-19 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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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국가예산에 안전 관련 비용이 눈에 띄게 늘었다. 세월호 참사의 효과로 불린다. 그렇다면 과연 내년부터 한국 사회는 덜 불안해지는 것일까? 그렇다고 답하기 망설여지는 이유는 무얼까.

참사 이후, 국내외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을 정리한 책이 최근 발간됐다. 사회운동이 펴낸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본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이 그것. 박상은씨가 책임집필하고 사회진보연대 세월호팀 활동가들이 기초조사와 토론에 참여했다. 188*257, 169쪽, 6,500원.

이 책은 현재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집계한 사회과학 신간에서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물론 삼풍백화점 붕괴와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 등 국내외에서 발생한 대형사고 11건을 모아 최초로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 원인과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사회적 재난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저자가 주목한 대형사고들 역시 모두 사회적 재난들이다. 저자는 사고 후 유가족들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노동안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례들을 우선 선정했다고 밝혔다.

저자는 먼저 1장에서 세월호 참사의 배후에 선박 안전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있다고 폭로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박손실 사고가 발생한 선박의 평균 연령이 25년이라는 점, 최근에 선주의 법적 책임이 완화되었다는 점도 상기시킨다.

2장에서는 한국의 대형사고 중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인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태안기름유출 사고를 다룬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매출 감소가 두려워 잠시라도 백화점 문을 닫을 수 없었던 경영진들이 만든 참사였다. 삼풍백화점은 사고 한 달 전에 이미 “붕괴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사고 당일 고객과 직원들이 붕괴 4~5시간 전부터 천장에서 들리는 파열음과 붕괴의 전조들을 보고했다. 하지만 대피를 알리는 비상벨이 울린 것은 붕괴 7분 전이었다.

대구지하철 화재는 1인 승무제로 인하여 사고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쳐서 피해가 커졌으며,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삼성중공업의 예인선단이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운항을 하다가 발생했다.

이어 3장에서는 해외의 대형사고 사례를 사고 이후의 수습과 대응이 어떠했는지에 주목해 살폈다.

1911년 미국 뉴욕의 공장에서 발생한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민들의 운동이 결실을 맺은 사례다. 1968년 발생한 파밍튼 탄광참사도 유가족과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탄광 안전 개선을 이끈 사례다.


(1984년 인도 보팔 가스폭발 사고.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1987년 침몰한 영국의 프리엔터프라이즈호. 기업살인법 제정의 배경이 됐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1984년 인도 보팔 시에 위치한 미국의 초국적 화학기업에서 유독가스가 퍼져 나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한편, 1987년 영국에서 발생한 프리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고는 '기업살인법'(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 제정의 배경이 됐고, 엑슨 발데즈 원유 유출 사고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이 총피해액의 1%에 해당하는 만큼의 책임만 졌다면, 엑슨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인해 1년간 총이익금액에 해당하는 50억 달러를 물어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2005년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는 기업 내에 형성되어 있는 안전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붕괴는 저임금을 찾아가는 초국적기업이 제3세계의 안전은 도외시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사례다.

끝으로 4장에서는 대형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살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정부가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책기조를 멈추어야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도로 위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과적 화물차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적을 하지 않으면 화물차를 운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화물운송 시장의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을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고, 기업의 문화도 안전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 박상은씨는 “정부는 최근 안전관련 민간기업을 키우고 연안 해운 안전대책 역시 안전관리기업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생산하고 있다”며 “정부가 책임져야 할 안전정책에 대해서 기업으로 외주화하는 방식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영국이나 호주, 캐나다, 스위스처럼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기업에게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2007년부터 승객을 포함해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기업에 묻고 있고, 캐나다는 노동자가 사망하면 기업이 처벌받도록 하고 있다.

기업살인법은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