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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ream Job

[워킹홀리데이 멜버른⑤] 김수빈(‘완생’을 꿈꾸는 20대 청년)


... 편집부 (2015-02-25 09: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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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26년 동안 살았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호주에서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 전북교육신문의 제안으로 내 마음 속 나만의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글로 적어보기로 한다(사진=김수빈).

“일은 어디서 하고 돈은 어떻게 벌려고 그래?” “영어는 잘해?” 한국을 떠나기 전 지인들의 우려 섞인 질문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험자들 사이에선, 과일농장이나 고기공장에서 1년 동안 일만 해서 돈천만원 모아 왔다는 사람, 운 좋게 외국인 레스토랑에 주방 설거지 일을 구해 최저임금이 넘는 높은 수당을 받아가며 일을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웅담마냥 돌아다니고 많은 부러움을 산다.

실제로 영어모임이나 어떤 사교모임에서 한국사람들, 아니 꼭 한국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또는 그 일은 어떻게 구했는지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는 마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누가 더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듯 내차를 뽐내고 싶기도 하고 누가 나보다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는 그런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그 중에서도 최소 100장이 넘는 이력서를 직접 돌려가며 외국인잡을 구했다는 사람 그리고 영어를 공부해 호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혹은 웨이트리스로 일을 구한 사람들이 제일 영웅취급을 받는데,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인잡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임금과 외국인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점에서다. 어쩌다,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라도 하는 일에 그렇게 동기를 부여하고 수많은 블로그를 뒤져가며 작성한 수십 장의 영문이력서를 두려움을 무릅쓰고 거리를 누비며 뿌리고 다니게 되었는지 참 우스운 일이다.

각자 좀 더 특별하고 본인 스스로에게 더 의미 있는 일들을 찾고 계획해 볼 수는 없었을까? 사실 그렇기도 쉽지가 않다. 왜일까? 요즘엔 워킹홀리데이다 하면 인터넷에 안 알려진 것들이 없고 할 수 있는 것들, 없는 것들, 마치 객관식문제의 보기마냥 정답은 그 중에만 있다고 알려주고 있고 또 지도처럼 길안내마저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마련된 좁은 지도 안에서 많은 ‘워홀러’들이 길을 찾고 있었다.

나 또한 준비했던 생활비가 떨어져 가면서 압박감을 느끼며 일 구하기에 한창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로 일을 했었기에 카페에서 바리스타일을 하면 좋겠다 싶었고, 같이 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영문이력서를 들고 집주변 카페부터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호주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인터넷을 통한 구인구직보다는 직접 방문을 해서 사람을 구하는지 일자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더 통한다. 호주사람인 집주인으로부터 인터뷰를 위한 특훈도 받고 수없이 거울을 보고 뺨을 때려가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보아도 카페 문 앞에 서면 도무지 “나는 이런 사람이다” “현재 구직중인데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느냐” 들어가 말을 건넬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에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지레 겁먹어버린 탓이었다.

결국 준비한 이력서의 대부분은 이면지로 책상서랍에 남겨졌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인터넷의 한 한인구직사이트를 통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레스토랑에 주방보조로 취직을 했다. 주로 하는 일은 설거지이고 점심과 저녁시간을 합쳐 하루 7시간 정도 하는 일이었는데 모든 한인 일거리가 그렇듯 호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았다. 마음에 썩 들지도 않았고 필요에 의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인지라 마음이 쓰이고 신경 써 하다 보니 어느덧 3개월이란 기간 동안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5일을 했던 것이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3~4일만 문을 열고 근무시간도 불규칙하게 되면서, 그대로라면 거처를 더 싼 곳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나가는 무료영어클래스와 집에 있는 시간만이 영어를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이 말 못할 고민에 밤잠을 설쳤다. 영어공부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작 하고 싶은 일에는 두려움에 차마 도전하기를 포기했고, 멀리 호주에 와 한인식당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설거지나 하고 있다니! 그렇다고 영어공부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여행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내가 작아져 버렸을까...’ 자괴감에 하루하루를 지내던 중 같이 사는 친구 Isabel에게 조심스레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Isabel은 UN에서 일하는 게 꿈인 에콰도르에서 온 23살의 학생이다. 평소에도 친근하고 진지하게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항상 용기를 북돋아주는 친구였는데 이번에도 나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수빈, 네가 행복한 일을 해야 해. 네 선택의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세상에 일어날 일들은 어떻게 해서든 일어난다고 나는 믿어!” 강한 믿음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아차 싶었다. ‘그래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그리고 나는 다시 용기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더 나은 일을 못 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만두지 못했던 한인 일거리를 바로 그만두었고 다시 카페 바리스타 일을 구하기 위해 준비했다.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일을 그만두고 나서였는지 나는 전력을 다해 구직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전보다 당당하게 이력서를 들고 카페를 들어설 수 있었고 그동안 꾸준히 다녔던 무료영어클래스 덕분인지 어느 정도 내 소개를 할 수 있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할 수 있다는 내 결심에 보상이라도 하듯 한인식당에서 같이 일했던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는 동생이 일하는 카페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니 인터뷰를 보러 가보라는 거였다. 시티에 있는 브런치카페였는데 지금은 바리스타가 있으니 일단 홀스탭으로 일을 시작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고, 나는 호주카페 근무경력을 위해 흔쾌히 수락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았는데 그런 내 사정을 알고 있었던 집주인 Debbie는 자기가 다니는 집근처 카페에 도움을 청했고 그 곳의 사장은 나에게 호주의 카페는 어떤 커피를 만드는지 그리고 한국의 커피문화와 차이는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인터뷰라도 하게 될 줄 알고 잔뜩 김칫국을 마셨는데,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어 했던 내게 팁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쉽고도 짜릿한 체험을 끝내고 또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저녁, Debbie가 말했다. “수빈! 좋은 소식이야. 한 달 전 우리가 소개해줬던 카페에서 너를 트라이얼 해보고 싶데! 어때? 내가 데려다 줄게, 가보자!”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이틀 후 간단히 트라이얼을 마친 나에게 사장 Pino는 토요일마다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주중에는 시티 브런치카페에서, 그리고 토요일 하루는 바리스타로써 Pino의 Bella sistas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Pino의 카페에서의 일은 너무나 행복했다. Pino가 직접 공수해 온 빈티지한 감성이 묻어나는 소품들과 그의 사랑이 묻어나는 인테리어, 춤을 추는지 일을 하는지 모르게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직원들 그리고 Pino의 커피와 그들의 음식을 정말 사랑해주는 가족 같은 손님들이 그동안 인터넷이나 언론매체를 통해 숨겨져 왔던 진실을 마주하게 해주는 듯 나를 또 놀라게 했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나는 Bella sistas에서 더 많은 날들을 일하고 싶었다. 시티 브런치카페에서의 근무 시간을 줄여가며 Pino에게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부탁했고, 결국은 늘고 늘어 Bella sistas에서만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5일 정도를 쉬프트를 받아 일을 하게 되었다.

Debbie는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축하해 주었고 우리 17명의 가족들과 함께 브런치와 나의 커피를 즐기기 위해 Bella sistas까지 방문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중에 슬로베니아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온 Tadej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가 일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Pino에게 소개시켜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같이 출퇴근을 하며 절친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직원들과 갖는 생일파티와 술자리에도 섞여 함께 웃고, 손님들과도 서서히 통성명을 하고 안부를 묻기 시작하고 친해지면서 정말 호주에서의 삶이 이런 것인가 생각하며 홀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덕분에 영어가 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국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이 지방 사투리를 써가며 한국말을 하듯이, 나는 호주에서도 진짜 호주인들 사이에서 한 주가 멀다하고 말과 억양이 늘었고 매주 무료영어클래스에서 그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워킹홀리데이를 마칠 때까지 7개월을 Bella sistas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했는데, 나에게 있어 이 경험을 글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일하는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재밌고 행복한 마음이었고 출근하기 싫거나 귀찮은 적이 없었다. 이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경험일까. 나로서는 짧게나마 내 일을 사랑한 경험을 한 셈이다.

그리고 사장 Pino에 대한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 없는데, 한국에서의 일을 통틀어 지금까지, 나는 그런 솔선수범하고 직원들에게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나와 함께 일 해줘서 고맙다” “잘 해줘서 고맙다”고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사장으로써의 모습, 그리고 정 많고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항상 넘치며 또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그처럼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런 그의 모습에 진정으로 감동을 받았다.

나는 감히 이 7개월 동안의 시간을 나의 Dream Job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 설명 = 호주를 떠나기 며칠 전 Bella sistas에서 눈물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항상 즐거운 우리 직원들. 왼쪽부터, 아직도 내가 본인보다 형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Karl, 누구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내 점심 샌드위치 레시피를 책임지고 있는 멜버른 멋쟁이 Jax, 장난스런 얼굴로 나를 들어올리라고 지시를 내린 오너 Pino, 나보다 어린 나이에 벌써 결혼해 남편과 이란에서 이주해왔고 주말엔 프랑스어 선생님인 Torkhan, 오른쪽에서 두 번째 Pino의 와이프 Josy, Pino에게 잔소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전형적인 한국아줌마와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나의 하우스메이트이기도 한 절친 Tadej, 슬로베니아에서 여자친구랑 같이 왔다. 내 소개로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 [워킹홀리데이 멜버른]은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