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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4 21:47:42

피임은 꼭 해야 해!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1)] 설연화 / 시인·수필가


... 편집부 (2015-08-02 23: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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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피임약 광고를 접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TV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 나도 가끔 거실을 지날 때 마주칠 수 있는 것이 피임약 광고다. 또, 자주 접하는 것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 기사들을 읽으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쯤 접할 수 있는 것이 영아유기, 영아 살해 및 사체유기 등 끔찍한 기사를 보는 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쉽게 한다.
“옆집 누구네 딸이 일찍 사고치고 결혼한다네?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렇다면 내 아이는 요즘 애들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집 애들은 절대 그런 짓 안 해!’
‘친구를 잘못 만나서 나쁜 길로 빠졌을 뿐이야!’
이런 말들은 현실이 아니라 부모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현실은 내 아이들도 요즘 아이들이고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부모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남편은 나에게 걱정도 팔자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들 무슨 소용 있을까. 더군다나 한 번의 실수를 인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더 먼저 걱정하고 미리 교육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난 오늘도 오지랖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피임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이들이 고등학교 입학할 때였다. 피임에 관한 이야기는 한 사람씩 따로 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저녁에 축하하는 의미로 집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남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방으로 들여보내고 딸아이와 식탁에 앉았다. 늦은 시각이었다. 딸아이는 말똥말똥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딸아이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소주 한 잔이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열이 올라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했다. 아무리 딸아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혼자 술잔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엄마 왜? 무슨 할 말 있어?”
“응, 할 말 있어.”
“왜?”
“너 혹시 피임 방법 알아?”
“그거 성교육 시간에 하잖아. 생리주기 계산으로 피임하는 방법이 있고, 한 달 내내 피임약 먹는 방법이 있고, 또….”
“성관계하고 나서 바로 먹는 피임약도 있어.”
“근데 그런 걸 왜?”
“혹시 남자 친구랑….”
“엄마! 아 진짜. 엄마 나를 어떤 애로 생각하는 거야!”
“아니, 발끈하지 말고 천천히 말 들어 봐! 네가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미리 조심해 두면 좋잖아.”
“엄마는 그래서 탈이라고. 정말 왜 걱정을 사서 해?”
“솔직히 말해보자. 네 친구 중에 남자애랑 자고 다니는 애들 있잖아!”
“그거야….”
“거 봐. 그런데 다른 집 애들은 그럴 수 있어도 우리 딸은 절대 안 그래? 그건 엄마들의 착각 아닌가? 난 너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뭘 하겠어. 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무수히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성교육이었잖아.”
“그만큼 중요하니까.”
“그래서 알 것 다 안다고. 그리고 엄마 나 아직 성관계 이런 것이 정상적으로 생각되지 않아. 혐오스럽다고.”
“그것도 문제인데? 섹스,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다만, 아직 너희들은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순간의 감성 때문에 무모해질 수 있으니까 걱정하는 것이지. 성관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야. 숭고한 사랑의 절정이지.”
“나도 알아. 그런데 여자애들이 어제는 누구랑 키스했는데 뭐가 어쨌다는 둥, 섹스했는데 어쨌다는 둥. 지네들 밤에 놀았던 장면 찍어서 다른 애들 몰래 보여주고. 그런 것 보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혐오스러운 걸 어떡해!”
“왜 그럴까? 왜 그런 생각이 들까? 호기심이 생겨야 할 나이에….”
“친구들 말처럼 아직 아기라서 그런가 봐.”
“우리 상담 한 번 받아 볼까?”
“엄마! 나 오늘 고등학생 됐어! 성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당연히 그런 생각할 수 있는 나이라고. 진짜 내가 엄마 때문에 못 살겠어. 진짜 엄마는 걱정도 팔자야!”

결국, 딸아이와의 대화는 실패로 끝났다. 엄마가 너무 걱정이 많아서 잔소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다음 날 아침 난 한차례 남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것 봐. 아직은 어리다니까. 당신은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나중에 해도 되잖아.”
그러나 내가 그냥 포기할 엄마는 아니었다. 사고뭉치 아니던가. 괴짜 엄마에 괴물 엄마 아니던가. 어찌 되었든 기회가 되면 딸과 섹스와 피임에 관해 이야기를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화난 표정으로 휙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아들 고등학교 입학식 전날.
남편이 아들과 대화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남편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남편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요즘 결혼 못 하는 애들이 많은데 사고라도 쳐서 혼수로 애 안고 오면 좋지 뭘 그래.”
“어휴, 고등학생 아빠? 애는 당신이 키우고?”
“설마 고등학생 때 그러겠어? 뭘 알아서!”
“저기 임 씨 아저씨. 하나만 물어봅시다. 남편님께서는 첫 경험이 몇 살이셨어요? 절대 그걸로 트집 안 잡을 테니까 솔직하게!”
“응? 그게…. 18살이었나?”
“그럼, 지금 당신 아들 나이는?”
“고등학교 입학하니까 17살.”
“그럼 첫 경험 가능성은 언제부터일까요?”
“…. 아 경험한다고 모두 임신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도 가능성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미리 교육하는 것이 좋잖아요.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교육하면 무의식중에 피임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다니까요!”
“아이고 난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애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겠어. 우리 어릴 때 뭐 부모들이 성교육시켜서 애 안 만들었나? 어찌 되었든 사고 안 치고 무사히 결혼해서 애 낳았잖아!”
“그런 우연에 아이 인생을 맡기려고요?”
남편은 손사래를 저으며 결국 TV를 켜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다음 날.
딸아이는 눈치를 채고 독서실로 가버렸고, 남편은 때맞춰 강원도 갈 일이 있다며 허락된 외박을 했다. 저녁은 아들과 단둘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정식으로 반주를 허락했다. 저녁 식사는 간단히 마치고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 혹시 첫 경험 했어? 총각 딱지 뗐어?”
아들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시선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당황한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해 봤구나?”
“…. 아니 아직. 근데 엄마가 그런 것 물어보니까 조금 민망해서.”
“어때, 엄만데. 근데 혹시 친구 중에 여자애들이랑 잔 애들 있어?”
“아직은 못 들어봤는데? 그냥 손잡고 키스 정도는 했다는 애들은 있어.”
“그럼 태훈이는? 어디까지 해봤어?”
“말 안 할래!”
“왜? 엄마한테 하면 부끄러워? 아니면 아직 모태 솔로야?”
“싫어 말 안 해!”
“음 그래 그럼. 그런데 아직 학생 때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혹시 여자랑 잘 기회가 생긴다면 일단 피임은 해야 해!”
“피임?”
“응, 아기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거지. 임신을 피한다. 해서 피임!”
“뭐 잔다고 다 아기 생기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도 혹시 생길 수도 있잖아. 피임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알지?”
“남자가 뭐 있나? 여자가 알아서 해야지.”
“아니지. 남자도 알아 둬야 하고 조심해야지. 네 인생뿐만 아니라, 여자애 인생도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되는 것인데. 더군다나 아이를 부양할 능력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심각하지.”
“그럼 남자는 뭐 해야 하는데?”
“콘돔. 그거 구하기 쉽잖아.”
“…….”
아들은 어느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역시 피임이 주제가 되는 대화를 엄마랑 한다는 것이 아들에게는 상당히 부담되고 민망한 모양이다. 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 또한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이와 더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더는 말하지 않을게. 한 가지만 부탁하자.”
“응?”
“혹시, 정말 만약에. 진짜 어찌하다가 보니까 아이가 덜컥 생겼어. 그럼 절대 너희끼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부탁. 물론 엄마도 화를 낼 것이고, 아빠도 화를 내겠지. 하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너와 아기를 가진 여자애 인생이잖아. 그래도 너희끼리 해결하는 것보다 양쪽 부모가 만나서 해결하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잖아. 알았지?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엄마한테 먼저 말해야 해! 그런 것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고. 알았지? 진짜 엄마 부탁이야.”
“휴! 어차피 엄마는 이 이야기 수십 번도 더 할 거잖아. 내가 무의식중에도 생각 날 만큼 많이 할 거잖아!”
“아마도!”
아들과의 대화는 그다지 길게 가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술 마신다거나, 아들이 늦게 들어오는 경우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피임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팔짝 뛰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반복할수록 아이들도 수긍하는 것인지 잔소리로 듣는 것인지 고개는 끄덕였다.

똑같은 대화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반복되었다. 혐오스럽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냈던 딸아이도 어느 정도 수긍하며 차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부탁은 언제나 똑같은 말이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 일만큼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아들은 피식 웃었다.
“엄마, 우리 집 가훈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결하자 인데 그것은 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해?”
“그건 네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네가 경제적인 여건을 갖추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졌을 때는 스스로 해결해야지!”
“그거 말하면 엄마가 키워줘?”
“아니, 엄마는 엄마 일해야 해서 못 키워줘!”
“그러면서 뭘.”
“꼭 키워줘야 답은 아니잖아. 순간 잘못된 판단이 너희 인생, 태어날 아이의 인생까지 나쁜 길로 갈 수도 있으니까 그걸 방지하자는 거지.”
“엄마 인제 그 말은 그만해도 될 것 같아. 이제 누가 여자 친구랑 잤다는 말만 해도 엄마 말이 생각나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벌써 그런 애들 있어?”
“동거하는 애들도 있는데 뭐! 성인이잖아.”
“아기 안 생기게 조심하라고 해라. 아직 학생인데….”
“그건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하여간 엄마는…. 이제 남의 애들까지 걱정이야?”
“그럼…. 당연하지. 날마다 얼굴 보던 놈들인데.”

남편이 서류 정리를 늦게까지 하는 날이었다. 서재에 있다가 일이 집중되지 않아 안방으로 들어갔다. TV는 혼자 떠들어대고 남편은 서류정리 하느라 내가 안방에 들어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마감 뉴스에 고정했다.
“화장실에서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영아 발견. 아직 살아 있어.”
“아이고 미친 것들. 책임지지 못할 것 같으면 낳지를 말든가. 능력이 없으면 피임이라도 제대로 하던가. 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애는 무슨 죄야.”
내 넋두리에 서류정리를 하던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마무리가 다 되었는지 서류철을 덮고 일어나 내 옆에 앉았다.
“엄마가 잡혔는데 인제 20살이라는데?”
“응? 봤어?”
“아까 9시 뉴스에서.”
“그럼 19살 때 임신했다는 이야기네. 어휴!”
“대학생이래.”
“한숨만 나온다. 아니 피임약 광고는 괜히 해? 왜 섹스는 할 생각하면서 피임할 생각은 못 해? 진짜 우리 애들이 저러고 다닐까 겁난다.”
“집에 말하면 줄초상 날 것 같으니 말은 못하고, 덜컥 임신은 했고….”
“열 달 동안 어떻게 숨겼을까? 그것보다 태어난 애가 정말 불쌍하다. 모성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엄마에게 뭘 느낄 수 있을까. 이건 사회 탓을 해야 하는 거야? 부모 탓을 해야 하는 거야?”
인터넷 기사에서도 자주 접하는 뉴스지만, 실제 TV로 봤을 때는 인터넷 문자 뉴스보다 더 심란한 생각이 들었다. 버려진 아이들, 버려져서 죽어간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생명이라도 지키고자 ‘베이비 박스’라는 것이 생겼을까. 태어난 아이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 그림=임솔빈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되었을 때, 사회적 통념이나 주변의 시선을 피해갈 수 있는 보호막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모가 그 보호막이 되어야 하지만, 덜컥 임신부터 해버린 아이들은 가장 두려운 것이 부모일 것이다. 사회적 시선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부모의 시선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는 너의 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적어도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의논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보다 더 쓴 씁쓸함이 목구멍을 타고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울지 않는 뻐꾸기. 모성애를 잃어버린 엄마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사회적 현상이라 생각하니 오늘은 커피 맛이 뚝 떨어진다. 커피보다 더 쓴 신물이 넘어오는 것 같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