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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인가 보수인가, 국민기본소득

[내 마음을 움직인 책(29)] 최태영(이진안신문 편집국장)


... 편집부 (2015-08-17 15: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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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부제: 생태적 전환과 해방을 위한 기본소득), 하승수 지음, 한티재 2015.

보수주의에 관한 빛나는 명언을 많이 남긴 정치이론가 마이클 오크소트는 거의 고전이 된 그의 에세이 「보수주의자에 관하여」(1956)에서 “나의 테마는 신념 혹은 정책이 아닌 기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보수주의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미지의 것보다는 친숙한 것을, 시도되지 않은 것보다는 시도된 것을, 신비로운 것보다는 사실을, 가능성보다는 현실을, 무한한 것보다는 제한된 것을, 멀리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남아도는 것보다 충분한 것을, 완벽한 것보다는 간편한 것을, 유토피아적 축복보다는 현재의 웃음을 선호해서이다.”

이 정의대로라면 내가 최근에 읽은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를 쓴 사람도, 심취해서 읽은 사람도, 최소한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최근, 아니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가 신앙처럼 믿어온 경제성장 제일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세계를 거의 끝까지 와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현실보다 가능성을, 시도된 것보다 시도되지 않은 것을, 간편한 것보다 완벽한 것을, 현재의 웃음보다 유토피아적 축복을… 추구하며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를 누가 어떻게 정의하거나 간에, 그 정의를 그냥 믿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나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고 또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보더라도 진보주의자란 반드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보거나 겪지 않았으되 역사에서 배웠고 인류 역사상 이미 주장되었거나 시행했거나 하던 것들을 ‘온고지신’하여 현대와 미래의 사회경제의 틀로 써보자는 것이니, 어찌 보면 진보적 생각이란 초(超)보수적 생각일 수도 있다. “어느 때, 어떤 주의[-ism]을 기준으로 보수냐 진보냐를 따질 것인가? 따지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경제체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수십 년 래의 관성의 결과인 엘리뜨 중심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사람끼리의 무한부당경쟁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끝없는 자원발굴, 자연파괴와 인간성 말살과 세대 간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열쇠로서 국민기본소득제를 제시하고 있다. 국민기본소득이란 말 그대로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소득으로 일정한 금액을 정부가 지급하는 제도다. 이는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므로 ‘일자리창출’ 정책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정책과도 다르다. 국가가 국민 모두의 기본적인 생활을 가능하도록 책임진다는 수준에서 가장 앞선 경제체제라는 주장이다. 그 예로써 석유 채굴권에서 오는 수익금을 주민 모두에게 배당하고 있는 미국 알라스카주, 덴마크의 높은 소득세 징수로 만들어내는 시민배당금 등을 들고 있다.

나 역시 임금소득을 얻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된 연령층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빼앗아오고 싶지 않다. 당장, 40대가 되어가는 내 아이들이 2년마다 고용계약을 다시 쓰면서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겨 다니는, ‘3포’가 아니라 ‘5포’세대에 속해 있지 아니한가. 이런 나 같은 사람이 기본소득제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힘있는 쪽에 빌붙어 한 자리 차지하고 늙어죽도록 그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고 갖은 추태를 다 드러내는 꼴도 보이기 싫다. 내 스스로 경쟁구도 속에 뛰어들어 새로운 업을 일으킬 능력도 없지만 이 역시 그러고 싶지 않다.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 보장돼 있다. 이런 사람도 우리 국민으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출판사 제공 책표지)

다시 한 번 보수냐 진보냐의 구분법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 역사 지식의 좁은 범위 안에서만도 우리나라(중국 등 포함하여 동양권으로 넓힌다면)에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것은 시도되지 않았던 일이 아니다. 균전법(均田法)이 그랬고 정전법(井田法)이 그랬다. 야사에서는 “근동 1백리 안에 굶는 집이 없게 하라” 한 경주 최부자의 지역경제론도 있었다. 더 오래된 과거(과거를 들먹인다고 반드시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초보수는 진보와도 통한다)의 예를 보면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이 있었고, 이 책에서 주장하듯 구약성서의 레위기도 토지의 사유화를 죄악시하고 있었다. 이런 아주 오래된 옛 일을 들먹이며 기본소득제를 찬성하는 나는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

기본소득제는 세계의 녹색당들이 당론으로 가지고 있는 경제정책이다. 나는 녹색당원이 아닌데 우연히 그 강연을 취재하느라고 참여한 적이 있었고, 저자의 이 책을 사게 되었다. 기본소득제의 내용에 대해서 이 글이 굳이 깊숙이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워낙 얇은 책이어서 누구나 싼 값에 살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쉽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마치 한 정당의 정책을 선전하는 듯한 글을 쓰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또는 로맨틱한 책만이 권장도서여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기본으로 가지며 후손들에게는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지, 늘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면 바로 이런 공부도 해야 하지 않을까. 환경론자도 교육학자도 연구를 거듭할수록 “기본소득제가 결론”이라는 쪽으로 수렴돼가고 있다 한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기본소득제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모두가 꿈으로 가지자”고만 하고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열정이 모자라거나 자신이 없는 걸까.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왕 밝히고 쓴 책이라면 더 당당히 이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정책이나 전략을 제시하며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지지를 호소했어야 했다. (최태영)

※ 전북교육신문은 독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내 마음을 움직인 책]을 연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