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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후회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35)] 설연화 / 시인·수필가


... 편집부 (2015-08-31 10: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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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꿈을 부모가 결정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부모의 잣대로 막아설 수 있을까. 이미 경험했기에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부모의 이기심이 아닐까. 내가 가고 싶지 않았던 길이기에 아이의 꿈을 막아선다면 그것은 사랑일까. 이기심일까. 지금 나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아들아이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유치원 때부터 축구공 하나면 울음도 멈추던 아들아이가 축구선수를 하겠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생각해보자는 말로 시간을 벌었으나 나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반대였다. 아들에게는 끈기와 노력이 부족한데 가능하겠냐는 의견부터 물었다. 아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운동하다가 보면 길러질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너는 항상 중요할 때 다치잖아?”
“태권도 할 때는 사범님이 중학생 형이랑 대련시켜서 그랬지!”
“합기도 할 때는?”
“그때는 욕심이 앞서서…. 그때도 초등학생 중에서는 나랑 대련할 수 있는 사람 없다고 고등학생 형이랑 했잖아!”
“그건 핑계일 뿐이잖아. 운동은 누구랑 시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 관리를 내가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것이고, 대련할 때도 무조건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잖아? 그런데 넌 일단 대련만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리해서 공격하니 부상당하는 것 맞잖아?”
“그러니까 격투기는 안 하고 축구선수 하면 그런 것은 걱정 안 해도 되잖아!”
“넌 이기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항상 무리해서 탈인데? 축구 경기라고 그 승리욕이 사라질까? 더군다나 개인이 아닌 팀이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하는 경기에서 너의 승리욕이 항상 문제가 될 텐데?”
“아직 안 해봤잖아!”
“무엇보다도 너는 조금만 힘들면 포기해 버리잖아. 그리고 그만둬야 할 이유를 찾고, 계속시키면 부상당하고….”
“그건….”
“일단 엄마도 더 생각해 볼게. 너도 신중하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엄마가 경험한 운동선수 생활은 만만한 것이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공 차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서 엄마는 반대하고 싶어. 기초 체력 단련이 일주일이면 공을 차는 것은 하루도 안 될 것이고, 그러면 넌 금세 그만하겠다고 이유를 만들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축구 선수인데 공은 왜 조금밖에 안 차요?”
“오랫동안 움직일 수 있으려면 그만큼 체력이 있어야 하니까. 엄마가 네 나이보다 한 살 어렸을 때 배구선수로 선발됐는데, 겨울에는 산악 훈련을 했어. 월명산보다 더 높은 산을 토끼뜀으로 뛰어 올라가고, 한사람이 다리 잡고, 팔로 걷는 것 알지? 그렇게 산에서 내려오는 훈련을 매일 다섯 시간씩 했었어. 그래야 체력도 길러지고 끈기도 생긴다며 우리를 담당하던 코치가 매일 야구방망이 들고 서서 하는 말이었어.”
“맞기도 했어?”
“배구는 팀워크라고 한 사람이 잘못하면 단체로 맞았지. 최고 야구방망이로 엉덩이 30대까지 맞은 적도 있었어. 그런데 배구선수 하지 않겠다는 말을 못했지. 인원이 딱 6명이라 한 사람이 그만두면 팀 전체가 해체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심하다.”
“그래, 그런 생활까지 견딜 수 있으면 축구선수 해도 좋아! 그러니까 우리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자!”
“응.”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아이는 수긍하는 듯했다. 그동안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을 배우느라 이곳저곳 학원을 바꿨다. 그만둔 이유는 조금씩 형태만 달랐을 뿐, 같은 상황이었다. 처음 배울 때는 신 나게 배우지만, 단을 따고 승단 시험을 앞두고 대련하면 언제나 부상이었다. 부상당하고 대련에서 이기면 운동을 계속 했지만, 대련에서 지면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경기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득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아이였다.


(그림=임솔빈)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학교 축구부 코치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를 축구부에 넣고 싶다는 설득이었다.
“어머니, 태훈이가 운동 신경이 보통이 넘어요. 아주 타고났어요. 그러니 축구를 시켜 보시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죄송한데 운동선수로는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요즘 누구나 좋아하고 있고, 인기 종목이라서 나중에도 괜찮은 직업이 될 거에요.”
“네, 인기 종목이라서 도전하는 사람도 많죠. 리틀 축구 선수단부터 시작해서 청소년 선수단 등 전국에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축구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죠. 그런데 거기에서 국가 대표가 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니, 프로 축구선수로 발탁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당연히 1%도 안 되겠죠?”
“그거야 그렇지만, 아이가 운동만 잘하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네, 가능하죠. 누군가는 프로로, 누군가는 국가 대표선수로 뛰고 있으니, 잘만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지금 운동선수들이 운동 잘한다고 모두 국가대표 되나요? 뒤에서 부모가 그만큼 지원하고 후원하고 신경 써도 될까 말까 하죠? 그런데 저희 집은 그만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태훈이가 월등하게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납니다. 제 생각에는 태훈이가 꿈만 버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너무 아까워서 그래요. 아이가 운동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타고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나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선수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7년 동안 했었죠.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면서 운동선수가 아니라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군 대표와 도 대표를 겸하고 있는 팀이었고, 저희 코치나 담당 선생님께서도 저에게 타고났다고 했죠. 그런데요. 다른 부모님처럼 저희 부모님은 여자가 무슨 운동선수냐며 지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반대했죠. 저도 운동이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운동할 때 지옥이었던 그 힘겨움이 떠올랐다. 코치 선생님도 나의 말을 기다리느라 긴 한숨을 내리 쉬고 있었다. 아마 그 선생님 또한 자신이 운동했던 과거를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그만두고 갑자기 공부하려니 아무것도 갖춰진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찌하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때는 4교시만 수업받고 나머지 시간은 운동하러 나가야 했거든요. 물론 아침에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등교해서 아침 운동을 했고요.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은데 기초가 없어서 힘들었다는 것이죠. 제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선생님, 이건 단순하게 운동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 인생이 걸린 이야기잖아요? 전 아이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부를 어느 순간에 놔버려서 그냥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전전한다 해도 운동은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아이가 축구선수로 욕심나서 그렇습니다.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태훈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 답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 뒤로 코치 선생님과, 축구 담당 선생님이 번갈아가며 전화했다. 모두 비슷한 말이었다. 그때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도 미련은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반대했기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다.

중학교 진학했을 때, 또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유도부 코치였다. 고등학교 때는 야구부 코치였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아들은 여전히 운동에 대한 미련을 끊어내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다. 아르바이트와 학교생활 하기에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었던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루 쉰다며 일찍 들어왔다. 그리고 약간 원망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가슴에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왜? 엄마가 밉다는 눈초리인데?”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좀….”
“근데 오늘 아르바이트 쉬어? 왜?”
“아, 엄마 알지 용준이라고…. 초등학교 때 같이 축구부 들었는데, 나는 엄마가 반대해서 안 했고, 용준이는 계속 축구선수로 활동했거든. 그 친구가 이번에 내려온데….”
“응? 어디 갔었는데?”
“프로 축구선수잖아.”
“그…. 그래?”
“이번에 청소년 국가대표에 뽑혀서 잠깐 집에 들렀다가 훈련 들어간다고 내려왔어.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했어.”
“으응. 그래서 엄마를 그런 눈초리로 봤구나?”
“아니야! 순간 엄마가 반대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나랑은 다르니까. 나야 지금 하고 있는 사회체육도 지겨워져서 학교만 아니면 진작 그만뒀을 텐데 뭐.”
“그래도…. 엄마가 반대 안 했으면 어찌 됐을지는 모르는 일이긴 해!”
때늦은 후회였다. 아들은 그날 밤새도록 들어오지 않았고, 다음날 조금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등교했다.

명절 때 인사 오는 아들 친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들아이의 삶의 전환점의 선택을 내가 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차라리 운동선수가 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할지라도 시작이라도 했다면 아들은 진작 미련을 떨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내가 아들 친구를 볼 때마다 아들에게 미안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일에서 사람 관계까지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많은 선택 속에서 어떤 선택이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그리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지는 살아봐야 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선택이 오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이 모여 오늘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느 한 가지의 선택이 답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선택 중에 가장 커다란 방향 전환을 줄 수 있는 선택에서 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 선택은 아이 몫이어야 했다. 나의 경험이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과 꿈, 그리고 의지가 중요한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올해도 친구가 청소년국가대표에 선발됐다며 아들아이가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또 한 번 마음 한 편이 아파져 오는 것을 느낀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실수가 아이의 삶을 바꿔 버린 것 같은 씁쓸함이었다. 꿈을 잃어버린 아이가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을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시낭송가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