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접속 일지, 리눅스와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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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신문】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4년, 전주컴퓨터학원을 다니며 베이직 언어를 배웠다. 6년 동안 세뱃돈을 꾸준히 모아 저축한 돈으로 8비트 애플 컴퓨터를 구매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내 직업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었다.

나의 직업을 전북교육신문 기자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지만, 그것은 미디어 시민운동으로 하는 활동이고, 본래 직업은 소프트웨어도 개발하고 책도 만들고 홍보 기획 일도 하는 1인 기업 사장? 아니, 그냥 '자유직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목받은 선거 솔루션 '아리미' 개발자로서 정치하시는 분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 '아리미'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고, 그 결과로 하루벌이를 조금 벗어나 2019년부터 시작한 '전북로컬포털 아리'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전북을 기반으로 포털과 SNS를 결합한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전북을 바꿔보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해, 포기하지 못해 계속하는 프로젝트다.

왜 이런 걸 만드냐고? 나와 같은 자유직 노동자, AI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젊은 청년들, 조직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의 불안한 미래를 위해 무언가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도전이다.

그 도전의 뿌리는 꽤 오래됐다.

2008년, 처음으로 교육감 선거에 깊이 관여했다. 도전은 실패했지만, 성공하게 되면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리눅스 교육을 활성화하고, 각 학교마다 학생인권위원회를 만들어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일조하고 싶어서였다.

그것이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문용주 교육감 시절, 전북교육청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윈도우즈 NT 서버로 운영되던 전북 모든 학교의 웹서버를 리눅스 OS로 전환한 적이 있었다. 이후 윈도우즈 NT 서버만을 노리던 코드레드 바이러스 사태에서 전북의 학교만 무사했던 사례가 그 증거였다.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2010년 교육감 선거 패배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전주 지역 민간 컴퓨터 방과후 업체 사장님의 도움으로, 소속 컴퓨터 방과후 선생님들을 한자리에 모아 리눅스 교육의 필요성과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 시도조차 김승환 교육감이 민간 방과후 컴퓨터 업체들을 학교에서 퇴출시켜버리는 바람에 좌절되고 말았다.

만약 2008년부터 초등학교에서 리눅스 교육을 실시했더라면, AI 시대를 맞이하는 전북은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1984년 열두 살 아이가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며, 세뱃돈을 모아 컴퓨터 앞에 앉았던 그 마음으로, 오늘도 전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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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근 2026-05-05 06:06
멋져요~~~ 임창현기자님... 성공적인 발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