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늘을 나는 새는 양쪽날개로 날지만 언론은 새가 아니다. 앵무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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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교육신문】​“A 측은 이러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B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우리가 뉴스를 접하면서 자주보는 익숙한 패턴이다. 마치 공정하게 양쪽의 말을 모두 실은 듯하지만, 정작 독자가 궁금한 것은 빠져 있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조금만 확인해보면 알 수 있는 단순한 사실조차 ‘양측의 주장’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문서 하나, 녹취 파일 하나, 현장취재를 통해 확인하면 분명해질 수 있지만 기계적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양비론’ 또는 ‘사실상 방관’이라는 길을 선택한다. 진실보다 균형이, 확인보다 신속이, 취재보다 발표 인용이 우선시 된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도 정확해야 한다. 거짓을 말하는 이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인용하는 순간, 기사를 쓰는 이도 그 거짓의 공범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보통 한국의 언론사들 대부분은 양측의 주장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쳐, 독자들이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반면, 심층적인 팩트체크와 탐사보도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 언론사도 있다. 주장이 엇갈릴 경우, 물리적 증거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어느 쪽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조금만 확인해보면 거짓으로 드러날 주장까지 확인 없이 ‘양쪽 입장’이라며 보도해서는 안된다. 어느 쪽의 주장이 왜 왜곡되었는지, 기자가 확인한 근거는 무엇인지 서술해야 한다.

그렇게 취재를 통해 진실을 보도해도 거짓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항의와 괴롭힘은 감수하는 일은 쉽지는 않다. 항의가 들어오면 ‘기사에 사실이 아닌 부분을 지적해달라’,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반론권 충분히 보장하겠다. 하지만 당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분명하게 취재해서 보도할 것’이라고 말하면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분명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거짓과 진실이 똑같이 다뤄지는 보도가 쌓이면, 결국 언론은 공공의 신뢰를 잃고, 사회는 정보의 혼란 속에 휘청인다.​ 기계적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언론이 중립을 지키려면, 먼저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그 진실 위에서 공정하게 서야 한다. 양쪽을 실었다고 해서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데까지 가야 언론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잘못이 기자들의 책임일까? 한국의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기사를 쏟아내야 하고, 클릭 수 압박 속에 진실을 확인할 시간도, 여유도 갖기 어렵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환경과 취재 문화, 그리고 편집권 독립이 취약한 구조는 진실을 향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훼손하게 만든다.

언론이 단순히 ‘정보 생산자’가 아닌, 사회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특정 주제에 깊이 있게 접근하고 팩트체크와 장기 기획 보도에 시간 투입 허용되어 한다. 편집권 독립 보장과 광고·경영 부서와 보도라인 분리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광고에만 의존하지 않는 독립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정 주제나 탐사보도를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언론조합 형태를 통해 조합원들의 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언론사 운영이 대안이 될수 있다.

결국, 이러한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자들과의 신뢰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신뢰성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며 조직화된 집단 이기주의 세력들과 충돌도 각오해야 얻어질수 있다. 힘든 싸움에서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 한 사람, 하나의 언론사만의 노력으로 쉬운일은 아니다. 아이러니 하게 이러한 언론을 지켜내기 위한 것도 결국은 많은 사람들의 조직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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