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4-05-03 23:56:42

목련이 피었다

[홍순천의 ‘땅 다지기’(23)] 진안 봉곡마을


... 편집부 (2017-04-05 10:37:32)

IMG
(그림=홍순천)

며칠 동안 따뜻한 햇살이 마당에 머무시더니, 오늘은 촉촉한 비가 봄을 부른다. 박새부부는 새벽부터 바쁘다. 작은 부리로 둥지를 다듬는 소리에 가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그리운 사람이 있어서일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몸이 먼저 들썩거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편지를 읽고,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겠다는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을 그리워하며 꿈을 키우던 소년 시절 사월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나를 꼬드겼다.

봄에 만나는 그윽하고 아름다운 목련꽃은 가슴을 뛰게 했다. 목련은 아름다운 부활의 기적을 어김없이 지켰다. 2014년 4월 25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목련 한그루를 들고 왔다. 백악관 뜰에 있던 것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미국인들의 연민을 담아 '단원고'에 심었다. 올 봄, 그 목련이 꽃을 피웠다고 한다. "목련은 아름다운 부활"이라는 그의 말처럼 피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시간을 돌아 목포항에 도착한 세월호는 또 다른 미지의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꽃처럼 피어난 세상이 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온갖 비바람을 더 견뎌내야 하지만, 봄은 기어이 깊고 거친 바다 같은 겨울을 박차고 떠올라 우리 곁에 왔다.

유대인들은 이맘때 파스카(Pascha) 축제를 벌인다. 유대교의 3대 기념일 중 하나인 유월절(逾越節)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를 벗어난 날을 잊지 말자는 이 축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독립기념일이다. 축제 기간에는 반드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만들어 먹는다. 이 빵을 파스카 혹은 '마짜'라 부른다. 이집트를 급하게 탈출하다 보니 발효된 빵을 만들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마짜를 먹으며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한다. 미래를 온전하고 아름답게 지키기 위한 현명하고 바람직한 전통이다.

우리에게도 치욕스럽고 아픈 36년이 있다. 그 상처는 빨리 치유해야 마땅했다. 불행하게도 욕심 많은 사람들이 깊이 박힌 가시처럼 파고드는 상처를 모른 척 했다. 일제 부역자들을 용인한 비겁한 권력욕이 문제였다. 권력자들의 욕망은 우리의 오장육부에 가시를 더 깊게 박았다.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만한 상처는 빨리 치료해야 했다.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지만 오랫동안 남는 고통을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가시를 뽑지 않으면 영원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잠시 두려운 상처가 생겨도 세월이 지나면 치료된다. 원인은 제거하지 않고 진통제만 먹는 어리석은 일은 더 이상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박새부부는 주방 위 환기구에 둥지를 틀었다. 이제 곧 조팝이 꽃을 피우면 함께 날아다닐 벌레들을 기다리며 새집을 꾸미는 중이다. 날이 밝자마다 연신 검불을 주워 둥지를 다듬는 그들의 노고를 방해할 수 없어, 마당에 나가기가 조심스럽다. 집에 기대 신혼집을 꾸미는 박새부부를 함부로 쫒아낼 수는 없다. 그들의 고운 사랑을 곁눈질로라도 나누자는 욕심의 반증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용기를 얻는다. 몸을 뒤척이며 바다로 가는 강물은 많은 것을 품고 있지만 더 큰 바다를 그리워한다. 지나친 욕심으로 큰 풍파를 일으킨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요즘, 지긋지긋하고 분통 터지는 기다림이 끝나 후련하지만 안타깝고 씁쓸한 뒷맛이 겹쳐진다.

목련이 피자 세월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목포항에 앉았다. 뱃길보다는 꿈처럼 하늘로 날아오를지도 모르겠다.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하늘로 날아오르실 세월호의 아이들과, 부모들의 고통이 목련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르시길 비는 봄이다.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실 그 꿈과 사랑을 위해 두 손 모은다. 아름다운 봄이다. 꽃이 피었다.


▲목련은 아름답게 부활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