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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바람의 화가 류재현 개인전

‘숲, 시간의 기억’...우진문화공간 4월20~25일


... 문수현 (2017-04-14 13: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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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류재현(사진)의 개인전 ‘숲, 시간의 기억’전이 전주 진북동 우진문화공간에서 20~25일 열린다. 앞서 12~17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같은 전시가 열렸다.

류재현 작가는 숲을 그리고 풍경을 그린다. 하지만 그것의 형상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흩날리는 나무이파리를 통해 빛을 그리고, 흔들리는 풀이파리를 통해서 바람을 그린다. 빛과 바람을 통해서 끝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생명이다.

그런 그도 지난 2002년 무렵까지 15년쯤을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했다.

그는 대학시절엔 사회적 현상들에 대한 반감과 저항의식을 길을 통해 표현했다. 평면에 노란 중앙 분리선을 그어 길을 암시하고, 그 위에 온갖 쓰레기들이 굴러다니는 이미지를 그렸다.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던 그가 초기 미술교사 시절 어린 제자를 사고로 잃은 슬픔과 충격도 그렇게 죽음의 이미지와 길을 등치시키는 데 작용했다. 까만 아스팔트길을 네거티브(사진 용어)로 표현하는가 하면, 길 가운데 사슴, 염소, 꽃 같은 생명체들을 매우 위태롭게 세워놓기도 했다.

작가가 숲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04~2005년부터다. 숲은 처음엔 아주 어두웠다. 숲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 숲 오솔길에 아스팔트의 이미지를 겹쳐놓기도 했다. 그로부터 4~5년이 더 지나 2008~2009년 이후 그의 그림은 밝아졌다.

작가는 “옛날에 죽음과 절망을 얘기했다면 지금은 삶과 생명과 희망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빛은 생명과 희망을 상징한다. 바람 또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곧 생명의 역동성을 뜻한다. 류재현 작가가 이런 빛과 바람을 그리는 방법이 독특하다. 유화물감을 사용하되 동양화·한국화의 기법을 쓴다.


▲ROAD201609 65.0×116.7cm OIL on canvas(이하 작품사진은 전시도록에서 복사)

“빛과 바람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아무 힘도 없는 세필, 한국화용 모필로 그립니다. 캔버스의 밑 색을 검정으로 칠하고[‘하얀 여백’에 대비해 ‘까만 여백’이라고 해왔다] 거기에서 밝은 색깔을 빼내는데, 물감을 두껍게 바르면 한 번만 발라도 밝은 색이 나오지만 저는 모필로 그리기 때문에 물감이 두껍게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유화물감을 아주 묽게 해서 일획적인 선으로 칠하고 또 칠하고 한 단계씩 계속 명암을 높여갑니다. 그게 숲의 가장 깊고 어두운 데서부터 차곡차곡 쌓여 올라오는[積] 거예요.”

그러다 보니 “류재현이 숲길에 공들이는 노력이나 자세는 구도자처럼 처연하고 진지하다”는 미술평론가 김선태씨의 말대로, 그의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열심인 그도 작품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보통 한 달을 넘게 들인다. 작가는 그런 자신이 “조금 미련해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제가 자연 속에서 받은 느낌을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한다.

그런 노력 때문에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다. 하지만 그는 일부에서 자신의 그림을 극사실주의로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못 보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ROAD201609 33.4×53.0cm OIL on canvas
▲ROAD201606 60.6×90.9cm OIL on canvas

“일단 눈으로 보면 굉장히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경향[내용]이 다르고 기법 자체도 달라요.”

극사실주의 그림은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시각적 혼돈을 일으킨다. 관점이나 개성도 철저히 배제한다. 반면 류 작가의 풍경화는 툭툭 던지는 듯하면서도 정교하게 쌓아가는 붓질, 자신의 감성을 짙게 반영한 풍경 등이 개성적이다.

류재현은 작가노트에서 “겹치고 중첩되는 붓질은 숲길 속에 쌓여진 생명들의 시간들이며, 그것은 바로 숲과 바람과 빛을 통하여 내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자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숲을 통해 받은 감명을 그대로 통째로 자신의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미련한 몸짓이다”라고 말한다.

2015년 ‘파리 필립즐로 갤러리 초대전’에서 필립 즐로 관장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유화이면서도 그 기저에 한국 전통 서화의 특징을 보이는 류재현 작가의 작품을 유럽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작가는 형태뿐 아니라 그리는 과정에서도 놀랍도록 정확하고 복잡하며 풍부하고도 순수한 자연성을 간직한 회화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ROAD201601 97.0×162.2cm OIL on canvas

이번 전시회 도록에서 류재현 작가는 2015년 개인전에 실은 노해남 화가의 서문도 소개했다. 서양화가 노해남씨는 작가의 82학번 동기이자 30여년 지기지우다.

“류재현의 기법 자체는 서양의 전통적인 유화기법을 따르면서도 그 필획은 진경산수의 대가들처럼 정확하고 유려하다. 서양의 자연주의 화가들이나 표현주의 화가들처럼 두터운 물감의 중량감이나 투박한 붓터치가 거의 없이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풍성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그 공간을 창조해내는 붓의 미려하면서도 치밀한 반복성은 인내와 더불어 노련한 경지를 느끼게 한다.”

또 “어둠에서 광명으로, 빛을 향한 집요한 그의 여정은 여느 자연주의 화가들의 유물적 사고와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그의 구도자와 같은 고난의 붓질과 빛으로 화한 아름다운 숲에서 자연의 신비와 더불어 평온한 안식을 얻는다”고 했다.

작가가 관객에서 전달하고 싶은 바도 그렇다. 자신의 작품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저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일상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느끼고 공감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ROAD201701 50.0×72.7cm OIL on canvas

작가에게 물었다. 좋은 작품이란 무엇입니까?

“좋은 작품이란 작가를 닮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속에서 작가가 보이고 그 작가 속에서 그 작품이 보일 때 그 작품이 좋다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작품에 수준이 있겠죠. 사람도 그 사람의 능력의 크기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평가는 나는 못해요. 작가를 닮은 작품이 너무 좋다는 것 말고는.”

류재현 작가는 전북대 미술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직후부터 27년 동안 여러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있으면서 꾸준히 여러 단체전에 참가하는 등 붓을 놓지 않았다.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명예퇴직했고 2008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2010년과 2012년 전주 서신갤러리, 2013년 파리 89갤러리와 서울 통인옥션갤러리, 2015년 파리 필립즐로갤러리와 서울 가나아트스페이스 등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다.


▲ROAD201702 33.4×53.0cm OIL on canvas
▲ROAD201608 33.4×53.0cm 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