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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홍순천의 ‘땅 다지기’(27)] 진안 봉곡마을


... 편집부 (2017-05-17 13: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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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홍순천)

마당가에 살고 있는 작약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직도 서늘한 아침 공기에 이슬이 맺힌 포도송이는 새끼손톱만한 몸피를 불리느라 분주하다. 오월이 되자 숲 가장자리에서 꾀꼬리가 분주하다. 파랑새도 소란스런 목소리를 보태는 오월은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어린 시절, 달동네 초가집 좁은 마당에서 맞이했던 오월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호사다.

종달새가 보리밭 위 까마득한 하늘에 머물며 종알대던 그 시절, 가끔 파랑새를 노래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뜻도 의미도 모르던 그 노래는 어른들의 입으로부터 전해졌다. 나이 들어 그 노랫말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게 되어서야 그 슬픈 역사에 분노했다. 오월은 아름답지만 슬픈 시절이다. 온갖 역사의 질곡이 사월 오월에 유독 많았다. 잔인한 계절, 겨울을 건너온 칼바람이 비수로 꽂히는 계절이다.

파랑새는 녹두새라고 했다. 파랑새는 팔왕(八王)새라고도 했다. 팔왕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성, 전(全)의 파자(破字)다. 파랑새는 전봉준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흰 눈이 내리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는 민중들의 애정 어린 신호였다. 결국 죽음에 이른 녹두장군을 애도하는 그 노래는 내 어린 시절까지 관통했다.

빡빡머리에 까만 교복을 입어야했던 고등학교 무렵은 청춘이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관제데모가 끊이지 않고 총검술과 수류탄 던지기 경연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던 그 시절에 청청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태어나서부터 그 시절까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다. 세상은 곧 망가질 듯 요동쳤고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그땐 그것이 당연한줄 알았다. 그 틈을 타서 끔찍한 일이 또 벌어졌다. 5.18이었다.

부도덕한 대통령의 유고를 틈타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사람들의 시선을 광주로 돌렸다. 실상 신문과 언론에서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정부는 이에 잘 대처해서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는 얘기만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세상이 밝아지자 그 불순한 의도와 말도 안 되는 폭력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자기 국민을 향해 헬기를 띄워 무차별 사격을 했다는 증언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아직도 전해지는 얘기다. 여전히 "나는 모른다."는 오리발을 내미는 '전씨'는 녹두장군과는 다른 성, 다른 씨인 듯하다.

그 씨를 받은 정권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마저 금했다.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숨죽여 불렀던 이 노래는 울분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억울하지만 짓눌려 있었던 슬픈 역사를 반영하는 노래였다. 광주시민에게는 더없이 당당하고 자랑스런 노래다. 광주에 대한 부채감을, 그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고래고래 질러대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노래마저 못 부르게 한 정권을 지났다. 이제 당장, 광주에서 이 노래를 제창할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이 바뀐 지 며칠만의 변화다. 숨통이 트이고 희망이 보인다.

파랑새는 오월이 되자 다시 찾아왔다. 모진 역사의 칼날을 견뎌내고 다시 오월을 노래하고 있다. 짝짓기에 열중한 파랑새의 노래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자연스럽고 빠르게 번졌다. 군사정권은 유포와 제창을 금지했다. 입으로만 전해지다 보니 가사와 가락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가사는 대한민국의 공식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념식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된 바 있는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는 2017년 오월이다. 파랑새는 왔다. 푸른 숲 사이에 둥지를 틀고 무사히 새끼를 키워 둥지를 떠나길 빈다.


▲파랑새 노래에 작약은 꽃잎을 열었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