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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샬롯츠빌 사태와 한국의 보수우익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구중서(평화바람 활동가)


... 편집부 (2017-08-21 1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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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중서)

샬롯츠빌(Charlottesville)사태의 진행과 발단

2017년 8월 12일 미국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에서 남부연맹(남부연합)¹⁾깃발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와 이를 반대하는 시위대 간의 충돌로 3명(민간인1명, 경찰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되고, 연행되는 샬롯츠빌 사태가 발생하였다.

몇 가지 사건이 이번 샬롯츠빌 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다. 지난 2015년 찰스턴 교회 테러 사건²⁾후 미국 전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부연맹의 상징적인 인물들의 조형물들을 철거하자는 운동과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 일환으로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 시 정부가 해방 공원(Emancipation Park)에 세워져 있던 남부연합의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해방 공원이란 이름 역시도 원래는 ‘리 공원’에서 바뀐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자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백인 민족주의자, 이른바 ‘대안 우익’이라 불리는 세력들이 철거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해, 이미 5월에도 ‘리 공원을 되찾자’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횃불시위가 벌어졌고, 그에 맞선 시민들의 촛불 시위도 동시에 일어났다. 7월 8일에도 미국의 대표적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단이 시위를 벌였으나, 천여 명의 반대 시민들에 가로막혔던 적이 있다.

백인 극우조직들은 방학을 맞은 버지니아대학에서 총집결해 ‘우파여 단결하라(Unite the Right)’라는 제목의 대대적인 동상 철거 반대 시위를 열기로 했다. 물리적인 충돌을 우려한 대학 측과 지역 시민단체, 종교계, 재계가 모두 나서 시위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 정부와 의회, 지방경찰국은 시위 장소를 인근 맥킨타이어 공원으로 옮기면 시위를 허용해주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극우파 시위 주최 측은 거부하고 법원에 집회금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예정된 시위 하루 전날인 8월 11일, 법원은 시위 금지가 공공의 안전 때문이 아니라 시위 주최자들의 정치적 견해를 근거로 한 것이기에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고 보고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긴급 가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8월 11일 금요일 저녁부터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속속 집결하고, 그에 반대하는 시민 시위대도 모여들면서 샬롯츠시는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양측 시위대간의 충돌이 발생하자 경찰은 집회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시위대 해산을 요구했다. 다음날인 8월 12일, 양측이 해방공원에 모여들면서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되었다. 남부연맹 깃발을 흔들며 공격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에 맞서, 항의 시위대들 중 일부, 특히 Antifa(반 파시스트 운동)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양측 사이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버지니아 주는 공공장소에서 무기 휴대가 가능한 주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반자동 소총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도 많이 목격됨에 따라, 주는 오전 11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예정된 12시 집회 시작 직전에 경찰의 해산 요구 후 그로부터 약 2시간 뒤 오하이오에서 온 20세의 제임스 알렉스 필즈 주니어라는 청년이 차량을 몰고 항의 시위대 안으로 돌진, 헤더 헤이어라는 32세 여성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19명 부상당했으며, 경찰헬기가 추락해 경찰관 2명이 사망했다.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주의와 한국의 보수정치

샬롯츠빌 사태는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의 징후들을 보면 예견된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버지니아 주정부의 책임도 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시위대 양측을 분리시키고 않았고, 이로 인해 폭력사태로 발전했다는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 또한 문제다. 트럼프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한 날 휴양지인 뉴저지에서 “우리는 극악한 증오와 편협함, 폭력을 드러내는 이 모든 행동들을 가장 강력한 단어로 비난한다”고 하면서도, 그런 행동의 주체를 “많은 측면의 사람들(on many sides)”이라고 지목함으로써 마치 백인 우월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종주의에 항의하던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사태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해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시민들과 언론 뿐 아니라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이 커지자 그는 14일 백악관에서 “인종주의는 악이다. 그리고 인종주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야기한 사람들은 범죄자요 악당이며, 미국인인 우리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혐오하는 KKK와 신나치,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비롯한 증오 집단들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발언으로 문제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인 15일, 다시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들 앞에 선 트럼프는 자신의 12일 발언을 옹호하며 “양측 모두를 비난한다”는 양비론을 폈고, “(시위대) 모두가 신나치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아무리 넓게 보아도 그들 모두가 백인 우월주의자인 것은 아니다”라고 인종주의 시위대를 옹호했다. 또 남부연맹 상징물들을 철거하는 것을 가리켜 “역사를 바꾸는 행위”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아주 아주 폭력적이었다...대안 좌파들이”라고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전가했다.

이런 트럼프의 태도에 대해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와 인텔, 3M의 CEO들이 정부 산하 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미 재계도 강력 반발했다. 재계가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미국의 인구 구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현재 백인 인구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0% 초반대로, 갈수록 백인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유색인종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즉 전체 인구를 상대로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편협한 인종주의에 단호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 수요일(현지시간) 수천 명의 군중이 버지니아대학교 캠퍼스에 모였다. 이들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저지른 대규모 폭력시위에 항의해 이날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출처=www.nytimes.com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의 배경에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등의 발언이 한몫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로서 적절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토마스 제퍼슨은 과거 독립선언에서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모든 인간은 동일하며, 동일한 권리, 즉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 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에게 이미 부여한 기본 권리)라고 했다. 트럼프는 독립선언을 부정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는 분명 인류발전과 평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거 독일의 히틀러가 아리안계 백인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고, 자신의 권력 창출을 위해 유대인과 집시, 공산주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 권력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밑천으로 사용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측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태극기집회) 간의 집회가 서울에서 연일 있었고, 헌재의 발표가 있던 날에는 4명이 사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작금의 트럼프, 박근혜의 정치 형태와 히틀러의 정치의 기본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지도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고 자신들의 힘을 축적하는 방법, 인종주의 혹은 반공주의라는 극단적 이념 이데올로기를 형성해 힘을 규합하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사회가 한층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총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 차별이 아닌 차이라는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1. 남부연맹: 1861년 미연방에서 7개(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주가 미 연방을 탈퇴결성, 대통령으로 제퍼슨 데이비스를 선출했고 부통령은 알렉산더 스티븐슨이 선출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추가로 버지니아,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가 주가 연방을 탈퇴하여 남부연맹에 가세했다.

2. 찰스턴 교회 테러 사건 : 2015년 6월 딜런 루프라는 당시 21세의 백인이 인종 혐오 감정으로, 흑인이 주로 다니는 교회에 들어가 벌인 무차별 총기 난사로 9명이 사망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