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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떼리’ 공장

[홍순천의 ‘땅 다지기’(38)] 진안 봉곡마을


... 편집부 (2017-10-18 20: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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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홍순천)

가을이면 긴팔 옷만큼이나 그리운 어린 시절의 초가집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자리끼를 떠 머리맡에 두고 좁은 방, 구석엔 요강을 들여놓고야 밤을 맞이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육남매를 키우던 코 시린 단칸방엔 늘 아버지의 고향 후배들이 찾아왔고, 피난시절 겪는 삶의 신산함이 담배연기보다 더 진하게 두런두런 방안을 채웠다. 아버지는 당시 흔하지 않던 라디오를 밤마다 끼고 살았다. 귀뚜라미의 신호음처럼 날아오는 온갖 전파가 잡히는 트랜지스터라디오는 제 몸보다 더 큰 '빠떼리'를 굵은 고무줄에 매달고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귀뚜라미도 노래를 그친 상강(霜降)무렵, 낯선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던 라디오에서 아버지는 어떤 소리를 듣고 싶었을까?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출근을 하는 아내의 자동차 불빛이 금방 사라지듯, 아버지의 욕망이 무엇인지 눈치 챌 수 없던 시절엔 하염없이 신호를 내보내는 라디오에 귀를 맡기다가 잠든 날이 많았다. '전설 따라 삼천리'와 '한 많은 대동강'을 듣다가 까무룩 잠들 무렵 우연히 맞은 주파수를 타고 특유의 고성으로 중국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순간에 나오는 괴상한 신호음들은 순식간에 나를 우주공간으로 내동댕이쳤다. 먼 나라를 상상하고,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유체이탈은 꿈속으로 이어졌다.

당시의 초기배터리는 덩치가 컸다. 탄소가루에 아연판을 댄 덩어리를 여러 개 겹쳐야 했으니, 배보다 배꼽이 큰 형상으로 배터리는 지빠귀에게 매달리는 뻐꾸기 새끼처럼 라디오 배 밖에서 몸을 떼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도 성능이 좋지 않은 탓에 라디오와는 곧 이별해야 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폐기된 배터리는 그냥 버려지지 않았다. 경원선 철길이 지나가는 건널목 근처에는 '빠떼리' 공장이 있었다. 탄소덩어리에 붙어있는 아연판을 망치로 두들겨 패서 분리해 재활용하는 곳이다.

'빠떼리' 공장은 늘 거무튀튀했다. 스무살도 안 된 누이들은 콧구멍 언저리가 까매져서 돌아왔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린 누이들도 피해갈 수 없는 과제였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막내의 눈에는 그저 지나가는 풍경이었지만, 하루 종일 아연판을 두드리며 탄소가루를 뒤집어써야 했던 누이들의 꽃다운 청춘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부모님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이들의 잘못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수상한 세월을 만난 운명이었다. 벌판에 무리지어 서서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누이며 서로를 의지해 한 시절을 버텨야 하는 갈대 같은 팔자였다. 칠순이 된 누이들은 갈대처럼 늙어가고 이순(耳順)이 된 나는 아직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유체이탈 화법을 쓰던 전직 대통령은 몇 개월 만에 감옥으로부터의 투쟁을 선언했다.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으니 재판을 거부하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옹골진 포부다. 우주의 신호를 간파했거나, 라디오를 통해 신호를 보내온 외계인과 소통한 결과라 여겨질 만한 발언이다. 진화하는 유체이탈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누이들보다 더 폐쇄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는 분명 투사 아니면 바보다. '빠떼리' 공장에서 일하던 누이들에게 다시 망치를 쥐어주고 싶다. 건더기는 없어도 반면교사로는 재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귀뚜라미도 신호를 접었지만 라디오는 아직도 내게 신호를 보낸다. 스마트smart하게 내장된 배터리는 쉴 새 없이 정보를 주고 노래를 들려준다. 목소리 좋은 진행자들의 입담도 좋다. 가을밤을 외롭지 않게 하는 친구다. 무엇보다 라디오는 손과 발, 눈과 귀를 구속하지 않아서 좋다. 자유롭게 유체이탈하고 관심 없으면 듣지 않아도 된다. 올바르고 편안한 소리만 듣고 살 수는 없지만 꿈을 찾아 주파수를 맞추던 아버지의 라디오가 훨씬 더 자유로웠다. 유용한 정보도 좋지만 감성을 건드리는 신호에 마음이 더 끌리는 가을이다.


▲제자리를 찾아 가는 가을, 골 붉은 감잎이 골목길에 쌓인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