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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의학콘서트 ‘낙태’ : 진짜 죄는 낙태‘죄’다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박슬기(산부인과 전문의, 페미의학수다 ‘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자)


... 편집부 (2018-02-04 18: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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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슬기)

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국민 청원이 23만명을 넘어섰고, 이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개답변을 한 지도 두 달이 꼬박 지났다. 그러나 한시를 다투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이 답변 이후 낙태죄 논의는 주춤해졌다. 여전히 어떠한 해결도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다. 이것이 ‘페미 의학 수다’를 모토로 한 ‘언니들의 병원놀이’가 지난 1월 27일 토크콘서트 <낙태>를 기획한 이유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잘 알고, 이로 인해 자신의 삶을 진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 ‘언니들의 병원놀이’는 이렇게 여성의 삶을 사는 의사로서의 내 고민과, 이에 공감하는 활동가들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으로 세 번째를 맞는 ‘페미 의학 콘서트’는 <낙태>라는 주제로 인해 시작부터 중년 남성의 난입과 폭력적 위협을 마주했고, 결국 경찰이 와서야 소동이 일단락되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방적 위협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더욱 이 문제를 분명한 목소리로 말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아닐까.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형법 제 269조에는 ‘낙태죄’가 명시되어 있다.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모자보건법, 의료법 등이 아닌 ‘처벌을 위한’ 형법이라는 것에서부터 낙태에 대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은 1953년 제정되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줄곧 낙태금지 국가였다. 하지만 과거 ‘애 안 낳는 것이 애국’이었던 시절에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 아래 ‘낙태 버스’가 마을 곳곳마다 운영되었으며, 당시 가임여성의 35%가 낙태를 한 번 이상 경험하였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낙태는 공공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임여성 지도’가 배포되고, 낙태는 ‘갑자기’ 죄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가 여성의 몸을 정책에 따라 ‘출산의 도구’로서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진짜 죄는 낙태‘죄’

지난 11월 발표된 박명배 배제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매년 50만 건의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보건복지부 발표와 달리 지난 9년간 감소 없이 동일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죄’라고 불림으로 인해 발생되는 폐해는 심각하다. 같은 낙태 시술을 받았음에도 과거 정부 주도의 ‘애국’이었을 때와 달리, ‘죄의식’이 의도적으로 강화됨으로 인해 여성들이 겪는 상처는 트라우마에 가깝다. 인터넷 상에는 소위 ‘낙태증후군’이라고 불리는, 낙태 시술 이후 죄책감으로 인해 반복되는 악몽과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는 상담 사례가 숱하게 존재한다. 또한 이것을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재 낙태 시술을 위해서는 반드시 남성(남자친구 혹은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을 빌미로 이별 이후 앙심을 품거나, 이혼 소송 시 불리해졌을 때 남성 측에서 여성을 고발하겠다며 협박하는 것이다.

‘부녀’만이 처벌 받지만 낙태 시술에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상한 법. 낙태에 대한 여성의 ‘독박 책임’은 비단 법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낙인’찍힌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여성으로 쉽게 규정된다. 하지만 이는 실제 낙태 사례 중 기혼여성이 절반 이상이라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며, 여성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하고 마지막으로 낙태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모든 상황을 삭제해 버린, 더욱이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혐오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성윤리 아닌 성교육이 문제

“내가 그때 상대에게 콘돔을 끼라고 말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교육의 총결과였다(경향신문, 낙태경험여성 인터뷰 중)”는 말은 토크콘서트 내내 가슴을 짓눌렀다. 우리 사회에서는 피임조차 여성의 책임으로 인식되는 반면, 정작 이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은 몹시 미미하다. 이에 반해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십대 때부터 남녀 모두에게 피임법을 비롯한 실질적인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겪은 여성에게도 충분한 상담과 국가적 지원을 다 한다. 낙태 유무에 대한 최종 결정은 여성의 선택으로 온전히 열려 있지만, 모든 선택에 대한 기회가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 이토록 ‘성적으로 문란한’ 두 국가에서 낙태율은 각각 1000명당 7명, 9명에 이를 정도로 매우 낮다.

건강할 권리를

낙태가 ‘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보다 극명한 문제는 바로 건강에의 위협이다. WHO(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매년 세계적으로 불법적인 낙태 시술로 인해 8만 명 이상의 산모가 사망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 요구의 상징이 된 ‘검은 시위’는 이렇듯 불법 낙태로 인해 죽어간 여성들의 존재를 기억하라는 외침이다.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도 모성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은 당연하다. 음성적인 낙태 시술이 횡행하는 만큼 부작용이나 합병증에 대해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고, 중국 등 해외원정 시술을 받다가 사망한 경우마저 있었다.

더욱이 강간 등 예외조항으로 낙태가 허용된 사례에서마저, 여성이 스스로 강간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숱한 2차 가해를 겪어야 하며, 이마저도 경찰과 법원을 오고 가는 중 안전하게 시술 받을 수 있는 임신 주수를 넘기고 마는 사례가 허다하다. 청소년 임신의 경우도 위험천만한 사례들이 가득하다. 익명의 인터넷 상에서는 유산되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배를 맞았다, 몸에 얼마나 무리를 가하면 자연유산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상담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음성화된 시술로 인해 급등한 낙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부모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청소년의 경우 이처럼 목숨을 건 선택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태아도 생명이며, ‘낙태는 살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에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명한 주장 뒤에, 이처럼 불법적인 낙태시술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의 존재는 그림자처럼 가리워져 있는 것이 아닐까. 수정부터, 배아부터, 8주부터, 12주 혹은 24주부터 생명이라는 추상적인 논쟁 속에, 지금 현재 살아 숨쉬고 삶을 누려야 할 여성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권리는 삭제된 것이 아닐까. 지난 12월 의료윤리•법•철학자 등 115명이 성명서를 통해 ‘낙태가 생명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과 이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을 단죄해 얻는 실익이 없다’며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것 또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낙태 권하는 사회

한편 모자보건법 제 14조에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과거 장애인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적 낙태시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 초기에 염색체 이상을 감별하는 기형아 검사는 상기 조항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국가 의료보험 지원을 받는 항목이다. 낙태와 관련한 ‘생명권’을 논할 때 이러한 사항들은 거론되지 않는다.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울며 빌었던 사건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소중한 ‘생명’이란, 노동력을 제공하고 세금을 내고 국가와 사회에 정해진 의무를 다할 수 있음을 인정받은 시민의 양성에 국한된 것인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영아유기, 해외입양 등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과연 우리가 ‘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인가. 과연 모든 ‘생명’이 행복하고 안정되게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는 사회인가. 실체 없는 생명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한 물음이 필요한 때이다.

또한 왜 저출산 시대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육아 비용, 노키즈존, 맘충 등의 모성 혐오, 독박 육아, 경력 단절, 여성 차별적인 임금과 일자리, 사회적 편견 등. 왜 아이를 낳을 수 없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 단순히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모두에게 고통만이 거듭될 뿐이다. 낙태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양육에 대한 비용 및 사회적 지원과 성평등 노동정책, 부모 공동육아가 가능한 시스템 등을 위해 노력을 거듭한 유럽 국가들에서 출산율이 서서히 반등하고 있음에 모두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탈출구로서의 낙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으로 내몰리는 여성에게 마지막 탈출구마저 막는다면 그 다음은 아찔한 절벽 아래일 수밖에 없다. 토크콘서트에 함께 한 참가자들은 말했다. 이것은 ‘한 끗 차이’다, 나일 수도, 나의 친구나 가족일 수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어떤 숫자나 통계로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아픔과 비명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이길. 낙태죄를 넘어, 모든 생명이 귀하디 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길. 그 첫걸음이 여성에게 모든 책임과 상처를 오롯이 짐지우는 낙태‘죄’의 폐지부터 시작되길 간절히 바란다.


▲낙태를 주제로 한 페미의학 콘서트가 1월 27일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열렸다. 사진='언니들의 병원놀이' 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