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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3 23:56:42

함박꽃과 부귀화

[동산바치의 花和人仁(3)] 김근오(꽃마실카페)


... 편집부 (2018-05-28 1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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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근오)

동산바치의 “花 和 人 仁”
- 세 번째 이야기 : 함박꽃과 부귀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한국 현대시에 또 다른 획을 그은 영랑 김윤식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국어시간에 외우고 시험보고 했던 기억이 있어 아직 몇 소절은 그냥 읊조립니다.

작약 한 그루
모란인 줄 알았다 그래도 태연자약
함박꽃이라 그래도 태연자약
구십을 넘긴 할아버지처럼
구십이 다 된 할머니처럼
한낮의 햇살 아래 태연자약
나는 아직 못 가 본 저 세계
참 환하다.


앞글은 성선경 시인의 문집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민화1에 실린 글입니다. 모란과도 비슷한 작약을 함박꽃이라고 하네요.

그럼 이번 달에는 이 찬란한 슬픔의 봄꽃 모란 그리고, 또 환하게 웃음 짓는 꽃 작약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번 목련 이야기를 하면서 산목련이라고도 하는 함박꽃나무에 대해서 알아 보았지요. 북한에서는 이 나무가 국화로 지정되어 있다는 얘기도 전했구요.
이 함박꽃나무와 참 비슷한 꽃을 피우는 풀이 있는데, 바로 함박꽃입니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듯한 이 흰꽃은 산작약, 백작약(白芍藥)이라고도 부릅니다.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포함된 동북아시아이구요,
학명은 Paeonia japonica (Makino) Miyabe & Takeda
영명은 White woodland peony입니다.


▲백작약

뿌리를 잘랐을 때 붉은 빛이 돌아 명명된 적작약(赤芍藥)은 중국과의 교류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 같습니다.
학명은 Paeonia lactiflora var. hortensis Makino
영명은 Chinese peony입니다.
꽃색은 흰색, 적색 등 다양하지요.


▲적작약


▲적작약

작약은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작약속(Genus Paeonia L.a)의 다년생 숙근초로서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 가치도 크지만, 부인병, 통증 등을 치료하는 귀한 약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왔지요.
작약이라는 말 자체가 ‘적’이라는 병을 고치는 약이라는 말인데, ‘적’은 배와 가슴에 발작적으로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종종 마시는 쌍화탕의 주요재료 중 하나가 바로 백작약이지요.
작약의 꽃말은 화려한 꽃과는 달리 수줍음이랍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모란이라고 부르는 목단(牧丹)에 대해 살펴볼까요.

모란의 학명은 Paeonia suffruticosa Andrews
영명은 Tree peony ,
꽃말은 부귀영화, 꽃색은 적작약처럼 다양합니다.

모란은 영명에서처럼 ‘목작약’이라고도 불립니다.
전 세계적으로 작약속(Paeonia) 식물 대개가 초본성(30여종)인 반면에, 목본성인 종은 모란을 포함한 8종뿐이라고 하니 일단 모란은 작약속 무리에서도 귀한 존재이군요.


▲모란


▲모란

작약이 약재로서 오래 전부터 재배가 되어 온 데 비해, 모란은 약재보다도 관상용으로 더 인기가 있었던가 봅니다.
몰론 목단피 역시 작약 뿌리와 유사한 약효를 띠고 비싸게 값도 쳐졌으나, 번식이 작약보다 쉽지 않은 까닭에 재배가 덜 선호되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한편, 모란은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에 이르러 궁중정원에 심기면서 자연스럽게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꽃으로 대접받게 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재배 문화가 보급되어 중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게 되었지요.
우리나라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평왕 시절, 어린 선덕여왕에게 당 태종이 모란 그림과 씨를 보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삼국통일 후 당의 문화는 우리나라에 더욱 영향을 미쳤는데,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이 ‘화왕계(花王戒)’를 지어 왕에게 충언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화왕이 바로 모란이랍니다.

서구문화의 원조 그리스 신화에는 의술의 신 파이안(Paeon)이 등장하는데, 이 신이 작약 뿌리로 병사들의 상처를 치료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로부터 작약과 모란의 속명이 Paeonia가 되었다고 하지요. 작약속(Paeonia)은 실제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약재로 인정받아온 셈입니다. 이러한 작약의 영어명칭이 Peony입니다.
이후 근세 서양에 중국 모란과 작약이 들어왔는데, 모란은 목작약(Tree peony)으로, 적작약은 중국작약(Chinese peony) 등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후기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저도 많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네요.
백작약이 산작약이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함박꽃 작약의 원조라는 것.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작약은 뿌리색을 기준으로 적작약으로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꽃의 색은 산작약보다 휠씬 다양하고 화사하다는 것. 그래서 실제 화훼용으로 재배되는 작약은 대개 적작약이라는 것.
또 모란도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는데, 부귀화로 부르는 중국의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해져 왕실과 귀족들에게 대접받고 자랐다는 것.
중국집에 걸려있는 빨간 연꽃 같은 장식이 아마도 적모란을 형상화한 것이리란 추측도 해봅니다.
미인을 일컬어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고 하는 말도 있더군요.
작약과 모란은 여러 모로 유사한데, 잘 살펴보면 잎과 꽃 모양에서 차이가 납니다.
나무인 모란이 형태학적으로 좀 더 크고 장식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하간에 태연자약 자기 몫을 다하는 작약과 모란을 본받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