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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커피요? 믿음이죠!”

전주 송천동 로스터리카페 ‘짙푸른’...제대로 된 문화공간 꿈꾼다


... 문수현 (2018-12-17 00:59:55)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먼저 맛있는 커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맛있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비법)를 전해줄 수 있는 능력자를 수소문했다.

전주 송천동 건지산 정상(고도99.4m)과 겨우 500m 거리에 있고, 전라고등학교와 솔빛중학교에서 지척인 곳. 사장의 표현대로, 시골과 도시의 느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 여름이면 그 앞으로 트랙터며 농기계들과 할머니들의 발걸음도 잦은 곳. 로스터리카페 ‘짙푸른’이 자리한 곳이다.

해가 종일 뜨고 져서 짙고 푸른 원색의 카페 통창문을 두드린다. 태양이 사랑을 듬뿍 쏟아 붓는 곳이랄까. 시골집 마당에 앉아 얕은 야산 언덕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마음을 참 편하게 만드는 곳, 참 좋은 자리였다. 사장도 그 점이 썩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그림그리기와 책읽기를 좋아하는 듯했다. 프레임도 사인도 없이 벽에 걸린 그림들은 사장 내면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고, 책꽂이도 없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영미소설들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에게 커피 맛있게 먹는 방법부터 물어봤다.

첫째는 ‘그 원두를 만든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답. “원두를 사오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거의 80% 이상을 차지해요. 커피 맛도 기대를 갖고 내리는 것과 그렇지 않고 내리는 것은 차이가 커요.”



그 다음은 적정 온도와 물.

펄펄 끓는 물을 붓지 않는다는 건 상식.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식히는 게 적당할까. “90~92도가 좋아요. 너무 높은 온도로 우려먹으면 단맛, 풍미, 향 대신 떨떠름한, 아린 맛이 나요. 뜨거울 땐 모르다가 다시 입에 가지 않아요. 끝에 불쾌한 뭔가가 남게 되죠. 특히 라테는 잘못 먹으면 양치해야 될 정도로 잔해가 입안에 불쾌하게 남아요.”

‘하지만 집에선 90~92도를 어떻게 측정하지? 온도계가 필요할까?’ 기자의 이런 의문이 들여다보인 듯 친절한 설명이 뒤따른다. “끓인 뒤 생각보다 오래 식힌 온도예요.”

물도 결정적 요소 중 하나. 소금기와 철분 등을 가진 수돗물 자체가 커피에 맞지 않다는 게 사장의 설명. 수돗물을 쓰면 커피의 향미도 많이 죽고 쓴맛이 도드라진다는 것. 그러고 보니 카페 주방 벽의 깔끔한 정수장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볶은 원두의 신선도를 재는 기준은 뭘까? 일단 냄새가 퀴퀴하면 상한 것이라고 한다. 카페짙푸른에선 원두가 1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하물며 한 달 넘긴 원두를 먹어선 안 된다. 독이기 때문이다. 회를 밖에 꺼내뒀다 먹는 거나 마찬가지란다. 뿐만 아니라 잘 볶이지 않은 원두, 상한 원두는 감자독처럼 독소가 많다. 그래서 진 사장은 벌레 먹은 원두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골라내는 정성을 마다 않는다.

“커피 매니아들은 이미 몸이 정화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먹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심장이 뛰거나 손이 떨리거나 몸이 먼저 반응하니까 가는 데만 가는 거예요, 깨끗하게 볶는 데가 몇 군 데 없기 때문에요. 그래서 커피 매니아들이 자연스럽게 거기만 가는 거예요.”



내친 김에 오래 품고 있던 질문도 했다. “커피를 진하게 우려먹으면, 그러니까 물을 적게 타면 배탈이 납니다.” 이에 대해 자신에 넘치는 답이 돌아왔다. “안 좋은 걸 먹어서 그래요.”

조금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는 잠깐 사이 대답이 이어졌다. “잘못 볶인 것, 상한 것이라서 그래요. 제가 머리가 아프거나 심장이 뛰던 게 깨끗한 걸 먹으면 내려가요. 하다못해 시럽도 색소를 섞은 가향시럽을 타면 바로 (그런 증상이) 올라와요. 그럴 땐 유기농제품을 빨리 먹어줘야 돼요. 그러면 머리 아픈 게 좀 가라앉더라고요. 몸이 깨끗해져있거나 민감해져있어서 그래요.“

이곳 사장 진세진씨는 10년 전에 커피 일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커피숍이 망해가면서, 너무 예뻤던 그곳을 살려보려고 학원에 다닌 게 커피 일에 본격 뛰어든 계기가 됐다. 20대를 보내며 전주에서 크다는 커피숍들을 다 맡아봤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지만, 문화예술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커피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한다.

어느 장르든 10년을 하면 아티스트가 된다는 게 그의 믿음. 1년에 술 한번 먹을까 말까하고 주말도 거의 없이 일하던 시절. 그것은 일종의 ‘산전수전’의 경험이기도 했고 커피에 대해 ‘기를 세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의 생각에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는 순간 평화로워지는데, 그는 이 카페를 열면서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카페짙푸른은 3년 전에 오픈했다. 돈벌이를 생각했으면 번화한 곳으로 들어가야 했겠지만, 정적인 것이 좋고 자연친화적인 게 좋아 선택한 자리다.

처음 1년은 거칠게 굴고 큰소리 치고 술에 취한 손님들을 거부하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자유로운 공간’, ‘주인의 고유성이 숨 쉬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물론 그 공간은 ‘맛있는 커피’로 이름을 알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장의 바람대로 ‘문화의 공간’, ‘치유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