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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3 23:56:42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임실군 지역사 밝혀줄 『삼계일기』출간

지역 현대사를 규명하기 위한 자료 출간 작업 추진


... 임솔빈 (2021-06-16 17: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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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중국의 제국주의-식민지 체제로부터 시작된 20세기 동아시아의 심성체제 비교 연구를 수행 중인 「전북대학교 쌀·삶·문명연구원」(원장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이정덕 교수)에서 임실 지역의 현대사를 밝혀줄 『1950년대 공무원 이강운의 삼계일기』(이하 『삼계일기』)와 독자의 일기 읽기를 안내하기 위한 해제집 『국가와 농민 사이, 면서기의 경험과 심성』을 함께 출간했다.

『삼계일기』는 그동안 한국사회의 현대사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던 1950년대를 생활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연구원은 일기 자료를 발굴하여 약 1년 동안의 독해·입력 작업을 거쳐 이를 출간했다.

이 책은 1951년부터 임실군 삼계면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1987년 삼계면장으로 공직을 퇴임한 이강운(1931-2015) 옹이 쓴 자신의 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20대 초중반의 청년 시절인 1954년부터 1957년까지 4년 동안 삼계면사무소에서 병사계 직원으로 일하며 살아온 자신의 생활을 기록으로 남겼다.

『삼계일기』에는 휴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국가가 고갈된 자원의 대부분을 주민에게서 충당하던 당시 청년 면서기였던 저자의 업무와 그에 대한 저자의 느낌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마을의 면사무소가 이른바 ‘약탈국가’로서의 신생국가의 강제와 억압이 농촌 마을 주민에게 전달되는 매개로 작동하던 방식과 내용 및 양상, 이와 함께 가난한 고향사람들에게 물질적 자원의 납부와 노동력의 강제 동원을 요구해야 하는 젊은 공무원의 고뇌와 애환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계일기』에는 혈연 공동체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농촌 마을사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추석, 설 명절 뿐 아니라 제사, 혼인, 장례 등의 의례가 혈연 중심으로 전개될 뿐 아니라, 그러한 의례들이 친족 공동체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을 겪으면서 농촌 공동체도 해체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미 고향을 떠난 친지와 친척들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 일이 더 즐겁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난 고향에서 친족 공동체가 처하게 되는 어려움도 많았다. 『삼계일기』에는 장손이 서울로 떠난 이후 백부를 모시고 살던 딸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홀로 남게 되는 백부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집안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자식교육에 대한 열의와 걱정, 농업의 쇠퇴로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농촌 살림살이, 주민들이 농촌을 떠나면서 점점 늘어나는 빈집 등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농촌사회의 변화를 착잡하게 바라보는 한 농민의 시각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일기는 한국사회의 현대사가 지역 농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기록인 동시에,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때로는 순하게 또 때로는 거칠게 대응하고 적응해온 한 농촌 주민의 삶의 기록이다.

『삼계일기』는 또한 행정기관과 마을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록으로, 마을의 조직적 질서를 이장을 중심으로 일원화하고, 이를 면사무소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하는 행정기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장 조직은 절반은 행정조직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으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마을 공동체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이장을 비롯한 마을 조직이 행정기관의 정책에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주민의 의사를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마을의 생활세계와 조직적 질서의 구성과 그 변화 과정을 『삼계일기』는 보여주고 있다.

「전북대학교 쌀·삶·문명연구원」은 책임연구원 이정덕 교수를 비롯하여 인류학, 사회학, 농업경제학, 여성학을 전공하는 10명의 연구진과 2명의 보조연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9년부터 제국-식민지 체제 이후 동아시아의 사회변동을 심성체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작업을 수행 중이다.

일기를 비롯한 개인기록 자료는 동아시아 민중의 삶, 그리고 그들의 태도와 인식의 세계를 분석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연구원은 개인기록을 통한 동아시아 민중의 심성체제를 분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그리고 올해 11월에는 한·중·일의 학자들이 모여 개인기록을 통한 비교분석의 연구 성과를 나누는 「국제학술대회」 또한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