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LOGO
최종편집: 2024-05-03 23:56:42

동학혁명의 역사적 숨결의 터, 고부초등학교를 가다

일제가 동학정신 깃든 고부관아터 허물고 학교 지어


... 최용섭 (2013-04-02 17:58:50)

역사와 추억 팀에서 3번째 찾은 곳은 정읍교육지원청에 속한 학교이다. 정읍교육지원청에는 113개 학교와 학생수 18,670명 교직원 1,576여명이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육 공동체’라는 지표아래 오늘도 교육현장에서 수고를 다하고 있다.(2012년, 정읍교육지원청 자료 기준)

정읍교육지원청 산하 초등학교에는 35개 학교가 있는데 학교마다 다양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6.25 전쟁 시 학교가 전소되어 폐교되었다가 다시 문을 연 교암초등학교(38.4.10) 아토피예방 실험학교인 수곡초등학교(57.6.1) 4개교가 폐교의 아픔을 안고 통합된 신태인초등학교(23.5.20) 2년 연속 창의력 올림피아드에 참석하며 학교의 위상의 높이고 있는 칠보초등학교(19.10.1)독특한 캐릭터(오비.정이)로 학교의 특징과 정읍시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정읍초등학교(99.8.6)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고부초(1906.8.15) 태인초(1911.9.25) 정읍동초(1912.5.1)등이 있다. 또한 지역 특성에 따라 다문화가정/교육 연구 학교로 지정된 곳도 여러 곳이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진행과정에서 시작된 자유.민주정신은 동학농민혁명에서 3.1독립만세운동, 4.19의거, 5.18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데,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인 고부지역에 소재한 고부초등학교를 찾아보았다.

호남고속도로 정읍 IC에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줄포방면으로 가다보면 두승산 자락 성황봉 기슭 정읍시 고부면 교동3길 14(고부리160)에 자리잡고 있는 고부초등학교가 나온다. 이 위치는 전북기념물 제122호 고부관아터이기도 하다.



학교는 1906년 8월 15일 사립광화학교로 설립되어 시기를 거치면서 1908년 공립고부보통학교, 1911년 고부공립보통학교, 1938년 고부제일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고부대화공립초등학교, 1945년 고부공립국민학교에 이어 지금의 이름으로 변천되어 왔다. 1906년 8월 15일에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40년 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광복을 미리 기약이라도 했던 의미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립당시 순교청 건물을 교사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고부군수가 교장이 되고 일본인이 교사로 있기도 했다. 1919년에는 객사를 수리하여 교사로 사용하였고, 1927년과 1938년에 목조건물 제 1교사/제2교사가 건립되었다. 1970년대에 와서 목조건물을 철거하고 철근슬라브형 건물이 신축되게 되었다. 전교 학생수의 변화도 1940년대 23학급 1400여명, 1988년 400명, 2000년 135명 재적인원을 보이면서 감소하고 있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한국전쟁 중에도 수업과 졸업식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었다 한다. 역사 현장으로서의 고부관아터는 동학농민혁명의 불꽃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 정문 옆에는 옛 고부 고지도와 함께 학교의 역사를 기록하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운영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고부관아를 철거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국민의 저항정신과 자유의지를 없애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없애고자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없어졌는데, 정문 옆 운동장에 있는 오래 된 나무와 조금 남아 있는 듯한 기단석, 향교를 따라 길게 세워진 돌담길이 역사의 흔적들을 보게 한다.

고지도에서 고부향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74호)만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향교에는 아름드리 나무 2그루가 비석과 함께 역사의 깊이를 대변하고 있다.



고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백제시대부터 지방통치의 중심지로 근대사의 여명을 밝힌 동학혁명의 발원지이며, 당시 전라도 일대에서 전주부 다음으로 위세를 떨쳤던 곳이다.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 20명의 사람과 함께 ‘보국안민, 제폭구민’을 내세우며 폭정과 탐관오리에 맞서 항쟁하였던 농학농민혁명. 못살아서가 아닌 이념적.정치적으로 깨인 사람들로 표현되는 참 시민으로서의 투사들은 그 시대에도 과부의 재혼을 허락하는 등 선진된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고부초등학교는 학생 54명과 교직원 23명이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19대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여 학교를 위해 수고하고 계시며, 2013년 2월 103회졸업식(졸업생 누계 8101명)을 거행하였다.

교표 : 낟알이 여물어 이삭이 영글 듯 씩씩하게 자라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어린이

교화 : 철쭉 (성실과 따뜻한 마음을 표현)

교목 : 소나무 (푸르게 꿈과 희망을 키워가길 소망함) 이다.

특색사업으로는 동학농민혁명정신 계승.발전 교육하므로 존엄.자유.평등.자주정신 함양하고 , 애향심과 자긍심.국가관 고취하는 것이다.

역점 : 따뜻한 돌봄과 성장이 있는 지역연합, 방과후학교 지원원센터 운영한다고 한다.

학교 초입에 ‘고부민속유물전시관’이 있는데, 총동창회장이며 10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하셨던 은희태선생님께서 소장하시며 ‘고부중’에 전시하던 것을 2006년 4월 전시관 개관에 기증하신 360여점의 민속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 자료와 고부지역의 민속유물자료-가마니 짜는 기계 포함, 고서 사본등이 전시되어 있고, 주중 9시에서 6시까지 개관하고 월요일과 목요일에 휴관한다.



학교가 옛 고부관아터인 관계로 주위가 고부구읍성터로 파악이 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00년부터 발굴조사에 따른 발굴실시가 이뤄지고 있는데, 적은 예산 투입으로 발굴의 진전이 더딘 상태이다. 이 성터에는 성문3개소, 우물 4개소,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다. 고부지역의 역사는 청동기 문화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주위에 고인돌 매장문화 유적지와 백제시대까지 올라가는 고부구읍성(전라북도 기념물 제 53호)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00주년 기념하여 전북지역에서 최초로 초등학교 교육사를 담은 ‘고부초등학교 100년사’를 발간하였고, 백주년기념탑 건립, 기념우표 발행을 진행하였다. 100년사에는 8.15광복후 얼마 안 가서 이념과 사상이 좌우로 양분되어 38도선으로 국토가 남북분단되고 좌우익 간에 분규,폭동 등 치안질서가 문란한 와중에 여러 희생자들이 생기기도 하였던 아픈 과거가 있다는 것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고부인들의 오늘을 기반으로 내일의 희망을 어떻게 가져가야할까에 대한 고민을 학교100년사에서 살펴보면 1.미래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의 모습 2.주민들과 동문들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학교의 모습 3.앞으로의 100년을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선배들로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면서 왜소화 되어가는 모교에 대한 안타까움을 볼 수 있다.

나아가 모교에 대한 학교의 정신은 “세상이 어떻든 우리 아이들만은 잘 길러야 한다. 그러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이 정신은 ‘사람이 본시 평등하며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꿈꾸는 세상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10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의 품에서 자란 수천수만의 자식들이 학교에 대한 사랑을 증언하며 그리워해주길, 그리고 또 다시 백년을 건승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주위에 동학농민혁명 모의탑과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두승산성(전라북도 기념물 제54호)등 많은 유적지를 통해 선조들의 민족혼을 사르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