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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마을의 작지만 강한 익산 함라초등학교

1908년 9월 18일 사립창명학교를 설립


... 편집부 (2013-06-25 11: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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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추억 팀에서 6번째로 찾은 곳은 익산교육지원청에 속한 학교이다. 익산교육지원청에는 189개교(초등 60교), 학급수 1,873(특수 41학급,초등 803학급), 학생수 47,824명(특수265명, 초등 19,058명) 교사 3,192명(초등 1,143명)의 교육가족이 있으며 올해 예산은 2012년 대비 조금 준 835.99억원의 예산이 운영된다. 시민과 함께하는 익산교육을 표방하는 익산교육지원청은 ‘행복한 익산으로 미래형 인재육성’이라는 지표아래 오늘도 익산지역 교육현장에서 수고를 다하고 있다.(2013년 3월, 익산교육지원청 자료 기준)

특히 익산교육지원청은 마한과 백제의 유적이 곳곳에 있어 이를 문화와 교육에 다양한 활용을 모색하고 있으며, 특색사업으로 마.백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교육, 역점사업으로 지역사회 자원 활용을 통한 꿈을 심는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산하 초등학교에는 60개 학교가 있으며 신.구의 조화와 도시.농촌의 여러 모습을 갖추고 있어 교육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초등학교의 역사의 깊이는 학교의 설립 순으로 여산초(1907.3.1인가, 여산호산사립학교, 2013년 2월 제99회 졸업식/9,607명) 함라초(1908. 9.18사립창명학교설립, 2013년 2월 102회 졸업식/7,278명) 웅포초(1908.10.1사립보명학교설립) 금마초(1911. 9. 15익산공립보통학교설립, 2013년 101회 졸업식/10,571명) 용안초(1912. 5.1용안공립보통학교설립, 2013년 2월 100회 졸업식/8,144명) 이리초(1915.4.10이리공립보통학교설립) 이리계문초(1921.4.1 사립계문보통학교 설립) 이리팔봉초(1921,5,1설립) 삼기초(1922.4.1 삼광사립보통학교) 오산초(1922.4.1 사립오산 보통학교) 이며 1920년대까지 설립된 학교수도 16개교로 높은 향학열과 오래된 고장임을 가늠케 한다.

원광대학교 앞을 지나는 23번 국도를 따라 오면 함열읍을 만나게 되는데, 724번 지방도를 따라 함라면사무소에 오면 쉽게 함라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다. 이 함라 지역은 인근 웅포와 용안지역과 더불어 예로부터 농업과 물자교역, 인재를 배출하는 산실을 해왔던 고장이다.

함라초등학교의 역사는 1908년 9월 18일 사립창명학교를 설립하여 1909년 5.25에 사립 함열보통학교로, 1941년 4월 1일 함라공립국민학교로 개명 되었다. 1999년에는 신남포초등학교와 통폐합되기도 하였고, 2013년 2월 제102회 졸업식(7,278명 졸업)을 거행하였으며 3월 1일 제 23대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였다. 교장선생님과 19명의 교직원이 6학급 62명(남32명, 여30명), 병설유치원의 학생들과 함께 교육현장에서 노력하고 땀 흘리며 미래를 가꾸고 있다.

정문을 지나면 정면과 좌편에 많은 기념비들이 도열하여 찾는 이들을 맞이하여 주는데, 그 하나하나에는 졸업생의 학교에 대한 애정과 후배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100주년 기념비는 웅포지역의 맛있는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으며, 100년을 맞이하는 감격과 기쁨을 몸으로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학교 본관을 바라보면 입구의 모습이 투구의 모습 같기도 하고 한자의 문(問)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본관 입구 앞에도 양편으로 기념비가 서 있는데, 하나는 교가를 새겼고, 다른 하나에는 함라인의 자화상을 노래하는 글을 새겨 놓았다. 이 모두가 지난 세월 이곳에서 철부지 시절을 보냈던 선배들이 정성을 모아 세워둔 것 들이었다. 학교 진입로와 89M의 화단을 조경하는데 정성을 모았다는 34회 졸업생의 기념비도 있다.



현관은 에너지 절약 실천으로 조명들은 소등되었지만, 깨끗하고 예스런 모습이 가득하였다. 특히 진열장에 있는 고전 책들과 생활골동품은 지역문화와 정신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넓다란 운동장과 운동장 주위를 두르고 있는 나무 숲은 마치 고향의 품처럼,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자녀들의 귀환을 환영해 주는 것 같다. 그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은 마치 지금까지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듯 모여 종알거리고 있다.



학교의 교훈은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워서 바르게 행하자’이며 교목은 ‘느티나무’, 교화는 ‘철쭉’, 교조는 ’비둘기‘이다. 노력중점 사항으로는 독서논술교육과 영어의사 소통능력향상, 수학문제 해결능력 신장이다. 특색사업으로는 전통문화와 예술교육으로 고운 심성기르기에 중점을 두고’우리문화 탐사 활동’ ‘난타.사물놀이 활동’ 을 통해 전통문화의 이해를 꾀하고, ‘1인 1악기 연주’ ‘무용교육’ ’어울림 꿈자랑 발표회’를 통한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졸업생들의 학교 사랑은 남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100주년에 부쳐 제작한 12분여의 영상자료에는 바랜 흑백사진에 담겨 있는 지금은 없어진 학교 건물과 고사리 아름다운 동심을 품고 세대를 이어 온 학생들, 또한 그들과 함께 한 선생님들. 마을 주민과 함께한 마을 축제 운동회, 소풍, 새마을운동,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찍은 모습 등, 흑백에서 칼라시대로 변화해 온 만큼이나 많은 변화들이 그 속에 담겨 있고, 그 것을 담아내려 애쓴 노력이 보인다.

금강을 따라 발전한 인근 지역과 더불어 함라마을의 역사는 백제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까지 현청 소재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함라’의 명칭은 인근에 있는 ’함라산’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백제의 감물아현이었던 이 곳이 신라의 삼국 통일 후 경덕왕 16년(757년)에 함열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임피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는 전주에 속현되었다가 조선초 태종16년(1416년) 다시 분리되어 함열현으로 유지되었다. 별호는 함라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 전주부 함열군, 1896년 전라북도 함열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함열군이 폐지되고 함라면등 여러 개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되어 익산군에 병합되었다. 익산의 곡창지대 중에서 함라지역은 지대가 높아 홍수의 피해가 없고 함라산 뒤편의 금가응로 인해 감무의 피해도 거의 받지 않아 농사짓기에 둘도 없는 곳이었다 한다. 또한, 쌀을 포함한 생산된 농산물은 금강을 따라 서해바다를 통해 한양에 공급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사람의 25%가 익산의 쌀을 먹었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이 지역의 농사의 규모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익산지역 만석꾼’이야기를 통하여 실감할 수 있는데, 그 만석꾼의 3명이 모두 이 지역에 터를 두고 살았고, 지금도 거대한 기와집이 그 때의 모습을 실감나게 한다. 관아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수동마을의 김안균(김해김씨) 가옥으로 만석꾼 김병순의 아들이라 한다. ‘김진사댁’이로고 부르는데, 김진사는 이 가옥을 지은(1922년) 김병순을 일컫는다. 할아버지 대부터 가세가 좋아지다가 일제 강점기에 ‘함화농장’을 세우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한다. 집을 따라 토석담이 이어지는데, 담의 높이가 1.5~2M를 넘는 곳도 있어 부의 과시도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두 째 만석꾼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해영(임천조씨) 가옥이 있다. 도의원을 지내기도 한 조해영의 아버지인 조용규씨가 만석꾼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마찬가지로 농장을 운영해 부를 축적하였다고 한다. 특히 조해영 가옥에는 한옥과 일본식의 건축양식이 공존하고 남녀의 생활 공간을 구별한 것과 침실과 거실을 따로 두는 서양식 건축양식도 가미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인근 천남마을에 다른 만석꾼이 이배원(경주이씨) 가옥이 있다. 이 세 명의 만석꾼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인심 좋은 함열’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관련된 이야기로는 ‘홍길동전’을 쓴 허균(자:단보, 호:교산,성소,학산,백월거사)이 1611년에 귀양 길에 오르는데, 서로 교류가 있었던 인열왕후(인조의 비)의 오빠가 이 곳 함열현감으로 재임하고 있었던 이유로 유배지로 함열을 굳이 고집하였다고 하며, 이곳에서 1613년까지 지내면서 ‘홍길동전’에 버금가는 시문집 ‘성소부부고’라는 문학작품을 남겼는데, 시와 산문을 모아 시.부.문.설 4부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며, 구성은 8권 1책이다. 특히 허균의 위.아래 800년 동안의 시가를 96권으로 묶은 ‘성수시화’는 통일신라의 최치원부터 당대 인물까지의 역대 한시를 뽑아 묶었으며, 이 중에는 여성과 승려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소부부고 권25 설부 4에 해당)

이 곳 함라지역은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총 연장 13.8km의 둘레길로서 앞에서 언급한 삼부잣집에서 시작하여 웅포 고분전시관을 향하는 제1코스와 숭림사로 가는 제2코스로 조성되었다. 각 둘레길은 구간별로 양반길고 명상길, 병풍길, 역사길, 건강길이라는 주제로 개발되었고, 주변의 세종시대에 세워졌으나 소실되어 다시 세운 함열향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85호)와 1682년에 세운 함라노소(노인을 위한 쉼공간, 정원형태로 연못이 있다) 한옥체험단지, 함라박물관, 함해국 등과 어우러져 지역축제가 5월말에 ‘우리밀 축제’, 10월에는 ‘구절초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쇠락하여 간다. 만석꾼의 부(富)도, 대궐 같은 기와집도, 둘러싸고 있는 흙.돌담길도 기반조성사업을 하여서 보완을 하여야만 한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곳에 어린 동심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왔다가 지나가는 곳이 아닌 머물러서 풍요를 바탕으로 미래를 다시 준비해 가는 열정들이 있는 한, 그 것을 책임지는 교육가족의 열정이 있는 한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갈 것이다. 교육은 사랑이며,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