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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8 17:47:39

상처받지 않는 체벌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②] 설연화 / 시인·수필가


... 편집부 (2015-01-12 14: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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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체벌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마음의 상처이다. ‘꽃잎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아이가 통제되지 않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 상황일 때는 어쩔 수 없이 체벌이라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상처 주지 않는 체벌은 어렵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을 때, 체벌이 상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는 알아야 한다.

내가 아이에게 직접적인 체벌을 했던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자라주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체벌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미안해질 때도 있다.
딸과 아들은 분명 다른 것 같다. 딸은 말이 더 아프다는 것을 일찍 깨닫는다. 그러나 아들은 체벌도, 말도 통하지 않고 일방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대화를 하려 해도 입을 꼭 다물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내가 침묵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야단을 치는 것은 관심과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네가 잘못을 했는데 엄마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을 때일 거야. 매를 드는 것도, 야단치는 것도 사랑이 있을 때 하는 것이야.”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 항상 하는 말이었다.

체벌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하니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사랑의 매”가 생각났다. 안방 구석구석을 뒤적거렸지만 나오지 않았고, 내 작업실 책상 뒤를 살펴보다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꺼냈더니 “사랑의 매”였다. 스테인리스로 된 길쭉한 막대였다. 이 막대가 어떻게 사랑의 매가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먼지를 닦은 후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매직 글씨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들이 체벌 받은 후 직접 쓴 글씨였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들어온 아들이 사랑의 매를 보더니 뒤로 흠칫 물러선다.
“왜? 나 잘못한 것 없는데?”
“음, 오래간만에 사랑의 매를 들어볼까?”
“아이고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지요. 매는 미련한 동물들한테나 쓰는 것이라고.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인격이 존재하기에 때리면 아니 된다고 어머니께서 그러셨습니다. 저는 동물이 아니에요. 그리고 존경하옵는 어머니, 요즘엔 동물도 때리면 동물학대죄로 벌금 내는 것 아시지요?”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술 먹고 늦게 들어온 죄를 알렸다!”
“참으시옵소서. 자제하겠사옵니다. 아 근데 엄마 갑자기 그 매는 왜 꺼냈데?”
“그냥 옛날 생각나서. 너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맞았던 때가 언제였지?”
“중학교 2학년 때. 무단 외박하고 혼날까 봐 다음 날 저녁 늦게까지 학교 근처 돌아다니다가 누나한테 잡혀 들어와서 맞았잖아요.”
“매가 무섭긴 하나보다. 바로 존댓말이 막 쏟아지네?”
“아이고 어머니, 저 씻을랍니다. 오늘은 술 마시러 안 나가요잉~!”

괴짜 엄마였고, 엄마가 더 사고뭉치였기에 다른 아이들에게 금지된 것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개방되어 있었다. 컴퓨터 게임은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학원을 가기 싫은 날은 가지 않아도 됐고, 학원도 자신이 다니고 싶은 곳만 다닐 수 있었다. 뿐이던가, 성적이 더는 떨어질 곳이 없는 곳까지 갔더라도 혼나거나 공부하란 잔소리는 듣지 않았다. 더 한 것은 아이가 공부하기 정말 싫은 날은 문자가 왔다.
“엄마 조퇴하고 싶어. 그냥 오늘은 다 싫어. 자고 싶어”
그럼 바로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가족 모임이 있어서 나주를 가야 한다는 거짓말하고 아이를 조퇴시켰다.
그러나 절대 허락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외박이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외박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었다.

토요일 오후.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온다며 나갔던 아들이 밤 10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문자도 답이 없었다. 그래도 자정까지는 외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친구들과 놀다가 늦어졌고, 혼날까 봐 좀 망설이다 들어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새벽 2시가 넘어가면서 외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내가 무엇인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개방적인 사고의 방식이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밤새 자책하며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나는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집안에 있을 수도 없었다. 집 앞을 서성이다가 혹시나 집 전화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어 집에 앉아 있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백여 번이 넘는 전화를 했고, 수백 번의 문자를 했지만, 아들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노심초사에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해가 뜨고 오후가 되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연락되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다. 밤새 퀭한 몰골로 아파트 주변을 맴돌았던 탓에 경비 아저씨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나니 가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여기저기 아들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 받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들과 연락이 닿는 친구들이 없었다. 새벽부터 내 눈치를 살피던 딸아이는 슬며시 밖으로 나갔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침부터 아이를 찾으러 나갔던 동생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집 전화는 다른 날보다 더 조용했고, 휴대전화는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어서 몇 번 전원을 껐다가 켜는 것을 반복했다. 아이를 찾아 학교 주변부터 중고등학생들이 잘 어울려 다니는 곳 등을 찾아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집에 자주 들락거리던 아들 친구를 몇 명 만났지만 다들 토요일 오전 이후로 본 적이 없다는 말만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소지품을 뒤적거렸다. 어떤 흔적도 없다. 심지어 누구나 쉽게 하는 낙서도 없었다. 이제 걱정을 넘어선 몸부림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들에게도 화가 났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동생에게 몇 번 전화했지만 동생도 아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가족들이 모두 모였고, 아침에 사실을 모르고 나갔던 남편도 저녁에 들어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발대발이었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조용히 현관문이 열리고 딸아이가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뒤이어 고개 숙인 아들이 쭈뼛거리며 현관문에 서 있었다.
남편은 아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들을 향해 다가가려 했다. 일단 남편부터 안방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들 교육 문제는 나한테 모두 맡겼으면 이런 일도 맡겨줘.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내 뜻 받아주지 않으면 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맡겨 놨더니 그 꼬락서니야?”
“그래, 그러니까 해결도 내가 할 거야. 그러니 그냥 좀 가만히 있어줘.”
안방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현관문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서 있었다. 우선 나 자신부터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서 있었다.
“일단 가출할 생각이 아니라면 들어 와. 정말 집이 싫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나가도 좋아. 찾지 않을게.”

아들은 조용히 들어와 신발을 벗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딸도 덩달아 무릎을 꿇고 아들 옆에 앉았다.
“넌 왜?”
“나도 동생 관리 못 했으니까.”
“너희 둘에게 물어보자. 엄마가 지금 매를 들고 나와야 할까? 아니면 아들을 포기해야 할까? 너희가 답을 줘봐”
“맞을게요.”
“왜?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숙제 안 하고 매로 때우다 보니 맷집이 생겼어?”
“아뇨. 잘못했으니까요.”
“무엇을 잘못했는데?”
“외박한 것이요.”
“외박이 왜 잘못한 건데?”
그때까지 나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아들에게도 화가 나 있는 상태였기에 대화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시 일어나 식탁으로 가서 찬물을 벌컥 마셨다. 심호흡하고 다시 아이 앞에 앉았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잘못했어요. 엄마가 걱정하실 것 알면서 외박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절대 외박하지 않을게요. 외박하더라도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하거나, 허락하지 않으시면 외박하지 않을게요.”
대화를 먼저 시작한 것은 아들이었다. 딸은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제 그만 대화를 하라는 눈짓이었다. 그러나 아직 대화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밤새 걱정하며 노심초사했다가 아들을 보니 긴장이 풀어져서 기운이 빠져버린 탓도 있었다.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아들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작업실로 들어갔다. 이내 사랑의 매를 들고 나와 내 앞에 조심스럽게 놓더니 엉덩이를 들고 엎드렸다.
“스무 대 맞을게요. 더 때리셔도 할 말 없어요.”
“난 때리고 싶지 않아. 매로 때려서 가르치는 것은 미련한 동물한테나 하는 것이야.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인격이 있어. 말이 더 아프다는 것을 아는 것이 사람이니까.”
“엄마가 대화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는다는 것은 저를 이미 포기했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맞을래요!”
“마음먹고 때리면 너 어디 뼈 부러질 수도 있어. 이 매는 부러지지 않으니까.”
“각오할게요!”

매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내리쳤다. 아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고, 엄살도 부리지 않았다. 그렇게 열 대쯤 맞았을 때, 남편이 놀라서 밖으로 뛰어 나왔다. 나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고, 딸아이도 울고 있었고, 아들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 사람이 그러다 애 잡게 생겼네. 그만해!”
“아직 남았어.”
“그 정도면 됐어. 들어보니 애도 반성하고 있구먼. 그만해!”
나는 매를 내려놓고 내 작업실로 들어가 버렸다. 눈물을 아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방문을 잠그고 얼마나 울었을까. 딸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태훈이 반성문 쓰고 있어. 이제 그만 용서해줘. 아까 태훈이랑 같이 외박한 애들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어서 모두 무릎 꿇게 하고 엄마가 밤새 걱정하느라 한숨도 못 자고 울었던 것, 그리고 엄마가 걱정하는 모습 그대로 이야기해줬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한 시간 뒤 노크 소리가 났다. 방문을 열고 아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편지지로 일곱 장이 넘는 반성문을 내밀었다. 내가 그 반성문을 읽고 있는 동안 조용히 내 앞에 서 있었다. 읽고 있는 내내 시선은 방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왜 외박했는데?”
“애들이 선유도 가자고 하는데, 엄마는 허락하지 않을 것 같고, 애들하고 같이 가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꾸 마마보이라고, 엄마 말이라면 뭐든 다 한다며 놀리는 애들한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해서….”
“전화는 못 받더라도 문자로 답은 해 줄 수 있었잖아?”
“그러면 엄마가 당장 들어오라고 할 것 같아서.”
“어차피 배편이 없어서 못 들어오는 것 아니까 걱정은 안 하잖아!”
“잘못했어요.”
“그럼 엄마가 어떤 벌을 내려도 달게 받을 거야? 이대로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
“네.”
“앞으로 용돈 2주 동안 없어. 네 통장이랑 도장도 엄마한테 맡기고. 꼭 돈이 필요할 때는 말해. 용도를 들어보고 꼭 필요하다 싶으면 줄 테니까.”
“네.”
“엄마는 매를 들고 싶지 않아. 다음에 또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용돈을 주지 않을 것이고, 통장을 압수할 거야. 그리고 휴대전화 사용정지 시킬 거야.”
“네!”
그렇게 아이의 외박 사건은 막을 내렸다. 그날 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아이가 맞은 자리 때문에 누워서 잠들지 못하고 엎드려 잠이 들었다. 반바지 사이로 뻘겋게 달아오른 매 맞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연고를 가져다 바르자 아이는 아픈지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있어. 약이라도 바르지 않으면 터진 자리 곪아.”
“쓰려 엄마”
“그래도 참아!”

약을 바르고 난 후, 난 아이가 잠들 때까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아이가 잠이 들자 다시 내 작업실로 들어와 나를 반성하는 일기를 하염없이 써내려갔다. 아이만 잘못한 것은 아니다. 내 화를 다스리지 못해 아이가 먼저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문제가 있는 태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아이가 외박하고 싶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다. 그래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보고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외박이라는 단어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아이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구속이었을 것이다. 소통되지 않는 답답함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유 없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는 것은 억지다.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나에 대한 반성을 하고 보니 아이에게 더없이 미안했다. 쓰던 일기를 마무리하고 프린트 용지를 꺼내 편지를 썼다. 엄마가 쓰는 반성문이었다. 아이 교복 주머니에 반성문을 넣어두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아이의 잘못에 관한 체벌은 하지 않았다. 아니 체벌보다 더 무서운 것이 휴대전화 사용정지였고, 용돈 사용금지였다.


( 그림 = 임솔빈 )

다 씻고 나온 아들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한다.
“난 엄마 닮아서 눈물이 많은가 봐. 엄마가 다음날 주머니에 넣어 둔 편지. 그거 점심시간에 읽고 화장실 가서 울었다는 것 누나가 이야기했어?”
“아니, 말 안 하던데? 울었어?”
“그럼 안 울어? 내가 잘못했는데, 엄마가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눈물 나지. 나 그때 열다섯 살이었잖여. 지금도 엄마 편지는 내 보물 상자에 다 있어. 가끔 엄마 화낼 때 한 번씩 읽고 있지용. 엄청나게 많지요.”
“그 뒤로 또 언제 울었는데?”
“나? 그거야 입대할 때 울었지! 엄마가 우니까 나도 따라 울게 되던데?”
아들은 옛일이 생각난 듯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서 꼭 안아준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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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