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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자전거족이 되다

[워킹홀리데이 멜버른⑥] 김수빈(‘완생’을 꿈꾸는 20대 청년)


... 편집부 (2015-03-04 09:06:49)

※ 2014년 11월, 26년 동안 살았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호주에서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 전북교육신문의 제안으로 내 마음 속 나만의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글로 적어보기로 한다(글쓴이 김수빈).

호주에서의 생활이 두 달째로 접어들던 때. 봄의 쌀쌀한 기운도 모두 가시고 이른 아침부터 해변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멜버른의 화창한 계절 어느 날, 나는 자전거 한 대를 홍콩에서 온 여학생으로부터 중고로 구입했다. 로드바이크 중 하나로 날씬한 몸매와 검정색의 고전적인 스타일까지, 중고임에도 불구하고 멋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에게 걸맞는 자전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많은 순간들을 아니 내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한 자전거다. 중고라서 치러야했던 많은 신고식도 있었지만 말이다.

비싼 교통비 때문이었을까? 많은 워홀러들이나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그밖에도 자전거를 애용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 듯하다(물론 건강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멜버른의 길이 대부분 높은 언덕이나 경사가 없는 평지로 되어있어 누구나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전거도로도 아주 잘 나있다. 경험한 바, 도시뿐만 아니라 도시 밖으로도 차도와 나란히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그 중에는 자동차와 똑같이 신호도 받고 달리며 심지어 자전거 신호가 함께 마련되어 있는 곳도 많았다.

물론 자전거를 탈 때 헬멧 착용은 필수이며 앞뒤로 라이트를 달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차와 함께 달리며 수신호로 주고받는 차선변경이며 방향전환, 그리고 항상 자전거에 먼저 양보하는 차량운전자들과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자전거족들이었다. 그 이전까지 서울에서의 바빴던 삶 때문이었을까, 이 배려 속의 질서 있는 광경은 새삼스레 놀랍기만 했다.

어쨌든 나는 높은 교통비 때문에 중고사이트를 통해 그 자전거를 홍콩 여학생으로부터 구입했고, 자전거와 함께 그녀의 카메라 앞에서 한두 차례 포즈를 취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건 자기 자전거를 내게 떠나보내는 그녀 나름의 의식이었다.

집에는 나 말고도 서너 명의 친구들이 더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는데 따뜻해진 날씨 때문인지 우리는 흐르는 모든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졌고, 이런 날씨에는 집에만 있을게 아니라며 “We should do something!”(뭐라도 해야 해!)라며 목소리를 모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Biking Group'이라 스스로 이름을 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해변으로 강가로 사이클링을 다녔다.

자연을 옆에 끼고 맑은 공기와 상쾌한 바람을 쐬며 달리는 기분에 중독되어버린 우리는 점차 계획적으로 사이클링을 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마음이 잘 맞았던 셋, 베트남친구 린과 한국인 제임스, 그리고 나는 어느 주말에 단데농으로 사이클링을 가기로 계획했다. 이름은 단데농 마운틴 곧 산이지만 사실은 산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언덕에 가깝다고 한다.

지난 날 호주에 사는 누나가 차를 타고 나를 데리고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경사가 급하지 않고 중간에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마을들도 자리하고 있어 굉장히 아름다운 인상을 줬었다. 게다가 높지 않은 정상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도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가 있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에 나는 단데농를 목적지로 제안했다.

지도로 목적지와 루트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수준이라는 점을 느꼈다. 하지만 ‘Why not?’ 도전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 계획은 아침 일찍 단데농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고 그곳에서부터 자전거로 전망대까지 올라 준비해 온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뒤 간단히 주변 관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출발 전날 흥분되는 마음으로 장을 보고 도시락을 쌌다. 베트남식 돼지볶음과 한국식 닭볶음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을 준비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셋은 각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기념촬영도 잊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단데농 가까운 역에서 내린 우리는 자전거에 올랐다.



그런데 겨우 10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에는 너무 벅찬 길을 오르고 있었고 이윽고 그야말로 그냥 산길로 들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경사가 한계에 달했을 때에는 결국 자전거를 끌며 산행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가 다니는 도로를 찾으려 했지만 산속이라 그런지 구글지도도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전망대를 향해, 가장 높이 있다는 그곳을 향해 무작정 오르고 오르기를 반복했다. 자전거를 끌어가며...

이미 점심시간을 넘긴 지 오래. 포기하고 도시락 까먹을 생각도 여러 번. 몇 시간동안 산 속을 해매다 결국 우리는 찻길로 기어 나왔고 감격해 눈물까지 흘릴 뻔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사이클링을 하며 전망대로 향하는데, 그 소용돌이 속에 슬리퍼를 신고 온 린은 끝내 다리에 쥐가 났고, 결국 한쪽 다리를 절며 전망대에 다다르면서 외쳤다. “Finally!" 7시간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참을 수없이 배가 고팠다. 우리는 서둘러 준비해온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정상에서의 만찬을 즐겼고, 피곤함에 누구 할 것 없이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30분을 달게 자고 나자 어둠이 다가올 낌새가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자전거에 올라 내려오는 길은 수월했다.

평생 잊지 못할 길고도 참 할 얘기 많은 하루를 보낸 우리는 다음날 아침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엉기적엉기적 방에서 걸어 나오는 서로를 보며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며칠 동안을 주제삼아 신나게 떠들어 댔을까, 어느새 친구들의 방학도 끝이 나고 가끔씩 가까운 공원이나 강가를 따라 달리는 사이클링을 즐겼다. 무리 없이 가볍게. 개중에는 사이클링 도중 자전거 체인을 교체해야 했던 적도 있고, 생각보다 먼 여정에 지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단데농 스토리는 단연 우리들 사이에서 전설이다.

이렇게 1년을, 이태리에서 막 도착한 여성에게 넘겨주기까지, 많은 시간과 더불어 출퇴근까지 함께 해준 자전거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다. 끝내 이름 하나 지어주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자전거와 함께 멜버른을 산다는 것은 멜버른에서의 생활을 훨씬 더 모험적이고 건강하게 그리고 더 멋지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 [워킹홀리데이 멜버른]은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