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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이시안(Asian)

[워킹홀리데이 멜버른⑦] 김수빈(‘완생’을 꿈꾸는 20대 청년)


... 편집부 (2015-03-10 17:57:52)

※ 2014년 11월, 26년 동안 살았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호주에서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 전북교육신문의 제안으로 내 마음 속 나만의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글로 적어보기로 한다(글쓴이 김수빈).

멜버른에 첫발을 들였을 때에도 그리고 처음 하는 어느 자리에서나 나를 친근하게 맞이해주었던 친구들은 바로 우리 Asian 친구들이다. 중국,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그리고 말레이시아 등 우리 Asian들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섞여있는 이 호주라는 큰 사회 속에서 마치 한 식구 같은 유대감을 갖는다.

Debbie의 홈스테이에서의 첫날에도 많이 어색해하던 나에게 고맙게도 중국 친구들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다. 그 친구들에게 있어서는 내가 코리안이라는 점이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K-pop의 열풍, 한류 열풍은 실로 대단했다.

홍콩에서 온 열아홉 Jessica는 내게 첫인사로 개인기를 요구했다. 이유는 한국 예능프로그램에서 스타들이 항상 개인기를 하기 때문이란다. 정말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끝내 나는 개인기할 나이가 아니라고 둘러댔다. 황당한 질문에 이어 중국친구 Andy는 소녀시대의 노래와 춤을 보여주며 나를 또 한 번 놀래켰다.

이 어린 친구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K-pop과 아이돌스타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 대해 유식하지 않았던 나는 제대로 대꾸를 해주지 못했고 그 점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K-pop 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그리고 런닝맨, 1박2일 같은 예능프로그램도 아시안 친구들에게 인기가 엄청난 것 같았다.

한번은 캄보디아의 어린 친구들과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한 친구가 내게 몇 살이냐고 묻고는 “오빠”라고 하면서 한국말을 몇 마디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한국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봐서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안다고 했다. TV만 보고 배웠다기엔 너무 잘해서 “정식으로 공부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정말 TV만 보고 익혔다고 했다. 믿기지 않는 실력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코리안 하면 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숯불 위에 구워먹는 고기, 코리안 바비큐였다. 이것은 아시안 사람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식당에 들어서면 젓가락질을 하며 고기를 굽는 서양인들이 절반이다. 처음 맛보는 친구들이나 또는 이미 맛에 중독된 친구들을 데리고 당당히 식당 안으로 앞장서 들어갈 때의 그 뿌듯함과 만족감은 정말이지 내가 그 식당의 주인이라도 된 듯했다.

그렇게 조금은 Asian 친구들 무리 속에서 한국인의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지만 나는 종종 친구들 사이에서 내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글쎄 뭐라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차이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사귄 아시안 친구들은 중국, 베트남, 홍콩, 대만, 필리핀, 캄보디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다양하면서도 대부분 학생으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었다. 때문에 모두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다. 그런데도 나이가 어린 만큼 뒤처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화를 해보고 생각을 나눠보면 오히려 그 폭과 깊이가 달랐다. 지금까지 지구라는 도화지를 두고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공간에만 그림을 채워 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돈이 문제였을까? 물론 호주의 교육기관은 아시아의 많은 나라보다 당연히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게 가장 놀랍게 느껴졌던 점은 이 어린 친구들 모두 너무나 자발적이고 본인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 목표와 계획을 혼자 세우고 해나간다는 점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뭘 해야 할지 안다면 돈이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을까?

Asian 친구들 사이에 어울리다 보면 그 중에서도 유독 한국 사람들이 나이에 많이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 정말?”...“그래서 몇 살인데?” 많은 이유들과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서양 친구들은 정말 오래 만나도 궁금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Asian 친구들끼리는 서로 빨리 나이를 묻는 편이었지만 영어를 사용하고 나중에 영어로 사고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나이는 뒷전이고 잊히게 마련인 것 같았다. 그때에는 이제 훨씬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형, 동생의 상하관계도 없이 동등하게 말이다. 나이 한두 살 차이로 두는 상하관계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나 큰 선입견을 가져오는지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James, 홍콩 Jessica, 중국 Jessica, 베트남 Linh, 중국 Jellico, Andy 그리고 나. 홍콩 Jessica의 생일에 그녀의 집에서.)

Debbie의 홈스테이에서는 한국인 James, 베트남 Linh, 중국 Andy, Jessica, Jellico, 홍콩 Jessica 그리고 내가 Asian 사람들이었는데, 중국과 홍콩 친구들은 아쉽게도 학기를 마치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Debbie가 제공하는 서양식 위주의 음식에 끝내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부터 자연스레 우리 한국, 중국, 베트남, 홍콩으로 이루어진 Asian 그룹은 그 뒤로도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시티에 나가 저녁도 같이 먹고, 누군가 생일을 맞으면 집에 가서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K-pop을 부르고, 집에서 게임을 하며 얼굴에 낙서를 하고 배꼽을 잡아가며 웃고 그렇게 날을 새가면서, 참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서로 아시안 사람들이었기에 좀 더 특별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 내게 첫인사로 개인기를 요구했던 홍콩 Jessica는 또 기꺼이 나의 첫 한국어교실 제자가 돼주었다. 한국 드라마와 쇼프로를 즐겨보던 Jessica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 교실을 가지기로 했다. 한두 번 해보니, 한국말이 영어보다 쉽다고 한국말을 배워야한다고 큰소리쳤던 게 언제인가 싶었다. 이제는 한국말보다 영어가 덜 어려운 것 같고, 단순히 한국말을 할 줄 아니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호주를 떠날 때 추워질 한국의 날씨를 생각해 빵모자를 선물로 사주고 번역기를 이용해가며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한국어 편지를 건네준 Jessica의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다른 아시아 사람들에 대해 많은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더한 것 같다.

굳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이유를 정의해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이런 선입견이 무섭다.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고 관심을 가져보면 모르던 사실들을 훨씬 많이 발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고 느끼다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진한 색안경을 끼고 살았고 무지했었는지 새삼 겸손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사람마다 나이는 물론, 출신이나 배경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저마다의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인생의 큰 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래도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그곳 호주에서 그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워킹홀리데이 멜버른]은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