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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종사자에 밥값? 근무여건부터 살펴야

비정규직노조, 군산 A초 시위...전북교육청 “학교장이 알아서”


... 문수현 (2015-09-25 16:04:29)

군산의 A초등학교 앞에서 학교비정규직노조 전북지부 백승재 위원장이 25일로 사흘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 이 초등학교가 식생활관(급식실) 조리종사자 5명에게서 한 사람당 39만400원씩 5개월치 총195만2000원을 ‘급식비’ 명목으로 스쿨뱅킹을 통해 인출해간 게 발단이 됐다.

이들이 속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전북교육청과 힘든 교섭을 벌인 끝에 지난달 27일 임금협약를 체결했고, 그 전에 없던 ‘급식비 8만원’이 협약 내용에 포함됐다. 그리고 이 조항은 새 학기가 시작된 지난 3월부터로 소급해 적용됐다.

A초등학교는 이처럼 급식비가 지급되기 시작한 것을 근거로, 그 동안 면제해오던 급식비 징수를 다시 시작한 데 더해, 역시 지난 3월부터로 소급해 징수했다. 결국 조리종사자들은 다섯 달 치 받은 급식비를 한번에 고스란히 학교 측에 내주게 된 셈이다.

더욱이 학교 측에서는 사전에 스쿨뱅킹동의서를 작성하게 하고 자세한 인출 내역에 대해 안내하거나 당사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급식비를 빼갔다는 게 노조원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식생활관 조리종사자에게서 급식비를 징수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이를 비정규직 차별이라고 규정한다.

정규직이 받는 급식비 수당은 13만원인 반면, 비정규직은 8만원이다. 이마저도 전북교육청과 1년 가까운 기간 협상해 힘겹게 합의한 내용이다. 특히 식생활관 종사자의 급식비 면제 문제는 두 달여 동안 교섭하면서 노조와 도교육청이 끝까지 대립했고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급식비를 면제해줄 수 없다는 게 도교육청 입장이었던 반면, 노조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인상시키는 위해 급식비를 신설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몇몇 시도 교육청의 입장도 전북교육청과 다르다.

노사협상 과정에서 서울교육청은 “급식비는 실질임금 인상의 효과를 보기 위한 수당”이라는 입장을 보였고, 대전교육청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급식비를 지급한다고 해서 급식비를 공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경기교육청도 “급식비 8만원은 처우개선 개념”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지역 교육장이 학교장 및 행정실장 연수 시 식생활관 종사자 급식비 면제를 안내(토록)” 했다.

전북교육청은 이와 달리, 급식비 면제 여부는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교장이 결정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학교는 학교대로 도교육청이 ‘가르마는 타줘야 하지 않느냐’며 기본적인 방향을 도교육청이 제시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현재 급식비는 개별 학교마다 급식소위원회가 책정하며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하고 학교장이 결정하는 구조로, 대부분 학교는 조리종사자에 대해 급식비를 면제하고 있다.

한편, 노조는 급식비 징수 여부에 대해서는 이들 식생활관 종사자들의 근무여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우리는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살려고 밥을 마신다”는 말이 조리종사자들의 팍팍한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학교 조리종사자의 식사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심하면 배식 전에 5~10분 짬을 내 급하게 식사를 끝낸다. 배식이 끝난 뒤 한가한 시간에 식사하면 될 것 같지만, 설거지와 청소 업무에 치여 ‘한가한’ 시간은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다.

급식을 하나의 업무 영역으로 보느냐 마느냐 하는 점도 민감한 쟁점이다. 노조는, 검식은 식생활관 종사자의 본질적인 업무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기존 노동조건을 후퇴시켜서는 안 되며, 학교운영위원회에 조합원과 관련된 안건이 제출되면 조합원에게 의견을 개질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단체협약 조항도 있다.

노조는 급식비 징수 동의서나 자동이체 동의서를 작성해주지 말 것을 조합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급식비는 급식을 먹어야 내는 돈이고, 따라서 급식비를 내지 않고 도시락을 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급식비 징수에 강하게 맞서겠다는 것이다. 노조원들은 “교사들도 급식을 먹지 않는 경우 급식비를 징수하지 않는다. 왜 우리에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징수하느냐”고 반문한다.

백승재 위원장은 “도교육청은 학교장이 결정할 일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현재로선 학교장을 다시 만나 노조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같은 근무여건에서 조리종사자에게 급식비를 내라는 것은 버스기사에게 버스비를 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정규직에게도 정규직처럼 급식비 13만원을 지급하라고 계속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럴 경우에야 비로소 정규직과 똑같이, (지금은 없는) 1시간의 식사시간에,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북지부 백승재 위원장이 24일 군산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식생활관 조리종사자로부터 급식비를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