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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대한 다양한 선택, 새로운 관계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이유미(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 편집부 (2017-10-08 18: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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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유미)

추석에 혼자 있었다. 명절에 큰집에 가지 않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것 같다. 가족들은 명절에 혼자 있는 나를 안쓰러워하지만 정작 나는 그 시간을 즐긴다. 친구들과 모임을 갖거나, 보고 싶던 책이나 영화를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도 여행이며 등산이며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을 가졌다.

명절에 불참하기 시작한 것은 20대였다. 사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어서 명절 상차림에 대한 압박도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불합리함을 느꼈다. 누군가 식사를 차리면 그것을 같이하거나 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인임에도 앉아서 수발을 받는 일은 염치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런 염치를 나를 비롯한 여자들만 느낀다는 점, 그리고 거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암묵적인 요구도 여성들로만 향하는 점이 불합리하게 여겨졌다.

내가 선택한 길은 가족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지 않는 것. 결혼에 대한 잔소리는 여전하지만 이런 선택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이 결혼해서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혼밥 혼술, 혼자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시선도 연민에서 점차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인정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정작 명절을 혼자 보내는 당사자는 여유롭고 편한데,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불쌍해하거나 별종으로 보는 것은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시댁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분들을 응원한다. 며느리에게 요구되는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결혼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명절에만 꾹 참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널리 퍼지길 바란다. 며느리란 시어머니가 지고 있던 가사노동의 멍에를 물려받을 사람이 아닌 새로운 구성원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며느리의 정당한 요구가 시어머니에게 씌인 독박 가사노동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나도 방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남동생이 결혼하면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된다. 새로운 관계맺음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비단 명절에만 한다고 결실을 보기는 어렵다. 명절은 가부장적 가족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일 뿐이니까. 평소에 일상적인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남성가족들이 ‘본인이 먹을 것은 본인이 차려 먹고 설거지한다, 집안일은 공동거주자들이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을 상식으로 여기도록 말이다. 그래서 TV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성인 남성연예인이 밥솥이 어딨는지, 계란후라이를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얘길 버젓이 말하기 부끄러운 날이 하루속히 오면 좋겠다. ‘상식’이 상식이 될 때 자연스럽게 명절풍속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