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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4 21:47:42

여성주의 독서모임 리-본

전북의 학습모임을 찾아서 (1)


... 문수현 (2018-04-22 20:32:08)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학교만이 아니고, 공부하는 사람도 학생만은 아니다. 학생과 교사는 물론 시민·대중이 다양한 공간에서 학습하고 연구하며 토론하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꿈꾸며 지역의 다양한 학습모임을 찾아내 독자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1) 여성주의 독서모임 리-본

처음 소개하는 모임은 ‘리-본’이다. 모임 이름 리-본은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생물학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페미니즘을 매개로 평등한 세상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이들은 ‘차별과 배제를 지양하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독서가 주된 활동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거나 강연회를 열고 캠페인이나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2016년 9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래 인터뷰는 두 차례의 서면 문답을 통해 이뤄졌다.

○ ‘전주 여성주의 독서모임 리-본’이라는 모임이름에 여러 가지 뜻이 있는 듯합니다. 이름 소개부터 시작할까요?

리-본은 ‘Re-Born’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토론할 때, 많은 분들이 “여성주의를 알기 전과 이후의 삶은 같을 수가 없다”고들 하시는데요, 이름을 지을 때 구성원들이 이 문장에 많이 공감했어요. 더 많은 분들과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평등한 세상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붙였습니다.

○ 그 중에서도 여성주의란 무엇인지, 특히 리-본이 생각하는 여성주의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흔히들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라고 하면 ‘여성은 남성과 같다’로 대변되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에 초점을 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떠올립니다. 혹은 ‘여성은 남성보다 우월하다’로 대변되는, 상호주의와 같은 여성적 가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문화적·급진적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되는 페미니즘의 공통점은, ‘그게 페미니즘의 전부’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오직 ‘남녀평등’이나 ‘여성우월주의’만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라는 거죠.

리-본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나 68혁명과 함께 등장했던 문화적·급진적 페미니즘이 소수자들의 저항의 역사가 담긴 흐름에서 굵직한 역할을 담당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조류들은 서로의 문제를 비판하고 경합하며 이어져왔고,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리고 지금-여기의 리-본은 차별과 배제를 지양하는 페미니즘을 지향합니다.

보다 자세히 설명 드리죠. 페미니즘이란 성평등을 위한 움직임입니다. 여성들의 참정권 획득 운동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을 위한 이론이 아닙니다. 리-본은 주류사회에서 말하는 ‘남녀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이 아닌,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차별과 배제, 혐오 없이 인정되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행동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리-본에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독서입니다. 책을 읽고, 세상의 차별과 배제를 읽어내는 시야를 넓히고, 서로의 경험과 삶을 나누며 종종 우리의 목소리를 외부에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게 리-본의 페미니즘입니다. 우리 주변의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상적 실천 말이죠.

리-본에선 다양한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리-본 바깥 공간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바깥 공간은 평등하지 못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죄악시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너희가 있는 건 인정하지만 내 눈앞에 드러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미세한 먼지 같은 차별들이 쌓여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같은 증오범죄로 이어집니다.

여성을, 페미니스트를, 퀴어를, 장애인(신체, 정신 등)을, 이주민을, 노인을, 아이를 비난하고 비하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은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보통 사람들(주로 장애가 없는 중산층 이상의 이성애자 남성, 사회에서 기본값으로 상정하는 대상)’의 안락함은 존재하겠지만, 그 뒤에서 누군가(특히, 사회에서 배제되는 대상)는 항상 공포에 떨어야 합니다.

리-본은 누구도 그러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이야기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공간을 꿈꿉니다. 다양한 개인들이 타인과 만나는, ‘연결’의 연습을 되풀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공간을 꿈꿉니다. 여성주의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언어입니다.



○ 그렇다면 남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리-본은 젠더 이분법에 반대합니다. 사회는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성별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성별은 아기가 태어날 때 의사가 어떤 성별로 판단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를 ‘지정성별’이라 하며, 사회는 사람들이 지정받은 성별에 따라 특정한 역할 수행을 기대합니다(또한, 이러한 수행을 벗어날 경우에는 의문, 비난, 비하, 혐오 등의 행동을 행하기도 합니다). 남성은 바지를 입고 짧은 머리를 한 채 강인한 성격을 갖고서 학교를 나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한 명의 여성과 결혼한 뒤 돈을 벌어 ‘가장의 역할’로 대변되는 사회활동들을 수행하기를, 여성은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한 채 온순한 성격을 갖고서 학교를 나와 한 명의 남성과 결혼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내조를 하거나 집에 보탬이 될 만한 ‘용돈’을 벌어오는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세상에는 지정성별과 자신이 느끼는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관상으로 성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자신의 성별과 다른 성을 판정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성을 사랑하지 않거나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원치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섹슈얼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자신에게 요구되는 성역할을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요. 애초에 그 누구도 날 때부터 타인이 선택한 것을 평생 끌고 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 선택이 ‘나’라는 존재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그러나 사회는 사람들이 항상 이성애자 여성/남성이기를 강요합니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비난하고 공격합니다. 저희는 그러한 사회에 반대합니다.

○ 꿈꾸는 사회상은 어떤 것인가요?

리-본이 원하는 사회는 리-본이 생각하는 여성주의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타인을 차별하고 배제하지 않는 곳입니다. 성별, 인종, 신체적/정신적 질환 여부, 키, 몸무게, 경제적 상태, 부모의 직업, 나이, 출신지역, 학력 등 개인의 특성으로 타인을 ‘무엇’이라고 규정짓고 삶의 양태를 고정시키는 모든 것들에 반대합니다. 리-본이 꿈꾸는 사회에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호간의 동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의견이 존중받으며 온전히 나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는 ‘남녀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 옆에 사람이 있을 뿐이죠.

○ 리-본은 언제 누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모임이 탄생한 구성원과 그간의 활동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멤버는 공개가 가능한 선에서 말씀해주세요). 연혁 같은 걸 곁들여주시면 더 좋습니다.

리-본은 2016년 9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 ‘페미니즘의 도전’을 같이 읽던 친구들 5명이 여름방학 기간을 지나며 모임을 좀 더 확장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지나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져있던 때라서 그런지 20명이 넘는 분들이 리-본에 가입신청을 해주셨어요. 요즘도 20~30명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고, 독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행동(캠페인, 강연사업, 연대 등)을 함께 하고 있지요.

구성원은 대학생이 많지만 비대학생들도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주의’ 독서모임이라고 해서 ‘여성’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분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사람을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남 둘 중 하나로 구분 짓는 사회(=이분법적 사회)이기에 특정 성으로 사회화된 경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한데,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회원들이 어우러져 있어 다각도의 토론이 가능한 환경입니다.

○ 그간의 활동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회원들과 독서토론을 하며 고민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우리들끼리 책 읽는 걸로 끝내기는 아쉬워서 캠페인 같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두 차례 여성주의 도서 저자 공개강연을 했고요. 2017년 초에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며 재생산권 캠페인을 했고, 2017년 한 해 동안 두 차례의 강연사업과 여러 차례의 캠페인을 했습니다. 특히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2주기를 맞아 전주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진행했던 5.17 젠더폭력 추방 시위가 기억에 남습니다. 올해 5월 17일에도 젠더에 기반한 모든 차별과 폭력을 추방하는 것을 기조로 시위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 모임 이름에 나타나듯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도 ‘독서’를 위주로 하시겠죠? 어떤 독서를 해 오셨는지 소개해 주세요.

예. 이름에서도 그렇고 말씀드리기도 했듯이 저희 활동의 기본은 ‘독서’입니다. 활동 초기에는 기본서 위주의 독서를 많이 했어요. 『젠더와 사회』,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섹슈얼리티와 퀴어』와 같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그리고 사회에서 차별의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배드 걸 굿 걸』,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처럼 주요 이슈를 통해 성차별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책도 공부했고요.

어느 정도 세미나가 진행되고 회원들이 원하는 주제를 잡고 커리큘럼을 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년 가을 세미나에서는 페미니즘의 역사성과 지금-여기의 우리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과 『대한민국 넷-페미사』, 『여성혐오, 그 후』, 『그건 혐오예요』 등을 읽었습니다.

3월에 가진 올해 봄 세미나에서는 기존 회원들과 신규 회원들의 관심 차이, 지식 격차에 따른 발언권 쏠림 등의 문제를 고려하여 처음으로 투 트랙 커리큘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성폭력을 주제로 미투(MeToo) 운동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고민하는 대화팀은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보통의 경험』 등을 읽고 있고, 페미니즘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지점들을 고민하는 학술팀은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 『성폭력을 다시 쓴다』, 『말이 칼이 될 때』 등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 그밖에도 어떤 활동이 있나요?

물론 독서가 주된 활동이긴 하지만 도서와 관련된 활동만 하는 건 아닙니다. 세미나 독서주간 사이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영화를 보거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헌팅그라운드’나 ‘가현이들’, ‘바비를 위한 기도’, ‘왕자가 된 소녀들’, ‘피의 연대기’와 같은 영화들을 리-본 내에서 공동체 상영해왔습니다. ‘가현이들’은 감독과의 대화도 했고요. 리-본의 활동에 대해 언급했듯이, 그밖에도 강연, 캠페인, 시위를 통해 리-본의 목소리를 외부에 전달하는 활동도 함께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리-본의 고유한 운영방식, 소통방식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리-본의 의사결정은 운영위원회에서 합니다. 한 달에 최소 한 번 진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추가로 소집하기도 합니다. 운영위 회의에서 활동평가와 더불어 모임 운영계획, 커리큘럼 선정, 캠페인 등 여러 사업들을 논의합니다.

일상적 소통은 전체 카톡방과 운영위 카톡방, 그리고 매주 화요일 저녁에 하는 정기 세미나를 통해서 하고 있어요. 매 학기 세미나가 끝나면 책거리와 더불어 세미나 평가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 커리큘럼은 어떻게 짜고 학습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커리큘럼은 운영위에서 커리큘럼팀을 정해서 선정해요.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책을 선정하죠. 쉽고 동기유발을 할 수 있는 책으로 시작해서 어렵고 이론적인 책을 읽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배치하는 편이에요. 대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시험을 보는 중간고사 기간에는 한 주 쉬어가기도 하고, 영화 감상도 중간 중간 배치합니다. 한 학기 세미나는 대략 10주가량 진행합니다. 대학 기말고사 기간 전까지는 끝내는 편이고요.

학습 방식은 주제와 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만, 매주 각자가 짧은 감상문, 혹은 내용 요약발제와 토론거리를 적은 글을 한 편씩 써옵니다. 조별로 각자의 글을 발제하며 내용 이해와 고민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토론합니다. 세미나 커리큘럼을 짤 때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운영위원들이 각 조에 골고루 들어가서 토론 진행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리-본의 의의랄까요 역사성이랄까요? 현재 리-본이 이렇게 활동해오고 있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거리를 두고 그 의미를 평가해볼 수 있을까요?

리-본은 2016년 5월에 벌어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창립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즈음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의 영향으로 굉장히 많은 분들이 모임에 참여해주셨으니까요. 이러한 ‘시기’에 대한 관점으로 본다면 리-본의 의의는 사회적으로 촉발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사그라뜨리지 않고 온전히 보전해오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리-본은 위에서 언급한 분기점이 단순한 계기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2016년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1996년에는 없었을까요? 1896년에는 어땠을까요? 여성만이 아닙니다.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평생을 참아오던 이들이 차별과 혐오에 대해 터져 나오기 시작한, 역사에서 무수히 많았던 ‘계기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전에도 존재하던 억압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있었습니다. 리-본은 그 바통을 이어 받았고요.

그래서 우리는 리-본의 의의를 작은 곳에서 찾습니다. 우리 주변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 내가 하지 못했던 얘기를 마음 편히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혐오와 차별이 삶을 무섭게 짓누를 때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며 손잡아 주는 것. 우리는 리-본이 사람들이 스치듯 머무르며 에너지를 얻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구성원들이 리-본에서 만들어낸 에너지를 리-본 밖에서 풀어낸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세상도 조금씩 바뀌어나갈 것이라 믿으니까요. 혐오에 맞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던진 한 마디, 나의 존재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차린 사람이 적어내린 한 줄 글이 우리 주변을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리-본은 젠더차별이라는 바위를 깎아내기 위해 작은 틈 사이로 흘러가는 물방울이 될 것입니다.

○ 많은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독서와 활동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봄학기 독서모임은 계속 진행 중이며 6월말 혹은 7월초에 여름학기 세미나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또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2주기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을 맞아 5월 17일에 전주 풍남문에서 리-본 등 전북 20~30대 인권 단체들 활동가들 중심으로 집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은 규모가 큰 조직에서, 뚜렷한 위계관계를 지닌 관계들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폭력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폭력은 강간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저항하는 흐름을 이 날 집회에 폭발시키려 합니다. 독자 분들이 5월 17일 집회에 여럿이 같이 참여해 일상 속의 성폭력 철폐에 힘을 실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