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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만 한 감자

[홍순천의 ‘땅 다지기’(57)] 진안 봉곡마을


... 편집부 (2018-06-27 19: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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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홍순천)

하지 지난 감자를 캐서 갈무리해야했다. 마음은 급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속만 끓인 심사를 눈치 챈 아내는 호미를 들고 감자밭으로 갔다. 텃밭엔 잡초가 가득하고 가물어 메마른 밭에는 먼지만 폴폴 날린다. 감자는 보이지 않고 풀뿌리만 뒤집으며 마른 밭을 정리하는 아내의 이마에 땀방울이 그득하다. 봄에 심은 감자보다 적은 수확을 달랑 들어 옮기며 비닐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겠다는 고집이 지나친 듯해 부끄럽다. 콩알만 한 감자를 캐서 옮기고 나자 장맛비가 지붕을 두드렸다.

메마른 땅에서 목숨을 부지한 감자는 탱글탱글 단단했다. 늦게 싹을 틔우는 대추나무처럼 오랜 시련을 딛고 살아낸 감자가 더 단단했다. 어떤 경우라도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 잡초처럼 단단한 감자를 삶아 소금에 찍으며 장하게 내리는 장맛비에 눈이 간다. 자진모리로 지붕을 두드리는 비는 숨 쉴 틈 없이 커다란 북을 두드리는 고수(鼓手)다.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목소리로 연기하는 소리꾼들에게 고수는 없어서는 안 될 동무다. 숨 쉬는 사이를 채우고 흥을 돋우는 고수는 딴딴한 감자처럼 자기 소리를 드러내지 않고 추임새와 강조를 조절하는 절제가 빛나는 주연이다. 고수야말로 소리꾼보다 더 고수(高手)다.

막내로 자란 덕에 누이들이 좋아하던 대중가요를 들으며 자란 1970년대는 포크송의 전성시대였다. 장발과 단속의 가위가 팽팽하게 긴장하던 그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매미처럼 읊조리기보다는 기타 줄을 울리며 삶과 시대의 고민을 담아내던 가객들이 까닭 없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핏줄에 흐르던 자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락 발라드와 하이네, 릴케를 입에 달고 어깨까지 닿는 머리칼을 휘날리며 기타를 어깨에 메고서야 외출준비가 끝나던 시절 식자연하며 가끔 듣는 클래식은 허영이었다.

역사에 눈을 뜨고, 고작 수 십 년 전의 단절된 세상일을 되새겨도 담뱃진처럼 인박힌 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참으로 오랜 시간 때를 벗겨내도 소년 시절의 첫사랑처럼 잊히지 않는 소리의 편식은 몸의 일부분으로 남았다. 세상을 헤매던 젊은 날 우연히 접한 북소리에 오금이 저렸다. 해질 무렵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장삼을 날리며 법고를 두드리던 스님은 삶을 주저앉히는 소리를 세상에 퍼뜨렸다. 그 분위기와 소리를 접하는 순간 무릎에 힘이 빠져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콩 한 알이 세상을 두드리는 울림을 만난 순간이다. 의식의 허망함이 검불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북과 대금은 가를 수 없는 짝이다. 심장 박동처럼 원초적인 북은 쥐어짜는 고통을 노래하는 대금을 감싸고 어루만진다.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대금을 소란스럽지 않게 붙잡아주는 북소리는 금슬 좋은 부부처럼 어우러져 찰떡궁합이다. 절묘한 둘의 조화를 훔쳐 듣는 귀가 그때에야 뚫렸다. 단오 전후에 채취한 갈대의 속껍질로 청을 넣는 대금은 그 소리가 청아하고 깊이가 있다. 고음과 저음의 운용이 자유로워 듣는 사람을 사로잡지만 그 뒤에 깔린, 빠질 수 없는 소리는 북이다. 잎이 꽃에 향기와 생명을 주듯, 고수는 대금연주자에게 물을 주고 호흡을 준다. 고수는 대금연주자에게는 땅이고 물이다. 대금만 보고 북소리를 듣지 못하면 절반 이상은 놓친 것이다.

콩알만 한 감자를 캐서 옮긴 다음 날, 새벽부터 장맛비가 거세다. 쉴 새 없이 두드리는 북소리처럼 내리는 장맛비에 간이 콩알만 해져 눈을 비비며 나선 마당에는 메마른 잔디가 춤추고 있었다. 오랜 가뭄 끝에 땅을 적시는 비다. 시원한 빗줄기처럼 요즘 세상에는 숨통 터지는 일이 많다. 아직 갈증이 심해 타오르는 목을 한꺼번에 진정시킬 수 없지만, 콩알만 한 감자라도 간장조림해서 먹으며 목숨을 부지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다리의 깁스를 풀고 기차타고 중앙아시아에 가서 발자국을 남길 생각에 못다 한 새벽잠을 이룰 수 없다.

콩알만 한 감자도 뒷북 쳐주는 고수가 있으면 아직 살아 볼만하다. 장맛비가 고맙다.


▲콩알만 해도 감자다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