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학력고사 시대로 돌아가자고 할 것인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노력하는 사회

( 편집부 기자    2019년 09월 14일 13시10분   )
     


[전북교육신문칼럼 ‘시선’ ]

(사진, 글= 권혁선 교육공동연구원 대표, 전주고등학교 교사)

조국 사태(?)를 계기로 그 동안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는 교육적인 대체에 밀려 잠잠했던 불만들이 사방에서 봇물 터지 듯하고 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현장 교사들에게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학생 중심 과정 수업과 다양한 수행 평가 그리고 기록, 생활 기록부의 정리, 자기 소개서까지 고행의 연속이다.

이제 마지막으로는 평가에 대한 불만이다. 도저히 당락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떨어졌으면 떨어진 이유라도 이야기할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그런데 정답이 없는 시험에서 모범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탈락한 사람들의 탈락 이유를 해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진짜로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수도권 학종의 경우 경쟁률이 보통 20:1에 가깝다. 탈락 이유를 하나씩 정리해서 발표하다 보면 엄청난 행정력이 낭비될 것이다. 실제 학교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를 학생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엄청난 피로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것을 모두 해명하라고 요구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러면서 실제 대학에서 실시하는 모의면접과 같은 형태의 설명회에는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갑갑한 마음이 앞설 뿐이다. 아무튼 그러면서 과거 학력고사의 부활을 자주 언급하곤 한다.

과거 학력고사에 대해 얼마나 좋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운(?)이 좋아서인지 학력고사를 2번 보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들보다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잔해들이 조금은 또렷하다. 특히 81-86년 사이에 실시된 학력고사를 기성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당시 기록들을 검색해 보았다. 1981학년도-1983학년도에는 총 14과목. 국어I(한문 포함 50점) 수학I(50점), 외국어(50점), 국사(25점), 국민윤리(15점), 정치경제(15점), 기술(20점), 가정(여 20점), 남학생은 실업과목 4과목(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중 택1과목(20점), 여학생은 가사(20점)로 고정, 사회과목 4과목(각 15점) 전부, 과학과목 4과목 중 택1과목(15점) 등 사실상 고교 전 과목이 시험 과목이었다.

14과목 시험 총점 320점, 체력장20점을 합한 340점 만점의 시험이었다. 1984학년도에는 문과와 이과에 각각 국어Ⅱ와 수학Ⅱ가 추가되어 총 15과목이었고 1985학년도는 문과의 경우 과학 한 과목을 추가하여 과학 2과목 응시하도록 하였다. 이때 문과생에게도 물리/화학 중 1과목을 반드시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는 문과생의 99%가 생물을 선택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단다. 요즘 자연계열 학생들에게도 하지 않는 것을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강요한 정말 잔인무도한 대학 입시였다. 아무튼 그래서 인문계열은 16과목, 자연계열은 이전과 동일하게 15과목이 필수 응시 과목이었다. 가장 시험 과목이 많은 시기는 1986학년도였다. 사실 이전까지 3교시 시험이 영어, 독일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 서반아어 중 1개 선택이었다.

그래서 많은 수험생들이 영어 시험을 보지 않고 일본어나 불어 특히 당시에는 생소했던 서반아어 시험을 보고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반아어는 3개월 공부를 하면 45점 이상 고득점을 보장할 정도로 난이도가 낮아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6년도 입시에서는 영어를 필수로 하고 나머지 외국어가 제2외국어로 빠져 이 중 하나를 추가로 시험 치게 했다. 따라서 86년에는 인문계는 17과목, 자연계는 16과목이 응시과목이었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는 시험과목이 9과목으로 축소되어 다수의 선택 과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구조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 입시 시험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이미 당시에도 학력고사 문제들은 지나친 암기형 문항들로만 이루어져 수험생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의 학업 성취도 검사에 불과할 뿐 대학 교육 적격자를 선발하는 기능이 거의 없다는 비판으로 1897년부터는 서서히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철가방을 든 아인슈타인”이라는 우화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당시 이러한 교육 풍토를 비판한 이야기였다.

당시 내신은 평생 시스템으로 재수, 삼수를 하여도 내신점수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오늘날은 이러한 문제를 감안하여 정시에서는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다. 소위 ‘대기만성’형 수험생들을 위한 배려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당시 문제당 배점은 수학2점을 제외하고 무조건 1점이었다. 결국 하루에 295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1교시 90문제, 2교시 80문제, 3교시 50문제, 4교시 75문제로 거의 기계적으로 문제 풀이를 해야만 했다.

이처럼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다 보니 당시 문제는 얼마 전까지 있었던 적성 고사처럼 문제를 읽고 곧바로 답을 해야만 했다.

사고력이나 종합적인 이해력을 묻는 문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즉문 즉답 암기식 문제에 대비한 엄청난 양의 암기와 문제풀이용 교육만이 주야장천 이루어졌다.

당시 공부는 곧 암기력이었던 것이다. 1분당 1문제씩의 문제 풀이다. 지금 보아도 대단히 잔인한 시험 제도였다. 이렇게 기계적인 문제 풀이를 해야 하는데도 요즘 EBS 연계 문제 이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전과 같은 기출 문제가 출제되면 출제의원들은 면직의 위기에 놓인다는 이야기까지도 있었다. 그래서 매년 새로운 문제를 찾아 끝없는 암기력 테스트를 무한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위의 문제점 지적은 단순한 학력고사라는 시험에 대한 분석에 불과하다. 다음은 더 큰 문제이다.

학력고사는 시험 과목이 14-17과목에 이르는 학교에서 학습한 것은 모두 교과목을 대입고사로 하였다. 아마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했던 7.30조치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 조치는 재학생 및 교직원의 학원 과외 및 수강의 전면 금지, 학력고사 50% 이상 내신 성적 최소 30% 이상 반영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요즘 정시 100%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당시 상황을 한번 되돌아보면 “당시 경기고등학교 등 입시명문고교 학생들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업 받는 날보다 시내 학원에서 본고사 공부를 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동급생끼리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심지어 담임선생님 얼굴도 몰라, 졸업식 날에만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과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을 하는 일도 흔했다.

”정시 100%를 주장하시는 분들은 왜? 내신 성적이 대학 입시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당시 상황을 이해했으면 한다.

아무튼 당시 고3 수업 부담은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주당 정규 수업을 40시간으로 보고 시험 과목이 15과목이면 과목당 평균 수업 시간이 2시간에 불과하다.

탐구 과목들은 주당 2시간으로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국영수의 도구 과목조차도 3시간 이상의 수업하기 어려울 것이다.

암기식 수업에 과목 수업의 깊이조차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지식의 단순 나열에 불과한 수업의 연속이었다.

깊이 없는 암기식 수업에 학력고사에 대비한 선행 학습의 압박감으로 수업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무척 강하고 과도한 학습량에 따른 학생들의 압박감은 요즘 학생들의 스트레스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을 ‘시험기계’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대학입시였다. 나사 빠진 프랑켄슈타인을 대량 양산하는 시험제도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와 노래가 나온 시점이 바로 이때이다. 영화는 1986년 1월 15일 새벽,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한 줄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S사대부중 3년생인 O양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경향 89. 9. 25) O양은 전교에서 1등을 하던 학생으로 당시 신문에 공개된 여학생의 유서는 입시 과열로 치닫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 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

만약 학력고사 체제로 돌아간다면 교사 수급마저도 완전히 변해야만 한다. 국영수 교사들은 대폭 줄어들어야 하고 여타 과목의 교사들은 큰 폭으로 증가해야만 한다. 학교 현장은 말로 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절대 학력고사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본인이 학습했던 향수에 빠진 망각으로 무조건 학력고사로 돌아가자는 서투른 주장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과거의 학력고사를 되돌아보았다.

학력고사를 거쳐 대학을 나와 지금의 당신은 행복한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노력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교육 과정과 교육 철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단순한 객관적 평가와 출발점이 달라도 획일적 기회 공정만을 주장하시는 분들에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다음에는 학력고사가 불가능하면 수능시험과 내신을 결합한 형식 즉 요즘의 교과전형으로 돌아가지는 주장의 불합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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