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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란코프: 리얼 노스코리아

[책] The Real North Korea -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


... 문수현 (2019-09-23 1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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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란코프(Andrei Lankov) 교수의 『리얼 노스코리아』(2013; 국역: 개마고원, 2013)는 북한 개론서라 할 만한 책이다. 국제적으로 아주 저명한 란코프 교수는 서방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2012년 이 책을 썼다. 초심자들에게 북한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초반 갑작스레 소련의 지원이 끊기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북한은 오직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평양에 꾸준한 원조를 제공할 의향이 있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체제였다.

란코프 교수의 추산으로, 북한의 엘리트는 공안경찰, 군의 정예부대, 당의 고위직·중간직 간부들과 그 가족들을 다 합쳐 100만~200만 명 정도(전체 인구의 5~7%)다. 이들 북한 엘리트들의 궁극적 목표는 더 이상 체제경쟁이 아니라 체제생존이다.

중국 스타일의 시장 지향적 개혁이 북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종종 제시된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방식을 따르기를 고집스레 거부하는 데는 타당한 내적 논리가 있다.

란코프 교수가 볼 때, 북한이 고집스레 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이념적 광신도이거나 외부세계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개혁은 불안정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고, 지배 엘리트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자살하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잘 사는’ 남한이라는 존재는 북한의 선택을 중국·베트남과는 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분단 독일에서 동·서독간 소득 격차는 1:3 내지 1:2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도 (소비에트의 보복 위협이 사라지자) 동독 주민으로 하여금 정권을 전복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한의 1인당 소득은 북한의 15배~40배에 이른다. 만일 평범한 북한 주민이 불과 200km 남쪽에 사는 동포가 누리는 풍요를 완전히 알게 된다면 사회적 동요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란코프 교수는 2020년대쯤 북한에서도 ‘아랍의 봄’과 유사한 전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한편 란코프 교수는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본질적으로 두 개의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침략에 대한 공포다. 실제 몇몇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적 목표물이 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경험으로 인해 이러한 공포가 증폭됐다.

란코프 교수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 이후 북한 외교관들과 정치가들은 외국의 관계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사담 후세인이 정말로 핵을 갖고 있었더라면 여전히 그는 자신의 궁전에 있었을 것이다.” 그 뒤의 리비아 사태로 그런 견해가 더욱 강화됐다.

실제로 카다피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국의 핵물질을 포기했다. 자국의 국민들이 카다피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을 때 반군은 서방의 적극적인 군사지원을 받았으며, 강력한 서방이 자기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카다피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둘째로 핵무기는 외교적 협박에 유용한 도구다. 란코프 교수는 지리적, 거시경제적 지표로 볼 때 아프리카 가나는 북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이지만, 원조를 받는 규모에서 북한은 가나에 크게 앞서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핵개발과 이를 이용한 협박은 이러한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국 북한이 가진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는, 외부 원조를 원하는 조건에 갈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적어도 평양의 지도부가 원치 않는 외부의 개입을 막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란코프 교수의 분석 중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 관한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내부와 그 주변의 ‘안정’을 최우선시하며,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를 선호한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목표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세 번째다. 중국 입장에서는 불안정한 북한이나 붕괴하는 북한보다는 핵무장을 한 채 건재한 북한이 덜 나쁘다.

한반도를 영원히 분단시킬 수 없다면 적어도 가능한 한 긴 시간 동안 분단을 유지시켜야 한다. 통일이 되면 한반도를 주도하는 것은 남한이 될 것이고, 민주적이고 매우 민족주의적인 국가이자 미국의 동맹인 나라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며, 이는 중국의 안정에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란코프 교수는 이 책을 2012년에 썼고 김정일 시대까지 분석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대한 란코프 교수의 분석은 한신대 윤소영 교수의 안내대로 “Is Byungjin Policy Failing?: Kim Jong Un’s Unannounced Reform and Its Chances of Success”(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March 2017); “Why Nothing Can Really Be Done about North Korea’s Nuclear Program”(Asia Policy, Jan. 2017)을 참고할 수 있다(윤소영, 『재론 위기와 비판』, 공감,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