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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書]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알버트 머메리(1895), 수문출판사, 1994


... 문수현 (2019-10-25 11: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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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을 말하면, 어느 봉우리에 올라가기가 무섭게 그것은 금방 내 친구가 되어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내가 그 주름살 하나하나를 잘 알고 있는 암봉(岩峯) 하나하나가 환희와 웃음소리와 옛 친구들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주는 그 산비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 무서운 약점으로 나는 마터호른의 정상을 일곱 번이나 밟았다.”(본문 중에서)

머메리(Mummery, Albert Frederick. 1855~1895. 사진)는 영국의 등반가로, 머메리즘이라는 등반사조를 낳은 장본인이다. 그는 1879년 이후 알프스산맥 마터호른산의 여러 봉우리를 등반했는데, 다른 등반가가 오른 길(따라서 이미 루트가 알려지고 쉬워진 길)을 따라 등반하는 데 흥미를 거의 갖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운(난이도가 높은) 길을 초등하는 데서 오는 감동과 아름다움이 훨씬 크다고 여겼다. 머메리가 제창한 이런 주장을 등정주의에 대비해 등로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만 해도 전통적인 등산방식은 가장 쉬운 코스를 통해서라도 정상만 오르면 된다는 것이었는데, 머메리는 이를 거부하고 절벽에 루트를 개척하며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것에 등산의 참뜻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금은 머메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등반가가 적지 않지만, 당시에만 해도 머메리는 전문등반가들로부터 ‘미친놈’ 취급받는 경우가 적잖았다.

그를 영국의 불세출의 암벽등반가로 일컫게 한 것 역시 1879년 알프스 마터호른산(4478m)의 츠무트 능 초등, 1880년 마토호른의 푸르겐 능, 콜 뒤 리옹, 에귀유 데 그랑샤르모, 1881년 에귀유 드 그레퐁, 에귀유 베르트 남서면, 1887년 토이펠스그라트 등을 잇달아 초등한 업적에서다.

알프스의 고산을 속속 등반한 이후 머메리는 히말라야로 눈을 돌린다. 그는 1895년 히말라야산맥의 낭가파르밧(8126m)으로 등정을 떠났고, 두 번 실패한 뒤 물러서지 않고 세 번째 등반에 도전했으나 눈사태로 실종되고 만다. 이는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첫 8000m급 도전이었고 첫 희생이기도 했다. 1953년에 이르러서야 오스트리아인 헤르만 불이 낭가파르밧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58년 전 머메리의 도전은 그만큼 전위적이었던 셈이다.


▲낭가파르밧. 이미지출처=BBC News

이 책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는 머메리가 낭가파르밧에서 실종되기 14년 전에 이미 구상과 집필을 시작한 것인데(일부 챕터는 아내가 집필), 그가 사망하기 2주 전인 1895년 6월, 즉 그가 낭가파르밧에서 분투하고 있을 당시에 아내의 손으로 출판한 것이다. 따라서 머메리 자신은 이 책의 성공을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머메리 자신의 등반기를 연대순으로 담고 있는데, 1879년 마터호른의 츠무트 능 초등 등 대부분 알프스 마터호른 산의 봉우리를 등반한 기록들이다. 매우 세부적으로 자신의 등반과정과 상황을 묘사하고 있어서, 초등로 도전에 따르는 위험과 긴장, 용감무쌍함 등이 읽는이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은 감동을 준다. 그의 글은 또한 고전(셰익스피어 등) 인용과 풍부한 위트에 있어서도 읽는이를 만족시켜준다.

머메리를 직접 읽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머메리를 머메리즘으로만 기억하게 될 경우, 그를 극한의 위험을 자초하는 전위적인 기술등반가 정도로 그릇되게 이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머메리는 자신의 유일한 저작인 이 책의 중간 중간에서 자신의 등반관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또한 그가 무엇을 진정한 등반으로 생각했으며 (그 당시에 이미) 알프스 등반의 세속화에 대해 비판하는 것 등이 이 책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하인리히 하러의 <티베트에서의 7년>, 안데를 헤크마이어의 <알프스의 3대북벽> 등과 마찬가지로 산서(山書)의 고전이다. 수문출판사는 알버트 머메리의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를 ‘세계산악 명저선’ 총서(12권)의 제1권에 배치했다.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 앞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