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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총선과 한국정치…86세대, 민주당, 정의당

[계간 사회진보연대] 봄호... 집권세력 포퓰리즘, 마르크스주의 시각서 심층분석


... 문수현 (2020-03-20 11:11:00)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현실은 정치와 경제가 아닐런지. 누군가 “경제와 정치”라며 우선순위를 달리 강조한다 해도 그 역시 그 두 가지 현실이 아닐 순 없는 것.

그 막대한 중요성에 견줘 과연 우리는 그 주제를 두고 마주앉은 상대방과 차분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가. 특히 그것이 정치에 관한 것이라면.

최근 몇 년간 한국인 개개인들이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겪고 있는 것도 정치에서다. 형제 사이나 부부간에도 정치 이야기의 결과는 속상함이나 상처주기인 경우가 많다. 대개 이성이 아닌 감정이 그 이야기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혈연·지연·학연에 따른 ‘내편주의’(내편이니까 옳다)로 자유·평등·정의 같은 ‘가치’에 대한 토론을 비웃거나 억누르는 태도는 반(反)사회적이다. 모든 개인은 사회적 삶을 살아가며,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 하나가 바로 정치이기 때문.

따라서 타인의 삶에 연대책임을 느낄 줄 아는 개인이라면(달리 말해 사회적 삶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지각하는 개인이라면) 정치적 대화나 토론에 있어서도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인 태도로 임해야 할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운동의 시각에서 정세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해온 무크 ‘사회진보연대’(pssp.org)가 그런 토론을 위한 자양분을 넉넉히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마침 ‘계간 사회진보연대’는 최근호(2020년 봄호·통권 170호)에서 ‘2020년 총선과 한국 정치’를 특집으로 내세웠다.

먼저 김태훈은 <‘집권 86세대’의 포퓰리즘>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세대 간 불평등 논의들(특히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을 꼼꼼히 살핀 다음,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나름의 86세대 비판론을 내놓는다. 그가 말하는 86세대란 뭔가. 80년대 운동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기성 집권 60년대생.

이들은 이전 세대들보다 더 빠른 소득증가를 경험했고, 자산 면에서도 1990년대 이후 대규모 아파트 공급과 주택금융화의 혜택을 보았다. 달리 말해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에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것. 게다가 자녀 교육을 통해 능력 혹은 ‘스펙’까지 세습한다. 아울러 현 정부의 집권 86세대는 반(反)경제학(=경제학에 대한 무시·무지), 비현실적 민족주의, 반보수 포퓰리즘이라는 부정적 3요소가 특징이다.

필자는 여기에 “성장기끝물에 재벌, 공공부문에 입사한 60년대생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익추구와 집권 86세대의 정치적 사익추구가 기묘하게 결합한다.”고 논쟁적인 쟁점을 추가한다.



특집 두 번째 글은 김동근의 <정의당 이대론 안 된다>. 첫째, 소득주도성장론은 위기에 놓인 한국경제를 구할 경제정책이 될 수 없고 이미 실패한 정책인데 정의당은 이를 집권여당보다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둘째, 사실상 민주당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민주당 포퓰리즘에 종속돼왔다는 것. ‘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부제를 단 것은 그 때문.

필자는 정의당의 현재 상황은 민주노동당 창당으로부터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정의당을 비판하는 진짜 이유가 그 대목에서 드러난다. 정의당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의 산물인 만큼, 정의당의 문제는 노동자·사회운동이 반성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이소형은 ‘2020년 민주노총 총선방침 비판’을 썼다. 이 글은 민주노총이 다가오는 총선과 관련해 가맹·산하 단위에 내린 선거방침은 기층 노조운동에서는 무기력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정당건설과 같은 수준의 정치적 전략 곧 정치방침이 없는 선거방침은 현실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방침의 곤란은 정치세력화 전략의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필자의 제안하는 전략은 노동조합 자체가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자는 것이다.

특집의 마지막 글은 한지원의 <정치·경제 역사로 살펴본 민주당 정치의 위험성>이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경제위기를 살피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계보가 각각의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분석했다. 한 가지 결론은 경제위기의 분기점마다 민주주의 대신 군부나 미국이 사태를 정리했고, 그것은 한국의 야당 정치세력 특히 더불어민주당 계보의 무능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 이 반복적 무능의 원인을 필자는 ‘자유주의에 미달하는 민주당의 사상적 한계’에서 찾는다.

자유주의의 요체는 법치(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평등한 규칙을 만드는 것)와 경제학(법치를 위한 정치제도와 국민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법치와 관련해서 현 집권세력은 입법부를 상대화하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과 사법기관에 의한 통치를 선호한다. 자유주의의 또 다른 핵심인 경제학에서도 민주당 계보는 지속해서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 경제정책의 특징이 도덕적 수사로 핵심 갈등과 곤란을 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집 이외의 분석 글인 김진현의 <혁신 없이 거품만 조장하는 혁신성장 정책>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새로운 브랜드인 ‘혁신성장’을 해부한다.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가 새로운 금융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김진영의 <2020년 NPT를 넘어 핵무기금지조약으로>는 1970년 발효돼 50주년을 맞이한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의 역사를 살펴본다. NPT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양도를 받는 ‘수평적 핵확산’은 엄격히 금지했으나, 핵무기 보유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이 핵무기의 수를 늘리거나 질적으로 개량하는 ‘수직적 핵확산’은 엄격히 금지하지 않으므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 끝에 탄생한 핵무기금지조약(TPNW)의 의의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 반핵평화운동의 현황을 소개한다.

<계간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호에 이어 세계사회운동 꼭지로 수잔 왓킨스의 <어느 페미니즘인가③>을 실었다. 왓킨스의 글은 라틴 아메리카와 지중해 유럽, 중국과 미국의 최근 페미니즘 운동 흐름을 분석한다.

사회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는 임필수는 <남북한 통일정책의 역사와 통일운동④>을 썼다. 1990년대 한반도 정세를 회고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1993~2000년 대기근을 재고찰하고, ‘탈냉전’을 거부한 쪽이 미국과 김영삼 정부인가, 아니면 북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두 편의 신간 리뷰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소개하는 박준형의 <세습되는 불평등, 노조운동의 혁신으로 해결해야 한다>와 ‘헌법사 산책’을 소개하는 김성균의 <발전과 쇠퇴, 갈림길에 선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것.

<계간 사회진보연대>는 1년에 4회 발행하며 인터넷 홈페이지(pssp.org)에서도 볼 수 있다. 구독 문의는 02-778-4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