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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치의 위기와 비전-니체에서 현재까지

[신간] 한국정치사상학회(김비환 외) 지음, 아카넷, 2020.3.2


... 문수현 (2020-03-26 21:08:34)

한국정치사상학회 소속 20명의 필자들이 서양 현대 사상가 19명의 이론을 소개한 책이다(624쪽).

이 책이 반가운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정치학에서 정치사상의 위상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반지성주의의 큰 확산이 걱정스러운 시기에 출간됐다는 점. 둘째, ‘위기와 전망’을 화두로 현대정치사상을 정리함으로써 더 좋은 삶과 정치공동체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는 점.

이 책에서 특징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그 체계다. 1장 서론에서 현대 서양정치사상의 흐름을 개관하고(김비환), 특히 1부에서 ‘현대 서양정치사상의 저류’라는 주제로 프리드리히 니체(최순영), 칼 슈미트(윤비·표광민·홍철기), 안토니오 그람시(김종법) 세 사상가를 다룬 점이 주목을 끈다(괄호 속 이름은 해당 주제의 저자).

20세기의 철학과 정치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니체, 공산주의 사상가 그람시, 파시즘의 사상가 슈미트를 현대정치사상의 저류를 형성한 철학자로 묶은 것이다.

이어 2부 주제는 ‘전체주의와 냉전 시대의 정치사상’으로 잡고 레오 스트라우스(박성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서병훈), 마이클 오크숏(김비환), 한나 아렌트(김선욱), 이사야 벌린(박동천)을 심도 깊게 소개했다.

3부 주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여기에는 존 롤스(장동진), 로버트 노직(김병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손민석), 찰스 테일러(유홍림)에 관한 논문을 담았다.



4부에선 캐롤 페이트만(박의경)과 아이리스 영(김희강), 뤼스 이리가레(정인경) 등 세 명의 학자들을 살펴봄으로써 페미니즘의 진화과정과 문제의식을 고찰하고 있다.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학회의 단행본에 현대의 ‘페미니스트 정치사상’이 독립 주제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정치학 전공자들은 “페미니즘이 다른 정치사상 전통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자적인 정치사상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고 본 것이다.

마지막 부는 ‘근대성과 포스트모던 정치사상’이라는 주제 아래 위르겐 하버마스(김주형), 미셸 푸코(이동수), 자크 데리다(최일성), 리처드 로티(김비환)를 고찰했다.

한편, 이 책이 눈길을 끄는 두 번째 점은 현대 서양정치사상의 흐름을 읽는 관점이다. 즉 대부분의 사상가는 더 나은 질서와 향상된 삶의 전망을 보여주고자 했고, 자신의 정치사상이 여론을 움직여 바람직한 정치질서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선물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을 윤리와 가치, 실천의 영역에까지 안내하기 때문이다.

주석에 더해 찾아보기까지 첨부한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다양한 저자가 다양한 주제를 다룬 책들은 여간해선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자적 성실함과 독자에 대한 성의라 본다. 그 결과 이 책에 소개된 정치사상들을 서로 비교하며 읽어보는 게 가능해진다.